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아틀라스>, <설국열차>, <엘리시움>은 미래 인류의 암흑기를 다룬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사람들 대부분이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는 점을 비춰봤을때 영화에서 암울한 미래를 꾸준히 반복적으로 그린다는 건 사람들의 희망을 역행한다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사람들의 바램과는 달리 유토피아가 아닌 참혹한 미래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얻고 설득력있는 미래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큰일이다. 나조차도 영화<엘리시움>의 환상적인 세계가 미래인류 공통에게 주어지는 환경이라면 웃기시네.. 말도 안돼.. 이렇게 피식 웃을 판이니 말이다.
닉 블롬캠프 감독은 전작 <디스트릭트9>을 통해 외계인에게 지배받는 인류라는 기존 영화들의 틀을 전복시킨 바 있다. <디스트릭트9>에서 외계인은 막대한 중화기를 가지고도 공격과 파괴본능을 지니지 못한 탓에 인류에 의해 핍박받는다.
닉 블롬캠프는 인간의 공격성향과 파괴본능에 주목하여 전작에서는 인류에게 짓밟히는 참혹한 외계인의 현실을 다큐멘타리 기법으로 보여줌으로써 인류는 절대선이고 이계생명체나 여타의 시스템은 절대악이라는 보편성의 허구를 깨보인다.
영화 <매트릭스>가 기계에 지배당하는 인간과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복제인간을 다룬다면 <설국열차>와 <엘리시움>은 인간에 의해 지배당하는 인간을 다룬다.
사실 <설국열차>와 <엘리시움>이 다루는 인간에 의한 지배는 현재도 이뤄지고 있기에 별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 영화가 현실에 갖는 차이점은 현실에 대한 전복의지를 다룬다는 점이다. <설국열차>에서 반란의 핵심 커티스가 애초에 억압계층을 해방하는 목적의식을 지닌 인물이란 점과 <엘리시움>의 맥스가 초기에는 자신의 생명을 구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차이를 지니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수반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인간은 대부분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자신의 목적의 정당성을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더 심한 경우는 당연하게 여기는 사례도 다반사다. 영화 <엘리시움>에서 지배층의 인간은 지구별 인간을 자신들의 시스템을 위협하는 위험요인 내지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맥스를 보육한 수녀님으로 보이는 할머니의 말씀처럼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역할을 지닌 특별한 존재이지만 현실은 인간이 인간을 천시하고 지배하는게 보편적 현실이다.
감독이 <엘리시움>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하나이다.
그건 인간은 누구나 특별한 인간이며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에서 이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말을 위해 누군가는
끊임없이 깨우쳐줘야만 영화가 그리는 참혹한 미래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프레아의 딸 마틸다가 맥스에게 붕대를 감아주며 했던 하마와 미어캣 우화는 결국 인간들이 각자의 목적만을 위해 폭주한다면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폭탄이 되어 자멸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돌려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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