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희야> 저녁 8시 프로를 예매해놓고 시간에 맞추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에서 영화를 보고나면 10시가 조금 넘을 것 같아 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네살인 딸이
전화를 받아서는 아빠를 바꿔주지 않아 한참 실랑이를 했다. 통화내용을 들으셨는지
택시 기사님: 애가 어린가 봐요.
나 : 예, 네살이에요.
택시 기사님: 예전엔 미운 일곱살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미운 네 살이라죠.
애들은 그냥 키우면 안되고 매를 들어야 해요.
나: (순간 욱했지만) 전 애한테 절대 매를 안들건데요?
택시 기사님: 개도 어릴때부터 매로 교육을 시키면 버릇이 잡히잖아요.
세살버릇 여든간다는 말이 있는데...
나: 사람을 개와 똑같은 방식으로 교육한다는 건 슬픈일 아닌가요?
택시 기사님: 그야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겠죠.
어린시절 난 엄마에게 밥을 먹던 중 숫가락으로 입을 얻어맞은 기억이 있다. 그때 느꼈던
수치심과 모욕감, 느닺없음은 언제 어디서나 잊지 않고 튀어나오곤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엄마의 고단했던 삶에 비춰보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지워지기 힘든 기억을 심어줘서
교육의 효과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올시다. 앞으로 나의 생각이 어찌 바뀔지 보육의
과정 중 어떠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매를 드는 방식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매를 드는건 그 대상이 부모든 누구든 간에 매를 맞는 대상에게는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도희야>에는 폭력에 의한 두 명의 피해자가 나온다. 계부와 할머니의 폭력에 방치된
도희와 세상의 편견과 차별이라는 폭력에 노출된 파출소장 이영남이 그들이다. 폭력이 나쁜
또 하나의 이유는 암묵적 동조자를 양산한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형태를 지닌 폭력이든
(육체적, 정신적, 언어적 등)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조자(암묵적 폭력의
잠재태들)들이 있다.
도희가 살고 있는 마을의 주민들은 모두 가정폭력의 암묵적 동조자들이다. 그들은 매를 맞는
아이를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나중에는 저 애가 맞을 만한 행동을 했으니까 맞겠지.
저 애는 왠지 아이답지 않고 끔찍한 면이 있어. 어린 괴물 같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굳어져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그러한 어른들의 생각은 동네 아이들에게까지 전달되어
같은 학교 학생들 또한 도희를 폭행하고 학대하는 데 가담하는 것이다.
폭력에 대한 암묵적 동조는 이렇게 전염되고 전파되며 정당화되고 합리화된다.
이영남소장은 사회적 입지로는 도희보다는 나은 위치에 있지만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라는
정신적 폭력에 수시로 노출되어 있다.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편견에 동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의 잠재태들이다.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옥죄어 오는 시선과 편견과 그 와중에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자의식은 그녀를 끊임없이 다그친다. 자기자신을 지켜보는 자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영남은
밤마다 소주를 몇 컵이나 들이키고 나서야 기절하듯 잠이 든다. 동성애인이 호주로 도망치자고
하는 상황에서도 영남은 대답을 하지않는다.
사회가 가하는 폭력에 저항하려는 영남의 자의식은 도희에게 영향을 끼친다. 엄마도 버린
자신이기에 폭력을 당해도 그 폭력을 일상으로 받아들였던 도희는 맞지 말라는 영남의 말을 듣고
자의식을 각성한다.
비로소 무언가를 갖고 싶고 지키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도희야>는 도희와 영남에서 더 나아가 마을주민들에게 착취당하고 학대당하는 불법체류자들의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재를 고발한다. (미용실에서 마을 아낙들이 바킴이 감금을 해놔도
난동을 부려서 다른 것들까지 부추겼다며 가만두면 안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는
장면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가진자가 없는자를 권력을 쥔 자가 아래 사람을 힘이 있는자가
없는 자를 마음대로 해도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비쳐주는 것 같았다.
씨랜드 유족들이 이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이민을 갔던 것처럼 피해자가 오히려 도망쳐야 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대한민국의 현재를 그린 영화가 <도희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엔딩 이후에도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이 비일비재하게 자행되는 현실이
<도희야>와 같아서 가슴이 먹먹했다.
ps: <도희야>에서 주변인물이자 폭력의 암묵적인 동조자인 마을주민들의 대사가 주인공들의
대사보다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마을주민: 가뜩이나 어려운데 제내들(불법체류자들) 없으면 마을이 굴러가들 안해.
마을주민: 용하가 없으면 이 마을은 어떡하라고?
세월호 사고 후에 사고여파로 인한 경기침체에 관한 여론은 다룬 언론기사가 다 수 있었다.
삼성 비리 특검시에도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모든 것을 피해자가 아닌 경제를
우선 순위에 놓아서 사람은 언제나 뒷전인 우리의 현실을 <도희야>의 마을주민들 대사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사람이 우선순위가 아닌 도구가 되고 수단이 되는 것을 인정하는 현재가 바뀌지 않는 한
나 또한 언젠간 피해자가 될 수 있단 깨달음이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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