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추>는 시크릿가든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현빈이 아닌 탕웨이 때문에 보게 되었다. <색계>를 보고 그녀의 연기에 매료되어 근 일주일 넘게 가슴앓이를 했던 탓인지, 그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또 한명의 색계폐인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
<<시간>>
애나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7년째 독방에 수감중이다. 수감된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그녀 앞에 한 남자가 30불울 빌리는 대신 시계를 맡긴다.
7년이라는 시간을 혼자서 보낸 여자는 어떻게 웃어야 하는지,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남자는 그녀에게 그녀의 표정이 'yes'라고 말했다며 지금도 웃고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들조차 7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을 버거워하는 72시간의 시간동안 이 남자는 그녀에게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동안 그녀가 원하는 남자가 되어주겠다고 말한다. 거절할 틈도 없이 엉겹결에 맡게 된 그 남자의 시계처럼 어느덧 그녀는 72시간이라는 그녀의 시간 속에 들어와 있는 그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그 남자도 너무나 건조해보여 금방이라도 바스라져서 먼지가 되버릴 것 같은 그녀를 외면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상가집에 있는 그녀를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 상가집에서의 시간은, 회한으로 남은 사랑의 상처와 다시 상처가 될 가족간의 다툼만이 있을 뿐, 그녀는 그들의 시간 속에서 이방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역시 이방인인 그 남자가 찾아와 자신의 과거(드러내지 못했던 사랑)에 주먹을 날린 그 순간, 그녀는 그녀만의 시간이 다시 째깍째깍 돌아가기 시작했음을 깨닫는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감옥으로 돌아가는 길, 안개에 쌓인 휴게소에서의 짧은 입맞춤만으로도 그녀는 이제 앞으로의 시간을 잘 살아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는다. 왜냐면, 그 짧은 시간동안의 사랑은 언제나 과거가 아닌 살아있는 현재와 함께할 것이므로.......
<<안개>>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찡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
P159-160 『무진기행』 中
『무진기행』의 글귀처럼 안개는 사물의 윤곽을 흐리게 하고 인식의 경계마저도 불명확하게 하는 특징을 지닌다.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안개는 애매모호함, 경계지을 수 없음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만추>의 배경은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온 도시가 안개로 둘러싸인 시애틀이다. 애나가 수감된 곳(계속해서 직사광선이 내리쬐는)과는 대조적인 날씨인 시애틀에서 애나와 훈의 옷자락과 머리 위를 내리는 빗줄기가 끊임없이 적신다.
마치 의도적으로 그들을 적시기라도 하겠다는 듯, 비가 멈췄을 때에도 습기많은 안개가 그들을 감싼다. 그 물기 속에서 삶의 물기를 다 잃어버린 채, 바삭바삭하게 무게감을 잃어버린 애나와 가진 것 없이 사랑을 팔며 떠도는 남자 훈은 서로를 만나 어느덧 자신들이 상대방으로 인해 습기(삶의 무게)를 회복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만추>에서 안개는 부지불식간에 '무진'을 에워싸는 안개처럼 애나와 훈의 사이에 스며들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상대방에게 다가가게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영화: <파주>에서의 안개>>
영화 파주는 주인공이 택시를 타고 안개가 자욱한 도시 파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파주>에서 안개는 중식과 주인공의 관계처럼 규정되지 않은 애매모호한 경계를
의미한다.
중식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녀는 막연히 안개(파주)속을 뛰쳐나왔지만, 시간이 흘러 안개 속을 뚫고 다시 돌아왔음에도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지 못한 채, 안개(파주) 속을 벗어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안개' 사랑이라는 감정이 갖는 모호성을 효과적으로 상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안개와 같은 사랑: 화양연화>>
'화양연화': "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인생을 다 바쳐서라도 머물고 싶은 그 순간 ." - 이 영화를 보고 <화양연화>의 마지막 씬(양조위가 벽에 난 구멍에 대고 가만가만히 이야기를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영화를 보고 난 여운이 진한 커피향처럼 마음 속을 감도는게 <만추>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양연화>와 <만추>의 사랑은 햇빛이 내리쬐면 사라지고 마는 안개처럼, 짧고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낯선이와 세상에 고립된 채, 안개 속을 거닐었던 경험처럼 그 속에서 겪었던 일을 현실세계에서 누구에게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두 영화는 그렇게 표현되어지지 않는 '사랑'을 표현하려하기에 더 애잔하고 처연하게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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