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발췌: http://cafe.daum.net/womenwomen/_album/464?docid=6Eo3|_album|464|20080729161852>
어느 시대나 주류에 편승하지 못한 소수가 존재해왔다. 그러한 소수자에게 선택의 길이 있다면 주류에 영입하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사회적 페르소나(가면)을 쓰거나, 그대로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머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과 말이 다른 사람의 공감과 이해를 받지 못할 경우 대부분 위축되거나 향후에는 그런 자신의 개성을 은폐하게 된다.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하고 보편성만을 강요하는 사회 탓에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포즈'만을 흉내내기에 급급하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보통사람들이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소수자=소외자, 사회부적응자, 똘아이 등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미운오리새끼가 자신이 소속된 가정과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았던 것처럼 소수자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고, 그들에게 간혹 손을 내미는 사람들도 그들의 개성을 인정하기보다는 주류세계로 편승하도록 소수자들을 설득하려 했다.
어린시절부터 읽는 동화책을 통해서도 기존 사회의 고정관념은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학습된다. '착해야 , 근면해야, 효도해야, 예뻐야만 성공할 수 있다.' 등등 살아가며 본인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워나가야 할 아이들임에도 동화책을 통해 편견과 고정관념을 먼저 배우게 된다는 점에서 아이들은 상상력을 펼칠 기회마저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신데렐라를 읽으며 "엄마, 계모하고 언니들은 신데렐라를 못살게 구니까 나쁘지" 라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아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입장이 있단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어떤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는거야"라고 대답할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특히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의 실제 원작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백설공주와 신데렐라가 착하다는 말은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신데렐라를 읽으며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본인들이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계모와 이복형제는 나쁜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고, 못생기고 성격이 특이한 사람은 무조건 열등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디즈니와 픽사애니메이션에서는 동화를 원작으로 하거나 동화에서 모티프를 차용한 작품들이 매년 개봉되고 있다. 그중 <월.E>와 올해 개봉했던 <드래곤 길들이기>는 미운오리새끼의 백조되기 라는 공통의 모티브를 차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미운오리새끼처럼 월.E와 히컵은 보편성을 벗어난 아웃사이더들이다. 지구가 멸망해버리고 난후 인간들이 버리고 떠난 지구에 남은 고물로봇 월.E와 드래곤을 죽이는 것이 생존의 방법이라 믿는 강인한 체력의 바이킹들 속에서 연약하기만 한 히컵은 외톨이 일수밖에 없었다. 항상 방해만 되는 바보 취급을 당하는 히컵에게도 그리고 다 낡아서 삑삑 소리가 나는 월.E도 자신만의 소중한 꿈이 있었지만 그들의 꿈은 존중받지 못한 채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이 자신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처럼 사회가 금기시하는 대상들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다. 어린왕자가 사막에서 만난 여우에게 넌 나의 특별한 여우가 되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월.E에겐 바퀴벌레와 이브가 히컵에겐 드래곤 투쓸리쓰(thooth less)가 그러한 존재가 되었다. 특히 그 대상과 음식을 나눠먹는 행위는 나눔을 통한 소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어린아이들은 바퀴벌레와 음식을 나눠먹는 로봇과 자신에게 주어진 먹이를 히컵과 나눠먹는 겉모습은 무서운 드래곤 투쓸리스를 통해서 나눔이 갖는 소통의 미학을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애니메이션들은 나눔과 소통의 의미 뿐만 아니라 소수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도 갖추고 있다. 더럽고 낡은 고물 로봇 월.E를 닦아 주는 청소로봇 '몹'과 따돌리고 무시했던 히컵을 이해해가는 바이킹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사회가 만들어낸 금기와 터부를 무너뜨리는 힘은 바로 '사람'에게서 생겨남을 깨닫게 된다.
또한 월.E와 히컵을 통해 '소수자의 아픔'도 공감하게 된다. 이 두 영화는 미운오리새끼가 자신의 본원적인 특징(백조)의 발현을 통해 오리들의(주류세계) 부러움을 사는 성공을 이룬 반면, 부족한 인물(월.E와 히컵)이지만 인간(로봇)은 누구나 신체조건이나 학력여부에 상관없이 행복해질 수 있는 씨앗을 자신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희망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원작모티프(미운오리새끼)와 차이를 갖는다. 실상 '미운오리새끼'는 재벌가의 버려진 아들의 재벌가 재입성 내지는 성공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별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다 갖추고 있기(외모, 성격 등)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다들 알아서 도와준다. 그러나 원작과는 다르게 월.E와 히컵은 비주류인 소수자도 얼마든지 주인공이 될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악역에 대한 고정관념과 소수자를 향한 우리의 차가운 시선을 녹여낸다. 그런점에서 이 두 영화는 아이들이 아닌 상대방에게 눈막고 귀막은 어른들에게 필요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PS: 난 먼지투성이 폐허에서 자신의 몸에 알루미늄 캔 등등을 넣고 압착해서 그 덩어리를 높이 치솟은 압착덩어리들 위에 올려놓는 월.E를 보며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서 저 일을 했을까 싶어서...처절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히컵도 마찬가지 였다. 아버지와 친구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매일 혼잣말을 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사회적 냉대'의 결과물인 것 같아 가슴아팠다. <월.E>를 본 휴유증이 얼마나 오래가던지 혼자서 특유의 기계음으로 처리된 '월.E', '이브'를 입에 달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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