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이 영화도 극장에선 못 봤다. DVD 를 빌리러 갔는데 재난영화를 보고 싶다는 동거인에게 빠득빠득 우겨서
<디스트릭트 9>를 빌렸다. 영화취향이 달라서인지 DVD를 시청하고 얼마되지 않아 동거인은 들어가 자야겠다며 침실로 들어가버렸다. 혼자 남은 나는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이 영화를 시청했다.
※동거인은 영화임에도 다큐멘타리 기법으로 제작된 영화의 도입부에 적응을 못했다.
어느날 나이지리아에 있는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정체불명의 외계 비행체가 나타났다. 그 비행선 안에는 영양실조로 쇠약해진 백만 가량의 외계인들이 있었고, 인간들은 이들을 지상으로 이송해와서 '디스트릭트9'라는 집단거주지를 조성하여 외계인을 격리수용시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V(다이아나가 파충류로 나오는 미드)시리즈가 방영됐었는데, 그때는 학교만 가면 온통 V에 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극중에서 다이아나가 쥐를 진짜 먹었네, 안 먹었네 부터 시작해서 다이아나가 쥐를 먹는 장면 때문에 입에서 식도까지 특수 비닐봉투를 삼킨 채 연기를 했다는 등 별별 기상천외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난무했었다. V의 다이아나는 내가 TV를 통해 접한 최초의 외계인이었다.
이후로도 영화나 TV속에서 비춰지는 외계인들은 하나같이 지구인과 지구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의 근원이며 공포의 대상(에일리언, 스콜피언, 맨인블랙 등)이었다.
닉 블룸캠프 감독은 외계인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역으로 뒤집었다. 외계인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을 억압하고 증오하는 인간으로.....이 영화에서 외계인은 인간에 의해 거주를 제한당하고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의식주도 제공받지 못했다. 외계인들은 이에 생존을 위해 식량과 물품을 구하기 위해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를 뒤지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런 외계인들을 '프런(땅거지)'이라 부르며 증오한다. 목숨을 위협받지 않는 한 인간을 공격하지 않았음에도(이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폭력적 성향과 공격본능을 갖지 못한 존재들로 보인다)인간들은 이 외계인들을 자신들의 거주지역에 설치된 혐오시설처럼 여긴다.
나도 영화가 시작되며 온통 쓰레기통을 헤집어대는 이 외계인들의 모습이 '바퀴벌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혐오감이(벌레를 너무 무서워해서 특히 바퀴벌레) 밀려왔다. 역시 인간은 외모가 먼저 먹고 들어가기 때문에 전혀 아름답지 않은(인간 기준에서) 이들의 외모는 헐!!! 정말 아니올씨다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좋
아하는 '고양이 먹이'를 사기 위해 자신들의 생존을 보호해줄 수 있는 어마어마한 화력의 무기들을 한낱 깡통에 담긴 사료와 바꾸는 그들을 보자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계인들은 인간들의 무기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생명을 위협받으면서도 자신들의 무기를 사용해 대항할 생각을 안한다.
특히 고양이 먹이가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나이지리아 갱단에게 '내일 가져다 줄게'라고 말하는 외계인을 보자 측은지심까지 들었다. 막말로 우리 같으면 그 좋은 무기를 들고 가서 협박해서 고양이 먹이뿐만 아니라 다른것도 몽땅 뺏어올텐데.......
인간들은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진 외계인 무기를 손에 넣는데는 성공했지만, 이들 무기는 인간의 손에서는 작동을 하지 않는다. 외계인 퇴거작전을 맡은 군수업체 MNU는 이 무기의 작동원리를 알기 위해 외계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까지 감행하지만, 방법을 얻지 못했다. 그 와중에 MNU는 퇴거작전 책임자인 비커스가 외계인의 유동체를 작전 중 흡입하게 되어 외계인DNA와의 결합상태에 이르게 되자 그를 인체실험하여 무기의 작동원리를 얻고자 했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비커스는 실험실에서 도주를 하게 되고, MNU는 언론에 비커스가 외계인과의 성관계를 통해 외계인으로의 변이가 진행되고 있다는 왜곡보도를 하며 비커스를 고립시킨다. (아무튼 언론의 부정적 사례는 너무나 많아서 도대체 이젠 사실을 말한다고 해도 저 보도가 사실인지를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그럴려고 MB악법이 통과된 것이긴 하갰지만)인간들 틈에서 도피처를 찾을 수 없게 된 비커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강제 철거계획을 진행했던 '디스트릭트 9'에 숨어들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에게 변이를 일으킨 유동체를 만들어 낸 외계인을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탈출계획을 세우게 된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외계인은 무기로 저항할 생각도 못하는데, 여기서도 인간에 맞써 대항하는 것은 같은 인간인 비커스이다.)
외양으로만 놓고 본다면 외계인이 더 총질도 잘할 것 같은데, 생체실험을 감행하고 외계인에 대해 근거없는 불신과 혐오와 증오를 드러내는 것은 살가죽이 엷은 우리네 인간들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전쟁의 역사만 놓고 보더라도 인류는 본성이 잔인하고 이기적인 종족이 아닐 수 없다. 1,2 차 세계대전도 그렇고 가까이 놓고 보자면 6.25동란, 광주민주화 운동, 제주4.3항쟁 등 같은 민족이 정치적 이념이나 이해관계를 이유로 동족을 상잔한 사례도 부지기수이다. 입으로는 인류애와 세계평화를 외치면서도 뒤로는 있지도 않은 생체무기를 이유로 이라크에 공습과 폭격을 가한 미국도 있고(일단 폭탄 투하해서 전멸시켜 놓고 음... 무기가 없군 쩝!!! 아님 말고 식이고), 지금도 선거를 앞둔 각 정당들은 유리한 당선전략을 위해 지역감정을 들쑤셔대고 있다. (6.25동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한 편이 6월경 개봉된다고 한다. 어째 난 이런 영화들이 불편하다. 같은 민족끼리의 상잔극을 무슨 전쟁영웅영화로 만드는 것 같아서 싫고, 한 민족을 적으로 죽고 죽이는 장면이 불편하다)
외계인은 비커스에게 자신이 지구에 돌아올 때는 자신이 사는 나라의 군대를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닉 블룸캠프는 인류가 향후 멸망하게 된다면, 그건 어떤 운명적 재앙을 통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본원적으로 갖고 있는 잔혹함과 대상을 찾고자 하는 증오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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