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요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묭롶 2010. 3. 2. 14:29

  학창시절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듣고 충격적 감동에 몸부림쳤던 나는 그 이후부터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을 즐겨찾게 되었다.  단순히 영화속에 삽입된 테마로 음악을 접할 때와는 달리 영화 속의 아리아, 합창, 연주 씬들은 깊은 몰입감을 제공하여 흡사 관객이 그 영화의 일부가 된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영화들은 개봉관에서 잠깐 머물렀다가 금방 철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매번 놓치게 되어 <코러스>, <제 8요일> 등도 DVD로 시청할 수 밖에 없었다.  <솔로이스트>가 개봉한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이번만큼은 꼭 극장에서 보고 말리라 다짐했건만, 결국 놓치고 한참이 지난 3월 1일에서야 DVD로 시청했다.  예상했던 만큼 연주씬이 많이 삽입되진 않아서 조금은 서운했지만, 이 영화가 음악을 통한 감동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인생이라는 교향악 속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독주를 연주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솔로이스트'-물론 이들은 유능한 솔로이스트가 아닌 실수투성이의 인물들이다)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다니엘은 한쪽 눈에 백내장이 끼기 시작한 노숙자다.  쇼핑카트에 자신의 전 재산(깔개, 인형, 배게 등)을 싣고 다니며 낮에는 도시의 소음 속에서 비둘기를 관중 삼아 두 줄만 남은 바이올린의 현을 켜고 밤이 되면 온갖 부랑자들이 몸을 눕힌 길 모퉁이에서 잠을 청한다.   LA타임즈의 기자인 로페즈는 이혼남에 외아들과도 소통을 하지 못한 채, 목적의식 없이 그저 지면을 메우기 위한 기사거리를 찾아 헤매인다.  그는 그저 도시라는 일상 속을 무심히 살아가는 군상들 중 한 명으로 자신 이외의 어떤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못한다.  어느날 그는 우연히 나다니엘을 만나게 되고, 줄리어드 음대생이었던 전도유망한 청년이 어떻게 해서 노숙자가 되었는지에 의문을 품은 채 기사거리로 유용성이 있어 보이는 나다니엘에게 접근한다.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나다니엘을 모든 사람들은 정신분열증이라고 진단했다.  그에게 음악은 세상을 이해하는 또 다른 언어였지만, 그 음악으로 인해 나다니엘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숨겨진 분노를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는  순수한 언어인 음악 속에서 감지되는 흑인인 자신에 대한 경계와 혐오의 파동으로 인해 교향악단의 연주에 합류할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사람들의 멸시와 분노로부터 벗어난 세계, 즉 도시의 소음으로 인해 사람들의 감정이 전해지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탈출하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리 위에서 살던 그에게 자신의 인생의 화두와도 같았던 첼로를 갖게해준 로페즈는 깊은 우물과도 같은 도시의 소음 속에 자신을 감췄지만 음악에 대한 열망을 감출 수 없었던 자신에게 드리워진 동아줄과도 같았다.

         

  두 줄 밖에 남지 않은 변변찮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나다니엘을 보며 로페즈는 자신이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느끼고 감동받는다.  그 감동에 영감을 받은 듯 로페즈가 쓴 나다니엘 기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게 되고, 그는 그 기사로 인해 언론상을 수상하며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맛보게 된다.  그는 이제 나다니엘을 자신의 인생에서 정리하고 다음 행보를 걷고 싶지만, 안내견에 의지해 한걸음씩 내딛는 맹인처럼 자신만을 의지하는 나다니엘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한사람은 음악으로 또 한 사람은 글을 자신의 언어로 삼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언어에 사로잡혀 고립된 생활을 하는 공통점을 갖는다.    나다니엘이 부담스러워진 로페즈는 단순히 그가 자신의 기사거리일 뿐이라며

부담감을 떨치려 하지만, 그는 나다니엘의 음악(언어)이 자신을 변화시켰음을 깨닫게 된다.  나다니엘 역시 로페즈의 글이 자신이 결코 할 수 없을거라며 피했던 일(첼로연주, 닫힌 공간에서의 거주)을 견뎌낼 힘을 주었음을 자각한다.  나다니엘의 격한 반작용(자기부정)은  로페즈를 향한 부정이 아니라 역으로 로페즈로 인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나다니엘 앞에 인식시킨 것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언어 속에 숨어 세상을 겉돌던 그들은 함께 베토벤 협주곡을 관람하게 된다.  서로 다른 악기들의 협주곡처럼 인식되어지지 않는 '타인'이라는 실체에 대한 자각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로 되돌아왔다.  로페즈는 이제 나다니엘이 자신이 생각하는 범주에 머무르지 못 할지라도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이제 그들은 어린왕자가 길들인 여우처럼 서로가 친구임을 알게 되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