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커트 보니것>

<고양이 요람> 커트 보니것이 허구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실제를 확인하다.

묭롶 2018. 6. 6. 19:24

   「"아이들이 서서히 미쳐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죠.

고양이 요람이라는 게 두 손 사이에 있는 X자 다발에

불과한데도, 꼬맹이들은 그 X자를 보고, 보고, 또 보고......."

"그런데요?"

"그런데, 빌어먹을 고양이도 없고, 빌어먹을 요람도 없죠."」 p200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보이는 것처럼 믿는 서로의

약속에 의해 존재하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원주민을 지배하고

샌로렌조라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섬에 표류해온 매케이브

상병과 존슨(보코논)이 서로 악과 선으로 역할을 구분했던 것처럼,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데 있는 것처럼 체제를 만들어낸다.


  아이스-나인에 의해 지구의 모든 액체가 동결되어  지구가 청록색의

덩어리가 되어버린 후에 프랭크는 작중 작가인 조나에게 종말에서

살아남은 개미들이 어떻게 물을 얻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개미들은 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개미집단 중 일부의 개미를 유해한

아이스-나인에 노출시킨 후 얼어붙은 개미를 그 집단의 가운데 두고 둥글게 둘러싸서 녹이는데 그 과정에서 한 방울의 이슬이

생성되고 그걸 개미들이 마시고 녹은 개미는 먹는다고 프랭크는 말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물을 만들어내는 개미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나는 소름이 끼쳤다.  원래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 가해지는 개미 세계의 폭력과 그 정당성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실제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편없는 존재라서, 만들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p204


  아마 인간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모든 것에 대해 '왜'를 묻는 종족이지 않을까?  그 '왜'가 이유와 목적을 만들어 낸다.

그 '왜'를 위해서 선과 악으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백인과 흑인, 자본가와 노동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로 나뉜 건지도

모른다.  애초에 아무 이유도 없는데 그 이유를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기에 그 결과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자신의 학문적 지식 충족을 위해 수소결합 공식을 찾아낸 과학자의 연구결과를 원자폭탄으로 이용한 인간들을 원망해야 할까?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는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는다.  그 원자폭탄을 살상무기로 사용한 인간들은 체제수호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자신들의 행동에 면죄부를 부여한다. 


「"맙소사, 인생!  누군들 그걸 단 일 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애쓸 것 없소.  그냥 이해하는 척만 하시오."」p218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이 세계의 내란과 전쟁과 테러와 범죄는 이 책에 나오는 보코논교의 논리에 비춰 봤을때 모두

<고양이 요람>(허상)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건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실제인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세계를

지배하는 자들이 우리 앞에 펼쳐 보인 <고양이 요람>에는 이념과 정치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도록

만든다.  소통하고 결합하기 보다는 뿔뿔이 흩어져서 체제의 통제하에 머물기를 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선거철만

되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무장공비나 간첩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하지 않는 평화의 댐을 만든다며 각 학급마다

걷어들였던 성금부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이승복까지........ 이 나라 정치의 지난달들이 주마등처럼

내 눈앞을 스치며 그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이 책은 내게 말한다. 


「"보코논교도들은 무엇을 신성시하나요?"

~"내가 알기로는, 하느님도 아닙니다."

~나는 몇 가지 추측해보았다.  "바다? 태양?"

"사람, 그게 전부에요.  오직 사람."  프랭크가 말했다.」p253


  커트 보니것이 들려주는 지구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이야기를 허구로 치부해버릴 수가 없다.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고양이 요람>처럼 보니것은 허구를 통해 실제를 이야기한다.  그냥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웃어넘길 수 없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이 책에 나오는 보코논식 자마키보(예정된 운명)처럼 어쩌면 인간은 스스로 자멸이라는

결론을 출발점부터 지닌 채 출발한 시한폭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게는 이 책이 인류가 인류에 의해 만들어가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예언서로 읽혔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보니것의 『제5도살장』을 읽으며 반전의 메세지를 찾지 못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보니것은 단순히 전쟁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을 위해 인간이 수단이 되는 그 모든 상황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가 문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고양이 요람>이 바로 '인간성 회복'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ps:  그의 책을 읽고 영화 <혹성탈출>이 떠올랐다. 인간성을 잃어가는 인간과 인간성을 지키려는 유인원들의 싸움처럼

허구라는 소설적 장치를 통해 커트 보니것은 인간이라는 종족의 아이러니를 우리 앞에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