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윌리엄 포크너

<성역>

묭롶 2010. 2. 18. 21:36

 

  우리는 어떤 물체를 볼 때 그 물체의 겉면 즉 육안으로 식별되는 부분을 일차적으로 인식한다.  물체의 표피 속에 감춰져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표피의 기능과 모양이 자신의 기호를 만족시키는 경우, 그 내부의 원리나 성질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는 흡사 가전제품의 디자인과 기능에 만족하면서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전제품의 전자적 메커니즘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경우와 유사하다.

 

  그렇다면 가전제품이나 물체가 아닌 인간의 경우는 어떠할까?

피부색, 키, 외모, 성별 등 이런 외양적인 부분을 벗어난 인간이라는 존재를 논할 때 우리가 가장 우선시하는 점은 그 인간의 정신, 즉 인간으로서 자격을 부여하는 인성을 먼저 논해야 할 것이다.  인성은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격'으로 명칭이 대체된다. 

이 '인격'은 과거로부터 전해져내려온 문명에 사회와 가정의 교육, 그리고 개인적 성향이 더해져서 형성되는데, 크게 분류해본다면 발현된 인격과 발현되지 않은 인격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드러낼 수 있는 부분과 드러내서는 안 되는 부분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학습하게 된다.  인간을 이루는 어느 한 부분은 사회제도적으로 (과거로부터) 금기시되고 암묵적으로 회피할 것을 강요받는데, 세대와 문명을 떠나 공통적으로 금지되는 것의 예를 들자면 사디즘과 관음증을 들 수 있다.  이를 문학이나 예술에 표현할 경우 사회는 곧바로 '음란', '외설'이란 딱지를 그 대상물에 붙여 일반인의 접근을 막아왔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도 모든 문명이 공통적으로 인격의 밝은 부분(선, 도덕, 양심 등)에 집중해 온 시간만큼 인격의 반대편은 더욱 어둠이 짙어졌다.

 

  미국에서는 한 때 금주법이 시행됐던 시절이 있었다.  청교도적인 신념과 정치가 만난 결과물이 '금주법'이었다.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지 못 했고, 주류업은 어둠의 뒷골목으로 숨어들었다.  밀주의 제조와 유통에 마피아(폭력조직)가 개입하고 사회는 금주법 시행전보다 더 많은 범죄와 폭력에 물들어갔다. 

  윌리엄포크너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절의 '제퍼슨'이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통해 우리 앞에 사회가 보편적으로 금기시하는 어둠의 문을 열어 놓는다.  그는 인격의 밝은 면(사회적으로 권장시되는)을 가진 인물로 변호사 '호러스'를 그리고 그 반대편에 어둠의 대표격인 '포파이'를 놓는다.  호러스는 누명을 쓴 채 살인죄로 구속된 구드윈을 변호한다.  그의 사회적(법적)양심은 죄 없는 자에게 잘못된 법의 집행이 이뤄지는 걸 두고보지 못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왜곡되어 전파된다.  구드윈의 아내를 향한 성적욕망이 무료로 변호사를 자청하게 했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면서, 호러스의 누이동생마저 그를 외면하게 된다.  사람들은 소문의 진의보다는 가십거리가 생긴 것을 즐거워한다.  그들에게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사형을 당할 처지에 있는 구드윈이나 인권변호사 호러스의 추문은 강 건너 불구경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호러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작중에서 인권변호사로만 표현되었다면 윌리엄 포크너는 보통의 작가들과 같은 범주로 분류됐을 것이다.  보통작가들과 그를 대별짓는 점이 호러스의 숨은 욕망을 포파이의 드러난 욕망 위에 은밀하게 표현해낸 그의 문체적 실험과 시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전 제가 죽었기 때문에 또는 예뻐 보이거나 뭐 그런것 때문에 울었어요. 

아니에요.  그건 관 속에 옥수수 껍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전 옥수수 껍질이 절 비웃는 가운데 거기 누워

그 사람의 손길을 피해 몸을 뒤틀며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어요. 

~전 정말 잠이 들었어요.  그 사람의 손길로 제 몸이 뒤틀리는 것도 느낄 수 없었고

단지 옥수수 껍질 소리만 들렸어요.  p289~291

 

~그는 그 친숙한 영상을, 로 인해 갑자기 그보다 더 늙은 얼굴을,

감미롭기보다는 희미해진 얼굴을, 부드럽기보다는 비밀스러운 눈을,

뭐랄까 고요한 공포와 절망감에 사로잡힌 채 바라보았다.  p219

 

~그때 그는 위장 속의 감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사진을 급히 내려놓고 욕실로 갔다. 

~두 팔을 벌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사이에 옥수수 껍질이

그녀의 허벅지 아래에서 요란하게 바스락거렸다. 

~그녀는 벌거벗고 누운 채로 무개화차에 묶여 빠른 속도로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사이 그녀는 무수한 빛이 희미하게 가득한 무(無)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게으르게 흔들리곤 했다. 

저 아래에서 옥수수 껍질이 희미하고 격렬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그녀에게 들렸다.  p294

 

~호러스는 수화기를 귀에 바짝 가져다 댔다. 

리틀 벨의 목소리는 숨 막힐 듯하고 억제되고 싸늘하고 신중하고 초연했다.  p396

 

작중 인물 포파이와 호러스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욕망을 행사할 수 있는 행위능력을 이미 '제거'당했다는 점에서 같은 피아노 위에 놓인 양 손과도 같다.  포파이의 욕망이 주선율로 연주되는 그 위에 호러스의 욕망은 간간이 떨리는 보조선율로 흐르는 금기의 이중주가 바로 『성역』이다. 

  포파이는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인물이지만, 어린시절 사고로 신체적 기능과 성적 능력을 상실한 인물이며, 호러스는 딸이 있는 이혼녀와 결혼했지만 그 양딸을 사랑하게 된 인물이다.  포파이가 신체적 기능의 상실로 인해 자신의 욕망을(사랑) 실현할 수 없는 것처럼, 호러스 역시 사회적·도덕적 제약으로 인해 리틀 벨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억눌러야만 했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굽혀서 손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포파이, 아빠."

그녀가 말했다.  그의 팔이 연약하게 느껴졌다. 

아이의 손보다 더 크지 않은 데다 막대기처럼 생명이 없고 딱딱하며 가벼웠다p303

 

  포파이와 호러스의 욕망이 같은 선율에서 연주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포파이와 호러스의 욕망을 공통적으로 상징하는 단어는 '옥수수 껍질'이 내는 소리이다.   일반적으로 문학이 인간이 가진 한쪽면에 치중하는 동안 그는 '옥수수 껍질'처럼 인간이 먹어치우고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옥수수껍질과도 같은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제퍼슨이라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문체를 통해 실험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의 메커니즘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해'를 만들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