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묭롶 2009. 12. 14. 00:23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자신의 주관에 따라 사건을 해석하고 판단한다.   물론 삶과 죽음의 상태를 판단하는 것 또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애디 번드런은 이미 죽음을 맞았고, 그녀가 원하던 것을 해석하는 것 역시 살아있는 가족들의 역할이었다.  

 

~가끔씩 난 확신할 수가 없다.  누가 미치고 누가 정상인지 알게 뭐란 말인가.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p268

~그녀는 이렇게 열흘 동안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난 죽음을 마음의 변화로 이해한다. 

즉 사별을 견디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 말이다.  p53

 

  주관성이 갖는 자의적인 판단 앞에서 그 어떠한 것도 최선도 차선도 될 수 없다.  그 나름대로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최선만이 존재할 뿐이다.  애디 번드런에겐 그 최선이 바로 피로 맺어진 자녀들과의 관계, 특히 주얼을 향한 자신의 특별한 사랑에 있었다.

~"아무것도 몰라요.  그는 나의 십자가이고 동시에 나의 구원일 거에요.  그는 나를 물과 불에서 구해낼

거에요.  비록 내가 삶을 포기할지라도 그가 나를 구할 거예요."  p193

~동정심과 연민에서 우러나와 진짜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을 방에서 쫓아내고, 그 대신에 자기를

고작해야 마차 끄는 말로밖에 여기지 않던 짐승 같은 인간들에게 매달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해 불능의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p55~56

 

  엄마란 존재 또한 가족에게 고정된 하나의 상(像)이 될 수 없다.

달: ~난 엄마가 없기 때문에 엄마를 사랑할 수 없다.  주얼의 엄마는 말이다.  p111

바더만:  엄마는 물고기다.  p99

 

  A+B=C 처럼 공식으로 존재하는 수학식과는 다르게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맺음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A라는 마음을 B에게 전달할지라도 B는 A가 아닌 C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인간관계에서는 비일비재하다.  특히 언어를 통해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그녀는 오래전부터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본심을 감춤으로써 남편에게 복수를 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앤스나 사랑과 같은 말보다도 더욱 오래된 또 다른 말에 속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보복하기로 했다.  내가 보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숨기는 것이 바로 보복이었다. 

달이 태어났을 때, 내가 죽으면 제퍼슨에 묻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했다.  p199

~그는 내게 있어 이미 죽은 존재였다.  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p200

 ~그리고 그는 죽었다.  그는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아름다움, 하느님의 죄에 대해 캄캄한 땅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앤스 곁에 누워 있곤 했다.  캄캄한

침묵의 소리였다.  그 안에서 말은 행위가 되고, 또 다른 말이 되기도 했다.  말과 행위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 사이에는 틈이 생긴다.  ~누군가 군중 속의 두 얼굴을 가리키며, 너의 엄마다 혹은

아빠다 말할 때, 정신없이 그 얼굴을 찾아 헤매는 고아처럼, 말은 그것이 가리키는 행위를 찾아 헤맨다.  p201

 

  그렇게 애디 번드런은 죽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을 집에서 40마일이나 떨어져있는 제퍼슨에 묻어달란

유언을 남긴다.  그 유언은 남편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다고 생각한 그녀의 복수심의 결과물이었다. 

제퍼슨에 묻어달라는 앤스에게 말한 그녀의 본심은 무었이었을까?  그것은 자신이 말과 자신의 불일치로 인한

괴리를 겪기 이전의 상태, 즉 태어나기 전에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회귀의 욕망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임종전부터 가족들은 나름대로 그녀를 위해 자신들이 옳다고 판단했던 일들을 실행한다.  남편은

그녀의 유언대로 홍수로 다리가 떠내려갔음에도 제퍼슨 행을 포기하지 않았고, 큰아들 캐시는 그녀를 위해

손수 관을 만들었으며, 둘째아들 달은 묵묵히 동참했다.  그 결과 남편은 노새를 잃었고, 캐시는 한 번 부러졌던

다리를 또 다시 부러뜨렸으며, 주얼은 말을 잃었고, 달은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했고, 듀이 델은 임신중절에

실패했으며, 바더만은 '물고기'(엄마)를 잃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남편은 의치를 얻었고, 새부인을 얻었으며,

나머지 가족들은 일상을 다시 회복했다.  계속 "맞아 맞아 맞아 맞아"라고 웃으며 정신병원행 기차를 탄 달만

빼고.....,

 

  이 책은 애디 번드런을 묻기 위해 제퍼슨까지 40마일이 걸리는 여정에 오른 가족들과 그 주변인물들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윌리엄 포크너를 두고 미국의 제임스 조이스라고 말할 만큼,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일반적 소설의 산문구조를 벗어난 그의 문학적 실험은 문자매체에 기반한 문학의 언어적

한계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언어의 한계를 다양한 기법의 시도와 문양과 공백의 삽입을 통해

그 묶인 틀을 깨고자 한다.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배경의 축소판처럼 의식의 한 부분 부분은 독백 속에

삽입되며 그 독백은 끊임없이 의식의 흐름을 타고 순환되고 반복되어진다.

 

<바더만: ~도 어둡지 않다.  그리 어둡지 않다. 

 (여기에서 하늘의 '달'은 바더만의 형 '달'로 의식의 흐름이 변환된다

잭슨에 갔다.  내 형 이, 은 내 형인데....,~잭슨으로 갔다. 

잭슨에 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잭슨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잭슨이 타고 간 기차는 자신이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받고 싶어했던 상점에 진열된 기차를 연상시킨다)

~은 내 형이다.  미쳤다.  ~차라리 바나나를 먹지 않을래?  듀이 델이 말했다.

('바나나'는 길 위 여정이 아닌 정상적인 삶을 의미한다-

바나나를 먹는 행위는 정상으로의 복귀를 원하는 바더만의 의지를 상징한다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리면 기차가 진열될 거야

(기차는 다시 형 '달'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잭슨에 갔다.  미쳐서 잭슨에 갔다.  미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아버지, 캐시, 주얼 듀이 델, 나, 모두 미치지 않았으니까. 

우린 미치지 않았고 그래서 잭슨에 가지도 않았다. 

~내 형은 이다.  그는 기차를 타고 잭슨에 갔다.  기차를 타서 미친 것은 아니다. 

우린 마차 안에서부터 미쳐 있었으니까.  .

~잭슨에 가기 위해 그는 기차를 타야만 했다.  난 기차를 타본 적이 없는데....,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기차모형에 대한 열망)

~잭슨은 먼 곳이다.  (이뤄지기 힘든 소망에 대한 자각)~그러나 기차를 타고 있다.

은 내 형이다.  .  p287~290

 

  윗 글에서 바더만의 의식의 흐름  달(하늘의 달)->달(내 형)->잭슨->기차->미쳤다->바나나->기차->달

로 변화해감을 살펴볼 수 있다.  단어를 매개로 연상되어지는 의식의 흐름은 인터넷의 하이퍼링크를 연상시킨다.

그의 의식변화를 따라가며 우리는 바더만이 미쳐서 기차를 타고 잭슨으로 간 자신의 형 달(이뤄질 수 없는 꿈을 이룬 상태)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현재를 인식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미쳐지 않으면 기차를 탈 수 없기에 자신이 크리스마스에 기차모형을 갖거나 보지 못하더라도 자신은 현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각)

 

또한 윗 글에서 문맥이 갖고 있는 운율성을 발견하게 된다.  '시'가 현재에 대한 축약된 상징인 것처럼 그의 문맥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메타포에 대한 상징을 담고 있다.  그래서 소설이지만 포크너의 작품 속에서 '시'의 운율을 발견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윗 글을 시적 표현으로 치환한다면 아마 다음과 같지 않을까?

 

  달은 그리 어둡지 않다.

  달.  그는 내 형이다.

  달.  기차를 타고 잭슨에 갔다.

  달은 내 형이다.  달은 미쳤다.

  차라리 바나나를 먹지 않을래?  듀이 델이 말했다.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리면 기차를 보게 될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바나나를 몇 개 먹을 것이다.

  내 형은 달이다.  하지만 기차를 타서 미친 것은 아니다.

  우린 마차 안에서부터 미쳐 있었으니까.

  내 형 달.  난 기차를 타본 적이 없는데,  그는 잭슨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있다.

  달.  달은 내 형이다.  달.  달.

 

 그의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이러한 운율성을 찾아볼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한편, 이 책을 다시 한 번 신중하게 읽어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봉사가 더듬은 코끼리의 한 부분처럼 한참 시험기간인 나를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이 책! 빨리 다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