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2010.09.02~4:일본여행>

9월 2일: 부산->하카다항->구마모토 성->아소그랑비리오 호텔

묭롶 2010. 9. 5. 12:20

  9월 2일 :  오전 8시 30분: 부산국제여객선터미널


    다른 사람들이 배멀미를 걱정하며 약국에서 멀미약을 사는 시간에 난 헛개나무추출물음료(숙취해소음료)를 마셨다.  내가 숙취해소를 진행하는 동안 나의 동거인은 일본은 엔화가 비싸다면서 일본에서 먹을 안주거리를 몽땅 고르고 있었다.(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일본 호텔은 매점도 일찍 닫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쌌다)

안주거리가 든 검정 비닐봉투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가서 18명의 일행과 함께 9시30분에 코비호 승선을 위해 대기했다.  대기하는 좌석 옆쪽으로 조그만 면세점이 있어서 쇼핑을 조금하고 난 후 9시 45분에 코비에 승선했다.  코비호는 홍도를 가기위해 탔던 쾌속선처럼 조그만 배였다.  시속 83km를 바다에서 1.5m를 공중부양해서 달린다는 이 배의 좌석에 앉자 가이드는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파도가 높아서 멀미를 할 수도 있으니 출발하면 되도록 빨리 주무시는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야 평소에 멀미라고는 사람멀미(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현기증이 나고 식은땀이 난다)외엔 없는 탓에 별 걱정없이 안전벨트를 채우고 이곳저곳 두리번두리번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배를 탈때부터 출발해서 얼마동안은 선창으로 비가 거칠게 들이쳤지만, 한 시간여를 달리고 나니 언제 비가 온 적이 있냐고 시침이라도 뗀 것처럼 날씨가 맑아졌다.  동거인은 그때까지도 내 옆에서 멀미가 난다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다가 그나마 파도가 잔잔해지니 속이 가라앉는지 편하게 객실의 중앙에 비치된 TV를 보기 시작했다.

 

 9월 2일 :  오전 10시~ 오후 1시:

쾌속선 코비(<갓파와 함께 한 여름방학> 시청)->하카다항 도착


  코비가 출발하고 얼마되지 않아 안전사항 및 주의사항이 담긴 영상물이 끝난 후 <갓파와 함께 한 여름방학>이 상영되었다.   일본의 늪지대에 산다는 신(일본은 모든 사물에 다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다신교도가 많다) 인 갓파를 주인공으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환경파괴와 더불어 현대인들이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내용이었다.  <지브리>사의 애니메이션들이 주는 메세지('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원령공주',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와 같은 맥락의 주제를 가진 '갓파'이야기는 방영시간은 길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전달해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ㅎㅎㅎ...나머지 일행들은 모두 가이드의 바램대로 푹 주무셔서 멀미를 하는 분은 없었다.  다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셔서 귀 밑에 멀미약을 붙이고 주무셨다. )  아침도 먹지 않은 빈 속에 오후 1시가 다 되어가니 배꼽시계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할 때쯤 동거인이 저 멀리 후쿠오카 돔구장이 보인다며 흥분하기 시작했다.(광주에도  돔구장이 있어야 한다고 야구경기를 시청할때마다 말했던 동거인은 저런 멋진 돔구장이 빨리 지어졌음 좋겠다며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원래 후쿠오카현은 강으로 나뉘어 한쪽은 상인들의 구역인 하카다와 다른 한쪽인 무사집단들이 거주하는 후쿠오카로 나뉘어 있던 곳이었으나 행정구역이 통합되면서 지명이 후쿠오카로 정해졌다고 한다.  지명의 지정과 관련하여  현재 후쿠오카의 기반을 쌓는데 큰 역할을 했던 하카다 상인들은 하카다로 지명을 정하려 했지만, 투표결과 한표 차이로 후쿠오카로 정해졌다는 얘기를 가이드가 해주었다. 지금도 하카다 상인들은 과자나 다른 상품들에 '하카다'라는 지명을 고집하고 있다는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배에서 내린 일행은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본 일본의 도로는 차선간 간격이 정말 너무 좁았다.  옆의 차와 부딪히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좁은 도로를 일본인 기사아저씨는 씽씽 잘 달렸다.  우리가 차에서 내릴 때마다 짠할 정도로 마른 기사아저씨는 꼼꼼하게 운행기록을 적어나갔다.  시간, 분, 초까지 적는 그분을 보며 원리원칙을 끔찍할 정도로 지킨다는 일본인의 단면을 보는 듯 했다. 

 

 9월 2일 :  오후 1시 30분: 博多食堂에서 점심식사(소고기 구이)


 

  캬캬캬캬...드디어 주린 속을 채울 밥을 먹는단다.  점심은 양념에 재운 소고기와 밥, 된장국, 사라다, 김치가 나왔다.  소고기는 너무 질겼지만, 미소된장국의 맛은 너무 일품이었다.  배추김치는 뻣뻣한 여름배추여서인지 쓴 맛이 조금 났지만, 배가 너무 고팠던 탓에 열심히 먹었다.  일본에서 추가는 무조건 돈을 받는다지만, 가이드님의 배려 덕에 맛있는 미소 된장국을 두 그릇이나 먹을 수 있었다.

 9월 2일 :  오후 3시: 구마모토 성


   배가 부르니 본격적으로 싸돌아다닐 힘이 솟아났다.  첫 번째로 도착한 구마모토성은 일본의 3대성의 하나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였던 가토 기요마사가 자신의 전쟁경험을 바탕으로 7년에 걸쳐지은 난공불락의 성으로, 실제 서남전쟁에서 공성전에 성공하여 큰 전과를 이끌어낸 이유로 3대성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가이드의 설명이 들어간다.  (제대로 들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는 무사출신의 심복인 가토 기요마사와 상인 출신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있었다.  임진왜란 발발전 출전을 명령하는 히데요시에게 두 명의 심복은 전쟁불가론을 맘 속으론 가지고 있었으나 표현하지 못한 채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이후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쓰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히데요시의 죽음 이후 가토 기요마사는 도쿠가와 아에야쓰의 편에 서서 살아남았지만 고니시 유키나가는 죽음을 맞았다. 

  가토 기요마사가 축조한 구마모토성은 성의 바깥과 안에 이중으로 해자가 파져 있고, 성의 하단부를 곡선의 형태로 쌓아서 적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구마모토 성의 옆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 은행나무의 높이가 천수각(구마모토 성의 최상층부)에 이르게 되면 큰 변란이 일어난다는 속설이 전해져온다. 

  가이드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구마모토성은 성내에 침입한 적들을 교란시키기 위해 위장통로 등이 만들어져 있는데, 전쟁이 나게 되면 성주의 여자들은 모두 몸에 기모노를 두르고 도피에 나섰는데, 기모노의 용도는 지리에 익숙치 않은 그들이 현지민들에게 뇌물로 줘서 길을 찾기도 하고 적에게 뇌물로 줘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천수각까지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었고, 각 층마다 구마모토 성에서 출토된 물품들과 전쟁에 사용되었던 병기들, 의복, 성을 축조하는 데 들어간 공구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은 7,0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여서 영주들간의 이권다툼과 그로 인한 이합집산이 끊임없이 일어났다고 한다.  가이드는 일본인들의 애매모호한 말투는 그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천수각의 정상에서 바라본 구마모토 현의 모습이다.  태풍이 온다던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너무나 맑고 뜨거운 날씨에 살이 다 익는 것 같았다.

  천수각을 내려와서 오른편 쪽에는 구마모토성의 실내를 재현해 놓은 공간이 있었는데, 입구에서 신발을 안내원이 건네주는 비닐봉투(나갈때 안내원이 다시 받아서 반듯하게 펴서 보관하는 걸 보고 허걱했다-비닐봉투를 각을 잡아서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에 넣어서 들고 실내를 관람하게 되어 있었다.  편백나무로 전시물들을 만들었는지, 편백나무 특유의 냄새가 실내를 은은하게 채우고 있어서 전시물의 정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졌다.  다다미방의 벽면으로는 각종 그림과 장식물들이 비치되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병풍이 열리면 뒤쪽 무대에서 대기하던 게이샤의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선시대의 사대부가 사군자가 그려진 각종 장식물들로 방을 채웠다면, 일본의 영주들은 매화나무와 학, 그리고 벽과 천장에 그려진 화려한 그림들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낸 것으로 보여진다.

  해가 저물 즈음이 되자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수 천마리가 구마모토 성의 해자에 빼곡히 들어앉아 있었고, 간간히 공중으로는 까마귀가 날아갔다.  아직도 햇빛은 뜨거운데 성 내를 빠져나가는 여행객들을 향해 연신 인사를 건네는 안내원 할아버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9월 2일 :  오후 5시 30분: 일본정식요리로 저녁식사


 

  저녁을 먹었던 일본 정식요리 집이다.  직장인들이 밤에 회식도 자주 하는지 식당 한편에 노래방 반주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부터 진열되어 있는 화려한 요리들이 눈에 들어왔다(물론 그 화려한 가격도 함께!). 

  이쪽은 주로 1인용 정식 위주로 진열되어 있었고 반대편에는 4~5인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롤, 초밥, 스시 종류등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가격이 참으로 화려하더라.

   ㅎㅎㅎㅎ 이 요리가 대략 34,000 정도인데, 사진으로 보니까 좀 커보이는데 실제 볼 때는 양이 정말 안습이었다.  이걸 먹고 우찌사나 싶을 정도로.....

  위의 1인용 정식을 구경하다가 그에 비해 정말 소박한 1인용 정식을 받게 되었다.  계란찜에는 특이하게 돼지고기가 들어가 있었고 미소된장국은 점심때 먹은 것 보다는 맛은 그냥그랬다.   대신 참치와 튀김은 정말 맛있었다.  특이한 점은 우리는 수저통에서 직접 수저, 젓가락을 빼서 식사를 하는데 일본은 따로 수저통이 없고 앉아 있는 사람 수 대로 일회용 젓가락(나무를 좋은 걸 쓰는지 젓가락의 주변에 지저분한 거스라기가 하나도 없었다)이 놓여 있었다.

 

 9월 2일 :  오후 6시 50분: 아소 그랑비리오 호텔 도착


   저녁을 먹고 버스로 한시간 가량 이동해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니 숙소인 그랑비리오 호텔이 보였다.

호텔 입구에는 체구가 작은 여직원이 있었는데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인사를 하더니 차 트렁크를 열고 그 무거운 여행가방들을 번쩍번쩍 들어서 옮겨놓았다.(헐!!!!) 

  숙소는 방음처리가 얼마나 잘 됐는지 옆방은 물론 복도 소음도 나지 않았다.  (다만 새벽내내 울어대던 까마귀 소리만은 차단이 안되었지만-유리 샷시에 문제가 있는 듯) 

  짐을 대충 부려놓고 객실에 비치된 유가타를 입고 2층에 있는 온천탕으로 내려갔다.  숲속에 있는 노천탕에몸을 담그고 있노라니 정말 세상의 모든 근심이 다 사라지는 듯 했다.  붉은 빛이 도는 온천이었는데 몸 속으로 온천물이 파고드는 것처럼 시원했고, 숲속에 심어진 삼나무에서 나는 나무향이 하늘에서 쏟아질 듯 박혀있는 별빛과 함께 흘렀다.  겨울에 와서 삼나무 위에 쌓인 눈 위로 비치는 달빛 속에 새소리를 들으며 온천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ㅎㅎ. 그 다음날 안 사실인데, 온천에 입욕을 할때는 샤워캡을 쓰거나 머리를 묶어서 온천물에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단다-나만 몰랐나?, 또 일본의 온천은 날 마다 남탕과 여탕이 번갈아가며 바뀌기 때문에 어젯밤에 여탕이었다고 그 다음날 그곳으로 가면 남자들을 보게 된다는 말도 들었다.  -온천욕을 하고 기린맥주를 몽땅 마시고 그 담날 그 말을 듣고도 난 남탕으로 바뀐 곳으로 들어가다 안내원에게 제재를 당했다.ㅋ  온천장 내의 개인 세면공간도 옆자리에 물이 튀지 않도록 칸막이가 되던 점이 특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