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펀치에 빠지다>

로맨틱펀치와의 열아홉번째 만남: 17.0.3.25 76th로맨틱파티(홍대클럽크랙)

묭롶 2017. 3. 28. 22:13



  오늘 저녁 퇴근 후 딸래미를 씻기는데 딸이 물어봅니다.

"엄마, 누구네 할아버지는 왜 아직도 살아있어?"

  친할아버지는 작년 초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는 본적이 없는 딸아이가 할아버지가 있는 친구가

신기했나봐요.


"응. 사람마다 하늘나라 별님이 되는 시간이 다 달라서 그래."


딸아이는 제 대답이 신통치 않은 눈치입니다.

"너, 혹시 장난감 건전지가 언제 떨어질지 미리 알 수 있어?"

"그건 모르지. 하다가 안되면 건전지 없는거지."

"그렇지, 사람마다 들어있는 건전지가 달라.  어떤 사람은 엄청 큰 건전지가 들어 있고

  또 작은 건전지 있는 사람도 있는데 떨어지면 별님 되는거야."


  제 나이는 지금 마흔둘입니다.  마흔 살의 나이로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기 시작했을때 정말

기분이 이상했어요.  어쩌면 제 생에 남은 건전지가 당장 떨어진다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로맨틱펀치 공연후기를 쓰다가 왠 뚱딴지 같은 소리냐구요. 

76th로맨틱파티 며칠 전에 보컬이 가족처럼 십오년을 지냈던 멍멍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데요. 

사람도 부지기수로 죽는 세상에 멍멍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슬퍼하는 걸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 주변에 소중한 무언가를 잃는다는 상실감은 그 대상이 무엇이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는가에 달려있겠죠.


  그래서도 로파가기 전에 걱정이 됐어요.  상실감이 클텐데 공연을 그것도 신나는 곡을 노래한다는 게

가슴이 걸래쪽일때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화장하고 방긋방긋 웃으며 고객응대하는 것도 같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 가면을 쓴 자신을 의식한채로 또 그런 자신을 바라본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했던 저로서는 공연을 보러

올라가는내내 걱정이 컸어요.


  그래도 제 걱정과는 다르게 고맙게도 공연진행하는 모습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강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겉으로 약해보이지만 그런 강함이 있었기에 열악한 음악환경 속에서도 십년 넘게 밴드가 유지된

것이겠지요.


  다만 제 감정이 오바된 상태여서인지 I belong to you를 부를때는 가슴이 울컥했어요.  어쩌면 그 녹아

없어질 잔설 같은 삶을 붙잡고 아둥받둥 사는 우리네 삶의 애틋함을 노래하는 것 같아서 참 맘이 짠했어요.


  감정 과잉은 여기까지구요.  76th로맨틱파티 후기 들어갑니다.


※ 76th로맨틱파티 셋리스트

1. 글램슬램
2. 미드나잇 신데렐라
3. 파이트클럽
4. 홀릭
5. DOWN DOWN DOWN
6. Zzz
7. 커튼을 닫아요. 에이미
8. 이밤이 지나면
9. I beong to you
10. 굿모닝블루
11. 사랑에 빠진 날
12. 야미볼
13. Still Alive
14. 로맨틱4중창펀치가 들려주는 Zzz
15. 눈치채줄래요(로맨틱4중창펀치)
16. 마멀레이드
17. 메이데이 메이데이
18. 키스
19. 토요일 밤이 좋아
20. 좋은 날이 올거야
21. 어메이징


   76th 로맨틱파티는 3월 25일, 3월 26일 양일간 홍대 클럽크랙에서 있었어요.  25일은 게스트로 폰부스가

26일은 연남동덤앤더머가 출연했죠.  저는 사정상 25일 하루만 공연을 볼 수 있었어요. 



25일 공연에서 제가 좋았던 건


1. 상큼포텐 터지는 로맨틱펀치의 신곡 Zzz의 라이브.

2. 썬글라스 대신 일반 안경을 써서 공연 내내 실컷 볼 수 있었던 배인혁 보컬의 예쁜 눈망울.

3. 로맨틱4중창펀치 아카펠라때 제가 처음 들은 레이지님의 노래음성.

4. 로맨틱4중창펀치가 들려주는 '눈치채줄래요'의 멋진 화음.


  이날도 어떻게든 영상을 찍어보겠다고 똥손이 2층뷰를 탐냈지만 제가 들어갔을땐 이미 만석이어서 별 수 없이

1층 맨 뒷자리에 의자 펴고 위로 올라갔는데 워낙 무대가 낮아서 밴드들 뷰가 너무 안 좋았어요.

거기다 중앙에 키큰 남자분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서 상황이 최악이었죠.  이걸 찍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엄청 고민했지만 그래도 찍었습니다. 원래 똥손이 무식한거니까요.

저의 폭망 영상은 유튜브 https://youtu.be/lS7Li-XiszM 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76th로파가 가장 기다려졌던 이유는 오랜만에 발표된 신곡 Zzz 때문이었죠.

라이브 첫공연이라 엄청 기대됐어요.  그래서 신곡 얘기부터 먼저 할게요.  순서가 뒤죽박죽 되겠지만요.

물론 음원 공개되자마자 열심히 들어서 노래는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잔잔하게 시작해서 한여름 마른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지듯 갑자기 사운드가 폭발적으로 두두두 커질때 가슴이 마구 뛰었어요.  뒤이어 xx아이스크림 슈팅x타가

입안에서 터지는 듯한 노래가사가 퐁퐁 터질때는 기분도 따라 비눗방울처럼 둥실둥실 떠올랐죠.  후렴구에 '잘있어요.

나는 집에 갈거에요'는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떼창을 했어요. 



  배보컬이 신곡 Zzz의 메이킹스토리를 들려줬어요.  가사에서 후렴구 '잘 있어요. 나는 집에 갈거에요.'는

레이지님이 평소에 회식이나 모임에서 꼭 먼저 일어날때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를 반복하는데서

착안을 했고, 개똥같은 소리는 트리키님이 평소에 자주 하는 얘기래요. 원래 예전에는 굉장히 하드한 락을

많이 했는데 이번 신곡은 장르가 다르다며 여러분 상큼하죠 라며 되묻기도 했어요.



  보컬은 마멀레이드 때도 가사숙지 차원에서 하루에 세번씩 불렀다고 오늘도 세번 부를 거라고 말했지만

어메이징 앞부분은 장난처럼 부를듯이 하다가 바로 어메이징으로 넘어가서 두번 반을 부른 셈이 됐죠. 

배보컬은 Zzz를 부르고 나서 로파 전에 매달 음원을 발표하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켰다며 스스로 대견해했죠.  그

리고 이번 곡이 지금까지 중에 가장 반응이 좋다며 멜론 인디밴드 차트순위 50위를 했는데 오늘은 93위로 떨어졌다고

말했죠.  뒤이어 십센치나 데이브레이크 보컬들 자주 만나는데 만나면 맨날 자기들 곡 차트 순위 확인한다며 본인은

그런거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차트순위에 없어서 안볼 뿐이라고 아쉬움을 표했어요.  물론 곡을 발표해서 큰 돈을

벌겠다는건 아니지만 열심히 만든 곡인데 반응이 신통찮으면 속상하단 표현도 했죠.  그러다가 잘되면 좋은 일이라며

장난기 있는 웃음을 지었지요.



  저는 이날 I belong to you에 가장 감동받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좋았던 건 DOWN DOWN DOWN 이었어요.

~껌을 뱉듯 사랑한다 말하겠지 Down Down Down on the ground 에서 콘치와 주고 받는 부분이 너무

좋았어요.  사물놀이 휘몰이 짝두름에서 쇠 두개가 서로 주고 받는 가락처럼 배보컬과 콘치가 Down Down/ Down

on the groung를 주고받을때 흥이 나서 제 몸이 들썩였지요. 

  주변에선 똑같은 노래 부르는데 뭘 그리 자주 가냐고 핀잔을 주는데, 자꾸 들어도 매번 이렇게 다른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요즘 로펀 공연을 보는 큰 재미는 개별곡들만의 매력을 발견하는데 있는 것 같아요.



  평소 배보컬은 썬글라스를 끼고 공연을 하다 거의 마지막 즈음 가면 썬그리를 벗고 맨얼굴 보여주는데요.  이날은

처음부터 안경을 쓰고 공연했어요.  그래서인지 눈동자가 그대로 보여서 2층을 잘못 올려다보면 자칫 법적문제가

될 수 있어 시선처리를 못하겠다고 저렇게 아름다운 분들이 많은데 고통스럽다고 말했죠.  저는 예쁜 눈을 공연내내

볼 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이날 로맨틱4중창펀치가 들려주는 '눈치채줄래요'는 화음이 그야말로 최고였어요.  락밴드가 아니라 아카펠라

밴드로 보일 정도였죠.  배보컬은 밴드멤버들 처음 만났을때 나이가 스무살이었는데 만난지 얼마 안됐는데

화음이 쫙쫙 잘 맞는다고 너스레를 떨었죠.  Zzz를 부른 뒤 배보컬이 관객들에게 신청곡을 묻었고 누군가

Zzz를 들려달라고 말하자 그럼 오랜만에 Zzz(방금 전에 부른 곡)나 불러볼까라고 말해서 다들 엄청

웃었어요.  좋은 날이 올거야 부를때는 마지막에 "좋은 날은 내일이야."로 가사 바꿔 부르며 26일 공연도

많이 와달란 표현했죠. 



  로펀 공연은 지난번에도 했던 말이지만 종합선물세트같아요.  보는 재미, 듣는 즐거움, 함께 즐기는 기쁨까지

그 어떠한 공연도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울거에요.  그래서도 다들 장거리와 피로를 무릎쓰고 어떻게든

로펀공연을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인터넷에 4월 2일 복면가왕에 출연한 양기치소년이 배인혁보컬이란

글들이 많더군요.  사실이라면 저는 정말 눈물이 날 것만 같아요.  이렇게 실력있고 멋진 밴드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기를 입덕한 순간부터 계속 간절히 기도했거든요.  언제나 제가 블로그 공연 후기에서 로펀

흥하고 대박나길 기원했던 기도가 드디어 통했나 싶어서 너무 감격스러울거에요. 

  매달 로파전 음원 한곡씩 발매해주겠다는 배인혁보컬의 약속처럼 4월 22일 77th로파 전에 나올

음원도 너무 기다려져요.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주는 멋진 밴드 로맨틱펀치 언제나 흥하고

꼭 대박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