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맛집을 찾아가고 또 한참을 줄지어 기다려 먹고도 그 집을 또 찾아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굳이 고생을 사서 하지 않아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널려 있는데, 맛집탐방의
번거로움을 기꺼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기만족을 위해서인 것 같아요. 나의 기대와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는 행동은 과정의 번거로움까지도 흔쾌히 받아들이게 하지요. 나는 먹는 즐거움 따위 필요없고
그저 한끼를 때우기 위해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많아요.
음악도 음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편하게 집이나 차에서 아니면 커피숍에서 누가 틀어놓았거나 내 취향대로 틀어놓은 음악을
듣는 방법도 있는데 왜 굳이 먼 곳에서 하는 공연을 쫓아가게 되는 걸까요? 전자렌지에 30초만 돌리면
땡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도시락처럼 그저 터치 한번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무엇이 저를
광주에서 서울까지 왕복 KTX를 타게 만들었을까요?
터치 한번에 들을 수 있는 음악이 패스트푸드라면 로맨틱펀치의 음악은 손님을 앞에 두고 진행되는
철판요리(데판야끼)와도 같아요.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즉석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로 음식을 조리해서
보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철판요리가 바로 로맨틱펀치의 공연이죠.
72회에 처음 갔을때도 느꼈지만 공연 시작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천천히 가는데 공연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가요. 73회 로파는 (로맨틱파티를 줄여서) 정말 은혜로운 셋리스트를 프로 요리사
(보컬: 배인혁, 기타: 콘치, 레이지, 베이스: 유재인, 드럼: 트리키)들이 현란한 퍼포먼스로 끓여낸
감동의 도가니탕이었죠. 좋아하는 Little Lady를 불러줬을때는 속에서 뭔가가 울컥하더라구요.
(저같은 돌심장이요.)
이날 셋리스트에요. (무려 18곡, 제가 보컬이었으면 중간에 피를 토했을 거에요. 힘들어서....
사람들은 듣기가 힘들어서 토하구요.)
1. 글램슬램
2. 몽유병
3. 파이트클럽
4. DREAM on
5. 치명적 치료
6. Little Lady
7. 신곡(가사 : ~~잘자요:이때 연주되는 몽환적인 기타선율 너무 좋았어요)
8. 어서가, 어둠이 오기 전에
9. Appointment
10. 굿모닝블루
11. 눈치채 줄래요.
12. 사랑
13. Still Alive
14. 마멀레이드
15. 키스
16. 토밤
17. 야미볼
18. 어매이징
<너무도 은혜로우신 로펀교 교주님>
이날 공연은 72회 로파와는 다른 셋리스트 구성 말고도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을 보여줬어요.
제가 이번이 두번째 로파라 기존에 어떻게 진행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올해 마지막 단독공연이어서인지
한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내용과 자신들의 솔직함을 멘트 속에 담아냄으로써 제 개인적으로는
더 크게 감동하고 로펀에 한발짝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어요.
배보컬은 자신들이 '환절기'를 겪었다고 표현했어요.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어도 일주일, 약을 안 먹어도
일정 정도 시간이 걸려야 치료가 되는 것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감기처럼 로펀이라는 밴드에도
크고작은 어려움들이 찾아왔겠지요. 그 과정을 우스개소리처럼 얘기했지만 그 과정을 풀어내기까지의
아픔과 고민이 함께 느껴져서 웃프더군요. (레이지랑 싸웠던 일화를 배보컬이 얘기하며 "그럼 그만둬!"
하고 말했지만 둘 중 누구도 박차고 일어나지 못했다면서, 이미 멤버가 한 명 떠났는데 여기서 또 누군가가
그만둔다면 이건 그만해야하는거란 말을 할 때 맘이 아팠어요.)
배보컬은 올해 9월에 계획했던 앨범이 못 나온 건 곡 정리를 해줘야하는 레이지가 육아를 핑계로 게으름을
피워서라며 콘치가 가사도 멋지게 써놓았고 자신도 몫을 했으니 레이지만 역할을 하면 내년엔 앨범이
나올 수 있다고 짓궂게 레이지를 놀리기도 했지요.
그러고선 횟집 아저씨가 화장실 다녀온다는 말을 손님들 앞에서 하면 안된다면서 이렇게 예쁜 팬들이
있는데 결혼을 하면 되겠냐고 본인의 독신주의를 다시금 피력하기도 하고 정세가 어려운데 애를 낳는
트리키도 있고 더구나 곧 있으면 애가 둘이 되는 레이지라며 놀리고선 본인이 제일 신나서 제일 많이
웃는 모습도 보여줬어요.
또 올 한해 락페스티벌 때 국카스텐 보러 온 팬들이 로펀으로 많이 유입된 것 같아 하현우보컬에게
고맙다고 만나면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겠다고 말하며 콘치에게 같은 의견인지를 물으니 콘치는
"나는 한번도 내가 누군가에게 진다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답하네요. 참 바르고 곧은 콘치에요.
일제시대 태어났으면 분명히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을 성격이지요.
사실 저도 국카스텐 보러 올해 9월 초 난장 페스티벌 갔다가 로펀을 보고 그날로 입덕한 사례여서
말인데요. 국텐이 노래잘하는 밴드라면, 로펀은 마력의 밴드에요. 국텐 음악은 시디로 들으나
공연으로 보나 매 한가지지만, 로펀은 공연 때마다 달라요. 볼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죠.
아줌마라 계속 요리에 비유하게 되는데요. 국텐이 표준 조리법을 가진 성공한 맛집이라면,
국텐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한 가지 재료를 가지고도 다른 요리법을 시연하는 실비집이에요.
변수와 우연성, 그리고 돌발성이 로펀 음악의 특징이라면 특징인 셈이지요.
<외줄 펜스 위를 걷는 배보컬>
물론 73회 로파때도 배보컬은 빠른 셋리로 관객들을 들뜨게 했다가, 멘트로 웃겼다가,
조용하고 서정적인 노래로 관객들을 감동받게 하고, 또 그것으로 부족해서 무대 옆 일자로 놓인 펜스
위를 왕의 남자 공길이처럼 외줄타기로 걸으며 노래를 부르는 묘기대행진을 보여줬지요.
물론 배보컬의 대표적인 퍼포먼스들은 (토밤 물쇼, 스탠딩 마이크 돌리기 등) 매번 보여주는
것들이지만, 공연 때마다 카메라 구입을 충동질하는 현란한 표정 비주얼과 춤사위 그리고 돌발적인
퍼포먼스들은 관객들을 로펀의 마력 속으로 빨려들게 하지요. (점점 제 표현이 로펀을 술로 치자면
알콜중독에 가까워지고 있네요.) 그래서 누군가는 잠을 안 자도 안 피곤하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프고, 업무가 힘들어도 그냥 혼자 피식피식 웃게 되는 히로뽕보다 무서운 이 증상을
로~뽕!!! 이라고 하더군요.
로맨틱펀치의 '야미볼' 노래가사 "맛있겠군~~맛있겠어!" 처럼 볼때마다 다른 현장감으로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을 동시에 충족시켜주기에 로펀(로맨틱펀치를 줄여서)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접하게 되면
그 중독적 매력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저는 로펀 공연을 한 술 뜨는 순간 매료되어 계속
공연에 허기를 느끼는지도 모르겠어요. (12월 3일 '내 귀에 도청장치' 단독공연 게스트로 로펀 출연한다는
소식에 잠깐 고민했지만 못 봐서 후회하느니 노래가사처럼 저지르기로 하고 KTX왕복표 끊었어요)
->여기까진 공연에 대한 제 의견이구요. 아래부터는 제 개인적 기록입니다.
로펀에 중독된 저는 10월 말 72회 로맨틱파티에 이어 73회 로파(로맨틱파티를 줄여서) 공지가 뜨자마자
티켓팅도 하기 전에 왕복 KTX표부터 예약했어요. 이번에도 티켓팅은 망작이었지만 예쁜 S.H씨의 도움으로
92번을 얻게 됐어요. (물론 손이 똥손이라 사진은 폭망했네요.)
<이번 로파 동행들: 생수, 컨디션,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
73회 로파때는 조금 일찍 올라가서 공연때 사귄 독수리 오자매(통영,부산,광주누나,S.H,예진)와 예쁜
동생 두명과 점심을 먹기로 했죠. 원래 계획은 예쁘게 꾸미고 화장도 하고 가자였는데, 그 전날 닭 반대
집회 갔다가 술을 너무 마셔서 아침에 겨우 씻고 서둘러서 겨우 KTX를 탈 수 있었어요. 서울 공연때마다
전날의 과도한 음주로 컨디션이 엉망이었는데 이날은 정말 최악이어서 컨디션도 하나 사먹었네요.
<우여곡절 끝에 찾은 하나투어브이홀>
그놈의 술이 웬수네요. 홍대입구 9번 출구로 나왔어야 하는데 4번 출구로 나와서 반대편으로 한참을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이번에도 또 반대편으로 가버려서 무려 40분을 헤맸어요. 다음 로드뷰 지도
방향을 계속 거꾸로 본거죠. 지도 난독증 탓인지 아니면 숙취 탓인지 모르겠어요.
점심인 12시경 드디어 독수리 오자매가 공연장 일층 커피숍에서 만났어요. 커피숍 유리창 너머로
주차장이 바로 보여서 우리는 공연장 도착하는 사장님을 본 후 인근 부대찌개 집에서 식사를 했어요.
배보컬 도착하는 모습 보고 싶어서 커피숍에서 마냥 기다리고 싶었지만 공연전 민생고는 해결을
해야 해서요. 부대찌개에 부산언냐는 쏘맥을 저는 해장술을 한잔 하고 다시 공연장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공연 전까지 얘기꽃을 피웠지요. 보통의 경우 한 남자를 여러 명이 좋아하면 큰일나지만
공인을 다수가 좋아하는 건 합법적이니까요. 신나서 떠들었죠.
<로파 게스트: YMC(연남동 메탈 시티)의 공연, 밀양 공연에서 '꽃사슴'을 귀엽게
부르던 그들과 너무 큰 간극을 보여준-배보컬 말마따나 많이 가버린-비주얼 쇼크인
공연, 물론 얼굴에 칠을 해도 갈고리님의 행동은 변함이 없으셨죠.>
여섯시에 시작한 공연이 여덟시 십오분 가량이 되어 끝나기까지 너무 순식간이라 끝났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퇴근길 본다고 기다리는데 막차 시간에 쫓기는 저와 부산언냐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옮겼어요. 다음 공연을 기약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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