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로 그의 유언에 의해 노벨상이 제정되었다.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량살상무기로 쓰이는 다이너마이트의 어두운 면에 그는 큰 책임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영화를 보며 과학자와 그의 창조물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된다. 과거에 인간의 삶을 위협했던 것은 자연적 재난과 각종 전염병들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에게 위험은 우리에게 편안한 삶과 긴 수명을 약속했던 과학의 발명물(기후온난화를 유발하는 공장, 자동차 등과 핵 등)로부터 초래되고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 앞에 쏟아져나오는 그 발명물들에 감탄하며 더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을 외치며 그 발명물들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황우석 박사의 배아복제 조작논란만 보더라도 그러한 연구에 보내는 우려의 목소리보다는 국익선양과 그로인해 얻어질 경제적인 가치를 따지느라 온 나라가 들떠 있었다. 그가 배아복제에 성공을 하지 못했음에도, 자료조작 후에 언론에 공개하기까지의 과정이 이 영화 속에 담겨있는 듯(획기적 성과물을 요구하는 연구소 때문에 급히 선보이게 된 불안정한 상태의 진저와 프레드 발표쇼)하다.
아마 그가 연구에 성공을 했더라면 과연 이 영화속에서와 같은 이계종(새로운 종간 교배생명체)이 탄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시스템 속에서는 과학자의 양심과 도덕성, 창조물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자기공명심과 영리가 앞선 탓에 온갖가지 부작용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치와 각종 사회제도들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외치며 좋은 부분(선善)만을 부각시키지만, 그것들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예고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호(好)와 불호(不好), 선과 악을 구분짓지 못한 채 다다익선만을 외치는 사회적 정의에 길들여져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정말 벤담이 주창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과연 누구를 위한 외침일까? 그것은 아마도 탐욕에 눈먼 인간들의 자기합리화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약품특허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소에 소속된 엘사와 클라이브는 신약개발특허를 목적으로 단백질 합성작업을 하던 중 이계종과 인간배아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드렌)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엘사와 그의 어머니, 엘사와 드렌의 관계대비가 흥미로웠다. 엘사는 자신의 난자를 이용해 태어난 드랜에게서 호기심과 가능성(이계종으로서의)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드렌을 하나의 생명체라기 보다는 과학적 업적물로서 집착하고 소유하려 한다. 처음에 각인을 시작하고
감정적 유대를 쌓고 난 이후에도 엘사가 하는 대사들은 섬뜩한 것이었다. "가지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있는 건 아냐?", "요즘 너무 말을 안 듣고 제어가 안돼"라고 말하여 드렌의 꼬리를 싹둑 잘라 독침을 제거하는 장면에서 나는 보편적으로 여성은 모성성을 갖고 있기에 범죄나 상해를 일으키기 힘들다는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사진 속 똑같은 금발머리에 무표정한 얼굴의 모녀를 보게 된다. 그표정과 연동해서 그녀가 자신의 엄마를 얘기할때면 보이던 히스테릭한 표정들 속에서 그녀가 엄마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 채 성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한 엘사와 그녀의 어머니의 애증관계는 엘사와 드렌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어진다.
아이가 태어나서 부모를 인식하게 되면 이후에는 부모를 사랑(아동기의 소유욕: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콤플렉스)하게 되고 나중에는 부모를 이해(진정한 독립체로서의 자신)하게 된다. 하지만 드렌은 '엘사'와 감정적 소통을 퉁해 '사랑'에까지는 도달했으나, '드렌'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제어의 대상인 피조물로만 대하는 엘사의 태도에 혼란을 느끼게 됐을 것이다. 그때부터 이 이계생명체인 드렌의 방황(정신적미완성체로서의 불안정한 존재)은 시작되지 않았을까?
저 눈빛에서 드렌의 혼란이 느껴지는 듯하다. 나는 드렌을 보며 인류에게 종말이 온다면 그건 모두 인간이 자초한 결과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패니실린이 개발됨으로써 수 많은 생명이 질병으로부터 목숨을 구했지만, 각종 변종 바이러스( AI, 사스 등)라는 부작용을 낳음으로써 인류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가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연의 역습'이 재난영화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되려는 징조들은 지금도
세계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생명공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는 영생(영화<아일랜드>)을 꿈꾸지만, 그 기술이 양날의 칼이 되어 인류를 자르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PS: 이 영화를 보려고 (광주는 정말 개봉관이 한곳 밖에 없었다. 그것도 교차상영 ㄷㄷㄷ) 5시 35분의 상영시간을 맞추기 위해 5시30분에 칼퇴근을 해서 직원 한 명을 반협박해서 차로 데려달라고 해서 후배랑 개발에
땀나게 뛴 결과 5시47분부터 볼 수 있었다. 헉.. 영화를 보고 나오니 주변이 훤한 오후 7시30분.. (뭥미..짧은 런닝타임)머리가 막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보고나서 휴유증에 밝은 것을 보고 싶다는 후배를 끌고...
난 또다시 어두침침한 호프집으로 갔다 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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