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로맹 가리 (1914년생)
작품발표: 1956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 수상
주인공: 모렐
주요활동: 코끼리 보호 활동
「우리는 모든 인간에게 일종의 기본적이 예의가 있다고
깊이 믿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어쩌면 흘러간 시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며, 비천한 현실의 무게가 머지않아
우리를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할 거라는 사실도 기꺼이
인정합니다. 그렇죠, 약간은 코끼리와 같은 처지라고나
할까요」p111
저자: 알베르 카뮈(1913년생)
작품발표:1946년 탈고
주인공: 리유
주요활동: 페스트 창궐 도시에서 의료행위 종사
「"우리가 가진 통행증이면 방파제까지 갈 수 있어요.
정말이지 페스트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 바보
같아요. 물론 인간은 희생자들을 위해서 싸워야 하죠.
그러나 사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게 되고 만다면 투쟁은
해서 뭣 하겠어요?"」p 342
저자: 허먼 멜빌(1819년생)
작품발표: 1851년
주인공:에이헤브 선장
주요활동: 피쿼드호의 선장으로 자신의 한 쪽다리를 잘라먹은
흰 고래를 추적함.
「오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오오,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
허허, 지나간 내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먼 바다 끝에서
밀려 들어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p681
나는 책을 읽는 도중에 다른 책의 구절이나 인물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난 이런 경험을 독서퍼즐놀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 작품을 통해 동일 작가의 다음 작품과의 연관성을 발견하거나 다른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 인물들 간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일은 흩어진 퍼즐의 한 조각을 찾아낸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를 읽는 도중, 작중 인물 모렐이 알베르 카뮈의 작품 『페스트』의 의사 리유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의 에이해브 선장과 닮은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독서활동은 자신의 작품 활동에 영감을 주고 때론 촉매로 작용한다. 1851년에 출간된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서 언급된 '스스로 프로메테우스가 된 인간'을 1943년 출간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46년에 출간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는 전작인『시지프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형상화 한 작품이다. 나는 알베르 카뮈가 『모비딕』을 읽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허먼 멜빌의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을 계승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끝 부분에 이르면 신생기의 끝무렵 지구에 출현했던 파충류에 관해 언급되어 있다. 그전까지 바다에서 아가미로 호흡하던 생물체가 바다를 버리고 뭍으로 기어 올라와 아직은 생기지도 않은 기관이 생존을 위해 생기기를 바라던 파충류에 관한 이야기는 신을 버리고 인간을 택한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케한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 안에 또 하나의 생명체를 창조했소. 자신의 치열한 생각 때문에 스스로 프로메테우스가 된 인간, 당신의 심장을 영원히 쪼아 먹는 독수리, 그 독수리야말로 당신이 창조한 생명체인 것이오.」p263-허먼 멜빌『모비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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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현대적 정복자인 프로메테우스의 혁명을 위시하여 혁명이란 무릇
신들에게 항거함으로써 성취되는 것이다. 그것은 주어진 운명에 맞선 인간의
권리 주장이다. ~나는 인간을 짓누르는 것과 맞서서 인간을 앙양시키기에
나의 자유와 반항과 정열은 그 긴장과 그 명철성과 그 엄청난 반복 속에서
한 덩어리가 된다.
그렇다, 인간이야말로 인간 자신의 목적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적이다.
그가 무엇인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삶 속에서이리라.」
p133~134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절망해선 안되지. 오히려 미쳐야 돼. 폐도 없이 땅 위에서 살아보려고 물 밖으로 배를 내놓고, 어떡해서라도 숨을 쉬어보려고 애썼던 최초의 파충류도 미쳤던 거지. 어쨌건 그래서 인간이 생겨나게 되었지. 항상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하는 거야."」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 |
물론 로맹 가리가 『모비딕』을 읽었는지의 여부도 나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허먼 멜빌, 알베르 카뮈, 로맹 가리는 '인간'이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았던 알베르 카뮈와 로맹 가리는 서로의 작품을 읽고 또 서로 영향을 받았을까? 로맹 가리가 문단에서 유일하게 인정한 작가가 알베르 카뮈였으므로 아마 서로 우정을 교류하진 않았더라도 작품은 읽었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아마 그 시대 서로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 같은 인간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했으므로 은근한 동질감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참전을 하고 싶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거부당한 채 고립된 알베르 카뮈와 참전을 통해 인권을 침해한 나치세력을 응징하고자 했던 로맹 가리.......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를 읽고서 그의 작품 활동의 처음과 끝이 알베르 카뮈의 작품 활동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원형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뮈의 작품활동은 부조리->반항->사랑(인간) 으로 진행되었고 로맹 가리의 작품은 사랑에서 출발해서 마지막까지도 인간이었으니 카뮈가 자신의 계획대로 사랑에 해당되는 『최초의 인간』을 죽지 않고 끝까지 집필했다면 그 둘은 살아생전 서로 뜻을 나눴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사람이 맞추는 퍼즐처럼 거칠게 비슷한 색깔이나 모양을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것처럼 허먼 멜빌, 알베르 카뮈, 로맹 가리를 동일 선상에 놓고 맞춘 식이 되었지만 그들의 드러난 생애를 통해 발견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나름으로 찾아본다는 즐거움을 그들이
거부할거라곤 생각치 않는다.
ps: 또 찾은 퍼즐의 한 조각.
「여하튼 우리 인류는 수백만 년 전 진흙을 벗어났으니, 결국 어느 날엔가는 우리를 지배하는 혹독한 법칙을 극복하게 될 겁니다. 이 친구가 옳았지요. 이제 변해야 할 때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에는 인간으로서 갖는 결함과 도전으로부터
또 하나의 허물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p622
왠지 이 구절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그로칼랭』을 연상케 한다.
작중 인물이 사회적 자아를 벗고 '그로칼랭'이 된다는 작품의 말미부분과 로맹 가리라는
사회적 편견을 벗고 에밀 아자르가 되는 과정의 유사점을 놓고 볼 때 윗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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