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영화를 보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멀리하는 편인데 <7번방의 선물>이 눈물나는 영화인줄 모르고 보게 되었다. 평소 울면 눈물보다 콧물이 다량 방출되는 울면 추해지지는 경향이 있어 되도록 안울려고 애쓰는 편인데 사전정보없이 영화를 봤다가 콧물을 다량복용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7번방의 선물>은 정말 선물 같은 영화다. 눈물과 코미디가 절묘하게 엮인 잘 짜인 직조물처럼 보는 내내 안정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배우들의 호연은 물론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이처럼 좋은 영화의 감동적인 결말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영화에는 결코 딴지를 걸 생각이 없지만 뒷 맛이 씁쓸했다.
과연 이용규(류승룡 분)의 딸이 사법고시에 붙고 변호사가 되지 않았다면 용규의 무죄가 밝혀졌을까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추적자>를 기억해보자. <추적자>에서 형사인 백홍석은 재벌의 딸인 지수에 의해 하나뿐인 딸을 잃고 그 충격으로 정신적 장애를 겪는 아내가 뒤따라 죽는 불행을 겪었다. 형사 백홍석은 이전까지 자신이 집행하는 법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지만, 딸의 죽음으로 인해 그 법이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하는 상황을 직면하자 큰 혼란에 빠진다. 이제 딸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법에 호소하기보다는 그 자신이 법을 위반하는 범법자가 되야했다. 결국 진실은 밝혔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난 범법행위로 인해 백홍석은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이제 생각해보자. 이 나라는 법치주의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그 법이 적용되는 잣대가 어떠한지를 말이다. 금력과 정권에 의해 선량한 대중이 얼마든지 범법자가 되고 힘 있는 자들은 법의 그물망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일이 워낙 허다하고 일상화되다보니, <7번방의 선물>을 보면서 어느 누구도 날조된 진술서 한 장만으로 평범한 시민이 소아유괴강간살해범이 되는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나조차도..음.. 우리나라에서는 저런 일이 어디 한 두건이겠어. 이런 생각이 들면서 무죄를 주장해봤자 주장한 놈만 이래저래 병신되고 없는것이 죄지. 라며 혼자 궁시렁댄다.
한편으론 이용규의 딸이 그대로 688.800원을 월급으로 받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면 과연 그 딸이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최소 생계비에도 미치지 않는 그 금액을 가지고 정신지체를 겪는 아버지와 이제 돈이 마구 들어가기 시작할 딸이 살 수 있을까.
이런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상황이 법 뿐일까? 새 정부 각료 인선과 관련하여 각종 잡음이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란 말도 있지만 일반 서민들은 연말정산에서 종교단체 기부금만 잘못 넣어도 막중한 추징과 더불어 법의 제제라는 위협을 당하는 경우와는 너무나 비교되게 8살 장남에게 몇십만평을 증여하고 증여세를 안 내도,,,, 아....차차..거참... 내가 깜빡했다지 않아... 이렇게 말하면 아...네.. 정말 그렇게 부득이한 상황이 있으셨군요... 라며 스리슬쩍 넘어가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의 무한반복이 대한민국의 지금이다. ,
<7번방의 선물>에서 굳이 용규의 죄를 찾자면 그건 688,800을 받는 정신지체장애우가 비싼 고가의 세일러문 가방을 딸에게 선물하고 싶어했다는 점이다. 없으면 국으로 엎드려 살아야 하는데 감히 딸아이에게 경찰청장 딸아이가 메는 세일러문 가방을 사주려 한 점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영화 <하녀>에서 주인인 이정재와 가사도우미인 전도연은 서로 합의하에 불륜을 저질렀다. 불륜의 당사자는 두 명인데 그 죄를 옴팡 덮어쓰는 건 전도연의 몫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취하려 한 몰지각한 여편네가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방법은 자기자신에게 자해를 가함으로써 또 한 명의 당사자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은 감동적인 휴머니티를 보여주지만 그 안에는 대한민국의 현재라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있다.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계급으로 신분상승을 해야한다는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지존파의 범법행위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이 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의 울림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법 앞에 주먹이 앞서고 권력과 정권 앞에서는 종이호랑이가 되는 이 나라의 법치주의를 보며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이 과연 올 수 있을까란 씁쓸함이 한가득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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