독서노트/<커트 보니것>

기차 안에서 박수를 치며 책을 읽다. <나라 없는 사람>

묭롶 2018. 6. 23. 18:21

    로맨틱펀치 밴드 보컬 배인혁님의 단독공연을

보러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커트 보니것의

『나라 없는 사람』을 읽었다.


  단언컨대, 나는 이보다 재밌는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사실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블랙코메디

지만, 그걸 실제로 글로 옮긴 사람이 있을거라곤

지금까진 생각해보지 못했다.


  삶이라는 아이러니를 풍자로 풀어낸 커트 보니것이 여기 있다.  여든 두 살의 나이에 이제 지구별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청춘이라고 말하는

보니것이 들려주는 이야기 앞에서 "아이쿠!

꼰대 또 5공 시절 얘기하네~"라고 하품부터

하는 건 선입견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조 페트로 3세와 자신이 그린

삽화를 실크 스트린으로 프린팅하기로 계약을 하고 작품활동에 열중한 보니것은 일반적인 기준의

나이를 뛰어넘는 사람이다.   『이방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가 수상 소감으로 인류가 가장 숙고해야 할 문제는

바로 '자살'이라고 말하고 난 후 , 뜻하지 않은 자동차 사고로 삶에 마침표를 찍었던 것처럼 인간의 삶을 아우르는 가장 공통적인

정서가 '아이러니'라는 것을 너무 일찍(드레스덴 폭격) 알아버린 커트 보니것의 작품세계의 전부가 바로 여기 『나라 없는 사람』에 담겨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을 겪였으니 이제 남자가 되었구나. 라는 삼촌의 말에 삼촌이 자신이 죽인 첫 번째 독일인이 될 뻔

했다고 말하는  보니것처럼, 삶이 펼쳐놓은 예기치 않은 운명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최소한의 인간성을 유지

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를 그는 우리에게 되묻는다.  그가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해 가지는 의문(아이러니)이 그의 작품이

되었음을 나는 『나라 없는 사람』을 통해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그가 이 작품 후반에 실은 「레퀴엠」의 문장 중 "사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는

게 바로 아이러니다." 라는 구절은 그의 작품 『마더나이트』를 연상케 한다.


「~나는 오늘밤이 하워드 W. 캠벨 2세를

그 자신에 대한 범죄의 대가로 목을 매달기에 좋은 밤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밤이 바로 그 밤이란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마더나이트』p339


  또한 『고양이 요람』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모나와 자신의 무죄를 밝혀줄 파란요정대모의 편지를 받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마더나이트>의 캠벨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혹시 이중에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빨리 대답하세요!"

"빨리 대답하지 못하는군요."  삼십 초 후 그녀가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그리고 여전히 가볍게 웃으면서, 손가락을 땅에 댔다가

몸을 일으키더니, 그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죽어버렸다.」『고양이 요람』p325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삶이 무엇인가?  그의 작중 인물 캠벨처럼, 스스로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에(전쟁 중)

직접 가담하지 않았지만 전범으로서의 자신의 행위를 인식하는 인물과 자신 앞에 약속된 평온한 삶을 거부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모나 등 이건 작중인물들 그 스스로에게서 원이늘 발견할 수 없는 문제이다.  바로 이지점에서 보니것의

'아이러니'가 출발한다.  유대인을 한 줌의 연기로 만들어버린 전범조차도 그 시대의 불가피한 강제성에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할 때 직접적 살인에 관여하지 않은 캠벨의 자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에이헤브 선장처럼 무모함을 지닌 존재이자, 끊임없이 스스로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적인 존재이자,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위해 그 모든 것을

거는 로맹가리의 『하늘의 뿌리』에 나오는 모렐이자, 자존감을 잃은 벌레와 같은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리와

같이 다층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보니것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드레스덴 위로 폭탄이 쏟아질 때 우리는 지하실 천장이 무너질 것에

대비해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때 한 병사가 마치 대저택에 앉아 비 내리는 겨울 하늘을 바라보는 공작부인처럼

"이런 날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아무도 웃음을 터뜨리진 않았지만 그의 말은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적어도 아직까지 우리는 살아 있지 않은가! 

그의 말 덕분에 깨달은 사실이었다.」p15


  인간의 그 모든 총체성을  보니것은 '아이러니'로 해석했나보다.  그의 작품 한 권 한 권은 바로 그 인간의 아이러니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게 소설이든 에세이든 그가 얘기하는 바는 하나다.  바로  어찌할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바로 그가 다루는 공통적 주제이다.  삼만 개비의 담배와 오만리터의 술로도 해결할 수 없지만 그 애증만큼이나

더 사랑스러운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이 바로 그의 작품임을 나는 그의 문장 속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처럼 완벽한 휴머니스트는 더 없을 것이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p32


  더불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밴드 로맨틱펀치를 자꾸만 떠올리게 되었다.  남북 전쟁 당시 미국 남부에서

노예를 거느린 대농장의 지주의 자살률이 노예들보다 높았다고 한다.  왜?   노예들은 블루스를 부르며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었던 반면 지주에게는 '음악'이 없었다고 한다.  보니것은 말했다.  자신은 신이 있다는 증거를 음악에서

찾는다고..........

  어쩌면 남북한의 얼어붙은 관계를 북한에서 공연을 한 남한의 음악가들이 단 번에 녹여냈던 것처럼, 음악은 원자폭탄보다

강한 힘을 지닌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많이 늦은 나이지만 지금이라도 롹밴드에 입덕한 나를 스스로 칭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보니것은 말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지식층은' (1)역사와 지리를 전혀 모르고, (2)백인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3)이른바 기독교도이며, (4)정말 놀랍게도 정신병자, 즉 영리하고 번듯하게 생겼지만 양심은 전혀 없는 자들' p99 이라고.....

바로 이곳이 디스토피아라고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런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이란 걸.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제 보니것은 친절하게도 또 말한다.


「"우리는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가지고 온갖 열역학 소란을 피우면서

그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독성물질로 생명이 살 수 있는

하나뿐인 행성을 죽이고 있지.

~내 생각에, 지구의 면역 체계는 AIDS,

그리고 신종 독감과 결핵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p119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행복을 만끽하라고 외치는 보니것 앞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원적으로 지닌

무가치성과는 다르게 지니고 있는 실존의 가치가 주는 '아이러니'를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면?  어쩔 수 없이

그래서 인간이란 점이다.  그러니, 음악과 주변에 나와 똑같이 무가치한 인간을 할 수 있는 한 많이 공유하란 얘기다. 

어차피 똑같은 인간이니 서로 같은 바퀴벌레끼리 증오하지 말고 블루스나 한 판 추면서 사이좋게 지내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