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문자의 감옥(책)으로부터의 탈출!

묭롶 2018. 5. 13. 13:15

    나는 꽉 막힌 도로 안에 갇혀 있을 때마다 내가 탄 자동차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 길 없는 길(실은 하늘에도 항로가 있지만)을

질주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답답한 현실에 갇힌 느낌이 들 때도

내 눈앞에 어딘가로 통하는 문이 있으며, 난 단지 그 손잡이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답이 없는 현실도 어쩐지 막연하게 희망이 있을 것만 같아 조금은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책을 읽는 것도 어쩌면 길을 달리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책은 일방통행처럼 저자가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기도

하고, 어떤 책은 독자가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기도 하며, 또 어떤 책

특히 이탈로 칼비노의 경우처럼 들어가는 입구는 하나지만 갈 수

있는 길은 여러방향으로 뚫려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독서의 과정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저자가 의도하는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저자가 들려주고 나는 그걸 읽는 과정에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 거부감의 원인을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을 읽으며 얼마 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책을 '읽는'게 아니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저자가 마련해놓은 길(책의 독서)을 따라 달리다 이해가 안되는 대목에서 그걸 이해하기 위해

정체에 걸리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읽기의 과정이 아닌 광활한 창공(내 기억의 저장소)에 문장을 펼쳐놓고 각 문장의

부분을 해체하여 내가 원하는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그 전체 모습이 보여주는 온전히 나만의 결과물을 얻기를 원한다.


  일방통행, 이차선, 겨우 해봤자 왕복 십육차선일지라도 도로(서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책만 읽던 내가 드디어 그 문자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훨훨 나는 책을 만났으니 바로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이 되겠다.  이미 인친을 통해

이 책의 표지를 접한지는 한참이지만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란 생각을 이탈로 칼비노에 이어 또 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2차 세계대전 말미에 벌어졌던 드레스덴 공습을 겪은 책의 저자가 자신이 겪은 공습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는 내용의 일화로 시작한다.  그렇게 책 속에서 작가는 도대체 문장화되지 않던 책을 오랜 시간이 흘러

한참 또 다른 전쟁(베트남전)이 벌어지는 시대에 쓰게 된다.  작중 소설가가 쓰는 소설속 인물은 빌리 필그림이라는

약골로 정말 어이없게 전쟁에 배치되어 종전 후 결혼을 하게 되고 그 어느 날 그냥 트랄파마도어의 비행접시에

이유없이 납치되어 그 결과 시간을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그래서 소설은 소설속 화자의

사고(생각의 흐름)를 따라 제멋대로 과거, 현재, 미래가 뒤죽박죽인채 진행된다.  시계는 아침부터 째깍째깍이

아니라 내가 아침 여덟시에 아침을 먹다가 갑자기 저녁을 먹는 삼겹살 집으로 갈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다음날,

그도 아니면 일년 전의 어떤 특별한 기억이 있는 날로 돌아갈 수도 있는 그런 방식이다. 


「~그리고 물론 롯의 부인은 그 모든 사람과

그들의 집이 있던 곳을 돌아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러나 그녀는 기어이 뒤를 돌아보았는데,

나는 그 점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다. 

말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소금 기둥이 되었다.  뭐 그런 거지.」p37


「빌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었다.  」p82


  빌리는 자신을 납치한 '트랄파마도어'인들에게 말한다.  지구에 있는 인간이란 종족은 호전적이어서 언젠가는

트랄파마도어에도 큰 위험이 될 거라고........ 그말을 들은 트랄파마도어인은 말한다.  이 우주는 미래의 모월모시에

트랄파마도어 비행접시의 신규연료 실험 버튼을 누르는 순간 폭발해서 사라진다고....... 빌리는 말한다. 그럼

왜 그걸 아는데  막지 못하는거죠?  트랄파마도어인은 미래의 그 사실을 안다고 해도 그걸 막을 수는 없으며

그 일은 기어코 일어나고야 만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어차피 결정된 미래의 종말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행복한

어느 한 때를 선택해서 살면 된다고 말한다.  아하~!!! 이제야 알겠다.  비록 몸은 답답한 사무실 안에 있지만,

나는 언제든내가 원하면 낮잠을  맛있게 자던 봄날 오후의 도서관으로 언제든 돌아가면 된다는 말씀 되시겠다.


  식당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 중에서 행복한 때만 골라서 계속 무한반복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나는 그제서야 이 책에서 총 106번 언급되는 '뭐 그런거지'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론 이 책을 읽고『제5도살장』을 반전(反戰)소설로 분류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이 책에는

반전에 대한 메세지도 무언가를 주장하는 주제도 뭔가를 전달하겠다는 의도도 없다.  그저 뭔가를 굳이 반대한다면

그건 기존 문학이 지닌 서사에 대한 반대일 것이다.  장르와 시간이 뒤죽박죽 그야말로 떠오르는 장면 그대로를

문장화한 소설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아직은 무언가 결정되지 않은 책 속의 문장들은 자유롭다.  그저 나는

문장의 어떤 부분을 읽으며 그 부분에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나의 경험을 그 위에 겹치고 그 겹쳐진 장면 속에서

보여지는 새로운 서사를 지켜볼 뿐이다. 


「~그곳 어딘가에서 가엾은 늙은 고등학교 선생 에드거 더비가

지하묘지에서 찻주전자를 가져왔다가 들켰다. 

그는 약탈죄로 체포되었다.   재판을 받고 총살을 당했다. 

~새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새 한 마리가 빌리 필그림에게 말했다.  "지지배배뱃?" 」 p265


  더불어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마저도 하게 만들었으니, 사람이 죽는 건 다만 그 순간 잠시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며 다른공간에서는 또 그 죽은 자가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트랄파마도어식의 사고는 왠지 어린왕자의 소행성도

어딘가에 실제하며, 로맹가리도 죽지 않고 살아서 어딘가에서 두툼한 시가를 흡족하게 피우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한다.  '뭐 그런거지' '지지배배뱃'


※ 삶의 아이러니를 문장화하는 커트 보니것의 방식이 참 마음에 든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수히 많은 장비들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폭력적 힘을 지니고도 결국 나막신에서 비롯된 괴저로 목숨을 잃는 위어리와 보통의 전쟁소설이라면

주인공이 됐음직한 에드거 더비가 종전 바로 직전 그것도 찻주전자 하나 때문에 죽음을 맞는 장면은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가장 멋진 장면이었다.  놀이공원 축제의 피날레 불꽃놀이처럼 드넓은 창공에 펼쳐져 날아다니는 보니것의

아이러니를 보는 즐거움은 참으로 장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