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코맥 매카시>

코맥 매카시의 로드(빛을 찾아 길을 떠난 아버지와 아들)!

묭롶 2008. 10. 30. 22:42

  읽고 난 뒤의 여운이 늦가을 11월의 정취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꽃 피고 설레었던 봄, 그리고 무성했던 여름, 알곡으로 풍성했던 가을을

모두 보내고 혹한만을 앞둔 계절,  낙엽도 모두 지고 나무들은 제 몸뚱이

하나로 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고행을 앞둔 계절....11월.  11월에 부는

바람은 겨울바람보다 한결 차갑다.  그것은 아마 마음 속 깊이 파고드는

바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재앙으로 인해 세상이 온통 회색 재에 뒤덮여 해가 떠도 잿빛인

세상에서, 바다를 찾아 생필품을 카트에 싣고 길을 떠난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대재앙으로부터 몇 년이지 모를 시간이 흐르고 식량은 오래전에

떨어져서 사람들은 인성(人性)을 잃고 서로를 잡아먹기에 이른다. 

오로지 생존경쟁만이 남은 세상에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래도 자신들이 인간임을

끊임없이 자각시키고, 그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바다(빛)를 찾아 떠나는 그들의 여행은 무모했고 결국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실패했다고 말 하지 않는다.  그들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인간을 인간답게 또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이 본인의 생존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부정(父情)은 동물의 세계에도 존재하지만 동물은 스스로 자신이 동물임을 자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아들로 인해 자신의 인간다움을 끝까지 자각하며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는 죽음으로써 실패한 것이 아니라 희망의 산 증인으로서 희망의 불씨를

아들에게 전달하고 그 목숨이 다 한 것이다. 

  

  '로드'에서와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첫째, 자살함으로써 그런 상황을 피해 갈 수 있다.  둘째,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바뀐 생존의 법칙(설사 인육을 먹게 될지라도)을 따른다.  셋째,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모색한다.  아이의 어머니가 자살을 선택한 반면, 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바다를 찾아 길을 나선다.  날마다 다음 끼니와 그날의 잠자리를

그리고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아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눈다.

이미 오래전에 약탈 당한 자판기 안에서 '콜라'를 발견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를

선물한다. 

{~이런걸 다시는 못 마시게 될 거라서 그러는 거죠?

    오랫동안 못 마시겠지.

     네.}p30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발견한 식량을 '선물'하는 아버지.  이는 인류의 기억을

가지고 누렸던 자로서의 기억까지를 후대로 대물림하는 의미를 갖는다.  비록

그 기억을 다시 소생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러한 기억들이 아들(또는

후대)에게 희망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에 '선물'이라고 표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아들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병이 깊어짐에

따라 희미해지는 기억을 잊지 않으려 다시 상기시키려 애쓴다.  자신과는 다르게

암울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이 아들을 끝까지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의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두 발의 총알이 든 총을 아버지는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으로 인해 아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희망이 사라진 세상에서 아이에게 아버지는 '우리는 불을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자신이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자각 때문에 길을 가면서

만나는 불행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한다.  그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이 가진

'불씨'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기 때문에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서 아버지는 자신들이

간직한 '불'의 존재를 확인한다. 

 

  {~남자는 소년 옆에 앉아 뒤엉킨 옅은 노란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황금 성배'.  신을 들이기에 좋은 곳.}P87

 

  이 글귀에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떠한 존재인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래.  안 잡아먹어.

   무슨 일이 었어도요.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니까요.

   그래.

   그리고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요.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  맞아.}P147~148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신화시대에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준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리게

된다.  약함으로 인해 자연계에서 도태의 위기에 직면한 인류를 불쌍하게 여긴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전달함으로써 인류에게 희망을 그리고 자연계를 지배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전해주었다.  비록 이로 인해 영원히 신에게 벌을 받고 말았지만, 아버지는 바로 이러한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아들'을 '불'과 동일시여기고 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은 아닐까?

  비록 '로드'와 같은 극한의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둘러보면 거짓 예언자들은

난무하지만 정작 우리가 찾는 신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그들 대부분은 '신은

죽었다'며 좌절하고 현실 속에서 헛된 망상에 휩싸이거나 다른 대체품을 찾아 헤매이며 삶을

포기하기도 하며 그저 현실을 그냥 살아낸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다음의 말은 그런

사람들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  있지도 않았던 세계나 오지도 않을 세계의 꿈을 꿔서 내가 다시 행복해진다면

그건 네가 포기했다는 뜻이야.  이해하겠니?  하지만 넌 포기할 수 없어.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야.}P215~216

 

  난 이 대목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바로 나에게 하는 말인 것만 같아서... 결국 우리

모두는 '행복'이라는 길을 찾기 위해 정확하지도 않은 지도를 들고 이 무한경쟁의

세상에 조그마한 '불씨(작은 위험에도 곧 꺼질 듯한)'를 들고 길('로드')을 나선게

아닐까?...

  이제 아들은 아버지가 없어도 현실에 맞서야 한다.

{  ~함께 있고 싶어요.

      안돼.

      제발.

      안돼.  너는 불을 운반해야 돼.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요.

      모르긴 왜 몰라.

      그게 진짠가요.  불이?

      그럼 진짜지.

      어디 있죠?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왜 몰라.  네 안에 있어.  늘 거기 있었어.  내 눈에는 보이는데.}p314

가슴 속에 불이 있는 한 희망은 살아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