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요

실화에서 오는 모티브의 힘과 연기력이 낳은 감동.

묭롶 2009. 7. 20. 15:31

 

 

2009년 7월 18일 토요일 영화를 좋아하는 엄마를 모시고 극장에 갔다.  극장에 가기 전

"엄마! 지금 개봉한 영화 중에 어떤 장르가 땡겨?  음~~찐한 국산 휴머니티도 있고

해리포터 알제?  그것도 있고 로보트 나오는 트랜스포머도 있는디.."

"그래?  난 해리는 싫어. 로보트도 싫고.. "

"뭣이여.. 그람 당근 킹콩 밖에 안 남구만"

모녀간에 이런 대화 끝에 선택된 영화 <킹콩을 들다>를 보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개봉관의 절반을 해리포터가 차지해서 맞는 시간대를 찾기가 어려웠다) 찾아간

극장은 인파로 바글바글했다.  평소 극장에 가면 엄마가 좋아하시는 커피와 팝콘, 과자 등등

간식거리를 안고 영화를 보던 습관이 있었지만, 도저히 시간 안에 간식을 구매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별 수 없이 상영관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드리겠다고

설득해서 가격을 보니...허걱!!! 무려 \2,000  ㅜ.ㅡ 음료수 3개를 뽑고 나니

버스비로 쓰려고 아껴둔 천원짜리가 숭텅.. 깡그리 자판기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자판기에 피 뽑힌 것 같은 찝찝함과 부담감을 안고.. 상영관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박실박실했다.

사전에 이 영화에 대해 줄거리도 알고 있었고 상투적인 눈물짜기용 드라마로 판단했던

나는 절대로 상업영화에 울지 않겠노라고 맘 굳게 먹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왠걸 초반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잔잔한 오르막을 향하던 감정이 악날한 코치(헉!  그분 뉘신지

연기 포스 작렬이시던데...어지간해선 그 배역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힘드실 듯)의 갖은 핍박

속에서도 학생들이 선수복에 선생님 이름 석자(이 지봉)를 매직으로 써나가는 장면에서

펑~~!!! 하고 터져선 다들 남자고 여자고 들썩들썩 줄~줄~줄!!!

막상 쓰나미 재난 영화인 해운대는 개봉도 하기전인데 눈물 쓰나미가 되었다.

물론 나도 안간힘을 써봤지만 줄~줄 수도꼭지가 풀려버렸다.

 

영화가 끝나고 안 운 척 눈물자욱을 지우고 엄마에게 "엄마! 영화 어땠어?" 묻자

"응!  오랜만에 괜찮은 국산영화를 봤다!"고 답하셨다.

예전에 호러영화를 좋아하던 울 엄마는 언제부턴가 국산영화를 선호하기 시작하셨다.

노안이 되면서 자막을 읽기가 어려워진 탓이었다.  하지만 그즈음 조폭시리즈가 한국영화의

주류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영화에 넘쳐나던 욕설에 엄마는 진저리를 치셨고.. 다음에

영화를 볼때 한국영화라고 하면 먼저 욕이 나오는지를 묻곤 하셨다. 

"난 으째 욕이 나오고 그러면 무서워야!"

"근디 으짠다고 맨날 영화고 드라마고 무식하고 깡패하는 사람들만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냐.. 딴디 사람들이 보믄.. 전라도 사람들 을매나 숭보겄냐.."

사실 나도 그 점이 불만이었다.  전라도 사투리가 희화화되거나 무식한 깡패들이나

양아치들이 주로 쓰는 언어로 표현되는 점에 화가 났다. 

그러나 <킹콩을 들다>에서 연기자들이 사용하는 전라도 사투리가 인물들의 순박함과

진솔함을 배가시키는 장치로 사용된 점을 발견하게 되어 그동안의 불만이 해소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곽입분 교장선생님의 사투리는 참으로 맛깔나고도 재밌었다.

꼭 꼴뚜기 젓갈을 씹는 듯한 쫄깃하고 간간히 씹히는 연골의 오도오독함이 입안에

퍼지는 것처럼 영화 속 인물들의 여운이 오래도록 머릿 속에 남았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느꼈던 공감대는 아마도 사람에게서 받은 감동이었을 것이다.  

갈수록 험악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감정이 둔화되어 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상업성을 등에 업은 영화가 계산된 영화기법이나 시나리오 속에서 사람들의 페이소스를 끌어 낸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강심장인 나를 울릴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이 영화의 강점은 무엇이었을까?

이 영화가 단순히 허구의 시나리오가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오는 감동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영화속 사랑이야기가 보는 동안 아름답지만 결코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렵다는 가정을 염두에 둔 감동이라면, <킹콩을 들다>가 주는 감동은 실제로 그런 선생님이

살았었고 끈끈한 사제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 아직도 저런 선생님이 어딘가에 있을거야", "사람이 주는 온기가 저렇게 따뜻했었지"

"사람에 대한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야" 등의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힘을 얻고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러한 실화 속 사람들을 실제로 우리 앞에 보여준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해져

우린 어느덧 이 이야기가 영화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범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지봉선생님 역할을 했어도

이 정도의 감동이 가능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단순히 연기를 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아는 현명함을 이범수는 가진 것 같다.  그 큰 눈망울로 악역(짝패)을

연기할 때는 눈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외과의사 봉달희에서는 까칠함이

느껴지고, 이번에는 우울과 좌절, 그리고 제자들에 향한 애틋함을 발산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