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로맹 가리>

<하늘의 뿌리>인간이 지켜야 할 바를 외치다.

묭롶 2014. 4. 9. 19:00

 

  최근 방영되는 드라마 <밀회>에서 권력층의 우아한 노비를 자처하는 김희애에게 조선족 아주머니가 한 말이 화재가 되고 있다. 

 

“나를 어찌 볼지 모르지만, 나 이래 봬도 모택동 주석이 대문호 루쉰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학교 다녔고 만 인민이 다 평등하다, 내가 내 주인이다, 그렇게 배운 사람이요. 안 할 말로 내 맘에 들믄 내 돈 주고도 함다” - <밀회: 대사중>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종편방송 드라마지만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나 자신의 현재를 되돌이켜 보게 되었다..

 

"돈의 노예' ,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는 '돈의 노예'다.  더 많이 가진 자는 덜 가진 자를 돈의 힘으로 부리고, 없는 자들은 한 달 한 달을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시한부의 삶을 살아간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는 말 그래도 종이호랑이일뿐,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사회 통념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하늘의 뿌리』에서 주인공 모렐은 아프리카에서 학살당하는 코끼리들을 보호하는 성문법을 만들고 이를 위한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반군과 결탁했다.  반군과 언론, 정치계는 각자의 입맛에 맞게 모렐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정당성의 표식으로 삼으려고 하지만 모렐은 코끼리를 보호하겠다는 순수한 의도 외에는 다른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 모렐의 순수함을 두고 대다수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하지만, 모렐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은 모렐이 지닌 신념에 동조하게 된다.

 

  실상 로맹가리가 모렐을 빌어 하고 싶었던 바는 코끼리로 표상되는 자연보호가 아니다.  프랑스 혁명의 근간이 되었던 인권선언의 가장 핵심인 인간의 존엄성 복원을 부르짖는 것이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존엄성을 인정받고 그 개개인이 모두 개별성을 보호받아야 하는데, 말 그대로 인권선언은 모렐이 나눠주는 코끼리 보호 호소 청원서 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조롱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생태소설로 분류하는 견해에 반대한다.  이 책은 극한의 인본주의를 보여주는 휴머니즘 소설이다. 

 

  로맹가리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타인이 혐오하는 삶일지라도 그 인물도 그 안에서 미래를 꿈꾸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또 사랑받길 원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지극히 당연한, 하지만 모두가 잊고 지내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있다. 

 

「"절망해선 안되지.  오히려 미쳐야 돼.  폐도 없이 땅 위에서 살아보려고 물 밖으로 배를 내놓고, 어떡해서라도 숨을 쉬어보려고 애썼던 최초의 파충류도 미쳤던 거지.  어쨌건 그래서 인간이 생겨나게 되었지.  항상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하는 거야."」

 

  그의 초기작인 『하늘의 뿌리』를 읽고서야 그의 문학의 출발이 모든 인간을 향한 로맹가리의 뜨거운 가슴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아는 사람이 로맹가리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난 '바보'라고 말해줬을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하는 로맹가리의 작품이 돈의 노예로 사는 내 자신의 잃어버린 '존엄'을 되돌이켜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