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로 28개월이 된 나의 딸아이는 얼마전부터 TV를 보다가 갖고 싶은 것이 보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꺼야! 내꺼!"라며 당장 자신의 눈 앞에 해당된 물건을 대령하라고 떼를 쓴다. TV에 나오는 물건이 영상에 불과하며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자신의 소유가 될 수는 없음을 이제 세살된 딸아이에게 길게 설명해보지만, 갖고 싶은 아이의 욕망을 설득하기에 엄마의 설명은 부족하기만 하다.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강아지 인형 브라우니를 당장 눈앞에 대령하라는 딸아이의 떼장 앞에 내가 과연 얼마나 언제까지 딸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두려움이 엄습한다. 지금이야 엄마, 아빠가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나이 많은
부모가 한 쪽 또는 양 쪽 모두 직장을 잃는다면 내 딸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참는 법을 일찍 배워야할지도 모른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고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성문법 상의 문구가 무색하게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 아니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지위와 환경이 결정된다. 자신이 굳이 욕망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요소들이 충족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는 갖고 싶은 욕망에 절실함을 느끼지 않지만,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는 자신의 태생에 선택권이 없었음을 커가는 내내 원망하게 마련이다. 만약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바른 인성을 길러줄 부모를 둔 아이라면 선택에 망설임을 갖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그 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주저가 없을 것이다.
얼마전 종영된 드라마 <상어>에서 조상득(이정길 분)회장은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공산당 편에 섰다가 다시 미군정으로 자리를 바꾼다. 이후 그는 자신의 집 상전이었던 독립운동가의 자손의 신분을 가로채게되고 그 신분을 지키기 위해
본처마저 내친다. 그 뒤로도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위험요인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지켜나간다. 그의 그런 일말의 행동에 죄책감은 없다. 스스로가 자신에게 각인시킨 나라와 민족을 위한 행동이라는 명분으로 자기자신에게 직접 면죄부를 부여한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 대부분이 이정길이 연기한 조상득회장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사실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 인물이 얼마나 잔인해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
드라마 <상어>와 영화 <숨바꼭질>은 우리에게 같은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가진자들의 각종 위법을 눈감아주고 그들의 초법적 지위를 인정하며 그들이 마음놓고 치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안 그 이면에는 사회가 최소한으로 유지해야 할 복지혜택도 받지 못한 채 각종 사회 문제로 기사 사회면을 장식하는 소외계층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냥 생각해봐도 상대편은 맨날 반칙해도 눈감아주고 나만 술래가 된다면 짜증나지 않겠는가!
영화는 영화로만 보여야하는데, 영화 <숨바꼭질>을 보고 가장 무서웠던 점은
영화속 이야기가 실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요즘 공포물의 주인공이 귀신이 아닌 사람이 되는 이유도 결국은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두려운 대상은 타인이라는 점을 드러낸다고 보겠다. 소외계층을 감싸기보다는 질타하는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 더더욱 깊이 숨어버린 술래들의 분노가 어떤 사회적 병폐로
터지게 될지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대한민국 스릴러 장르의 주인공은 '타인'이 될 것이다.
PS. 제발 영화는 영화로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아저씨>도 그렇고 <숨바꼭질>,<공모자들>너무 무서워요. 술래들이 술래 그만둘 수 있게 기회도 좀 주시고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희망도 가질 수 있게 해주세요.
정규직은 짤릴까 두렵고, 애들은 왕따 당할까 무섭고, 비정규직도 짤릴까 두렵고 청년은 취직 못할까 두렵고, 부모세대는 버림받을까 두렵고,
좀 안 두렵고 살 수는 없을까요?
'영화를 봤어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희야>폭력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0) | 2014.05.22 |
---|---|
<엘리시움> 어쩌면 인간의 적은 인간? (0) | 2013.09.03 |
<설국열차> '잉여'들의 전복을 꿈꾼다. (0) | 2013.08.06 |
<7번방의 선물>이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 (0) | 2013.02.16 |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보면 쉬운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0) | 2013.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