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가르시아 마르케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않다>와 <오직 두 사람>을 통해 세계는 도서관이라는 보르헤스를 떠올리다.

묭롶 2018. 12. 9. 00:00

  책을 읽을 때 나는 나만의 '보물찾기'를 한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과정에서

다른 작가의 다른 책과의 관련성을 찾게 되는 경우를 나는 '보물찾기'라고

이름 지었다.  평소 다니던 길을 벗어나 낯선 골목을 걷다가 길을 잃어

버렸다 싶을 때쯤 낯익은 길을 마주칠 때의 반가움처럼 나는 글읽기라는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낯익은 동행과의 만남이 참으로 즐겁다.


 나는 지난주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를 읽었다.  이 두 작품을

읽으며 2017년의 김영하와 1957년의 마르케스가 자신의 작품의

동인(動因)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 있음을 언급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2017년 5월에 『오직 두 사람』 을 쓴 작가 김영하는 작품 후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연대기적 시간이란

별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월호

사고를 먼저 겪은 후, 나중에 『페스트』를 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 수백 년 전에 쓰인 텍스트와 불과 일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직 두 사람』p269


  김영하의 작품을 읽고 난 후 읽게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957년에 쓴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작품 해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한국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을 대상으로 서술을 전개하지 않고

콜롬비아에 돌아와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던 참전 용사들의

현실을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접목시킨다. 

이것은 정부에 맞서는 사람들의 끝없는 저항과 굳은 희망,

삶에의 집착과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지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작품해설> p128


  1946년에 『페스트』를 쓴 알베르 카뮈와 1957년에 『아무도 대령에게편지하지 않다』를 쓴 마르케스, 그리고

2017년에 『오직 두 사람』을 쓴 김영하의 관련성을 발견한 순간의 기쁨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특히 이러한 작품을 통한 영향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세계는 도서관'이라는 그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보르헤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는 하나의 두뇌(역사 이래 지속된 인류의 모든 지적 산물의 총체)를 공유하며 개인은

이 두뇌(서버)에 연결된 각각의 단말기(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이유로 2017년의 김영하도 1957년의

마르케스도 1947년에 쓰인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 접속해서 자신들만의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또 다시 보르헤스의 말을 언급한다면 그는 역사 이래로 쓰인 모든 작품들 중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다이아몬드가 목걸이도 됐다가 그걸 해체해서 다시 반지를 만들었다가 귀걸이도 될 수 있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문학은 과거 문학이 다루었던 '원석(메타포)'을 계속해서 재가공하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김영하와 마르케스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서 발견한 '원석'은 '저항과 굳은 희망, 삶에의 집착과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지'이다.  이 두 작가가 『페스트』를 통해 발견해낸 '의지'는 어찌보면 인간의 삶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알베르 카뮈가 『시지프신화』에서 언급한 프로메테우스적 인간, 즉 '반항하는 인간'이 자연도태

(자연의 순리)를 극복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인간은 주어진 현실 그대로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먹죠."  아내는 이렇게 물으면서 대령이 입은

티셔츠의 칼라를 움켜쥐고 힘껏 흔들었다.

"말해 봐요.  우리는 뭘 먹죠."

대령은 이 순간에 이르는 데 칠십오 년의 세월이, 그가 살아온 칠십오 년의

일각일각이 필요했다.  대답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 더렵혀지지 않았고

솔직하며 무적이라고 느꼈다.

"똥."」 p94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서 대령이 궁핍한 생활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다다라서도 '똥'을 먹을

지언정 '싸움닭'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삶을 단념시킬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마르케스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그러한 대령의 모습은 매번 인간을 거꾸러뜨리는 '운명'이라고 불리는 삶 속에서도 다시 또 일어나 살아갈 수

있는 동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역사 이래로 계속된 인류의 본질적인 질문에 맞닿은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케스의 이 작품은 길이는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원석)은 시대를 떠나

1946년의 알베르 카뮈와 2017년의 김영하에 의해 작품화 되는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품화될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그 질문에 대해 인간은 끝까지 답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다오."  대령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완전히 어린애와도 같은 시선을 다시 의사에게 돌렸다.

"아무도 내게 편지를 쓰지 않는다오."」  p21


  하지만 그럴지라도 마르케스의 '대령'을 통해 나는 인간이 바람이 계속 촛불을 꺼버릴지라도 인간은 계속해서 초에

불을 붙이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 부질없음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라는 사실이 주는 위안과 그리고 그 부질없는

기다림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죽음이라는 끝이 오기 직전까지도 삶의 '희망'으로 앞으로 한 발을 내딛는 존재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나는 또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 로맨틱펀치의 <창백한

푸른점> 노래 가사중 ~사람일 뿐이야~처럼 우리는 '사람일 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