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가르시아 마르케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묭롶 2012. 8. 6. 11:53

 

  이 책은 아흔 살이 된 한 노인의 사랑이야기이다.  이미 영화 <은교>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은 나이를 전혀 고려치 않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일반인의 시각에서 볼 때 노년의 사랑은 불편하고 거북한 추문에 불과하다. 

 

  나 또한 감명 깊게 들었던 첼로 연주자인 파블로 카잘스에 대한 관심으로 그의 연대기를 검색하면서 그가 여든살에 자신보다 예순이나 어린 이십살의 여 제자와 결혼했다는 대목을 발견하고는 당혹스러워졌다.  그 당시 나는 그가 자신이 가진 천상의 재능으로 나이 어린 제자의 동경과 찬사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해석한 욕심많은 남자로 느껴졌기에 그의 음악이 주는 감동과는 별개로 인간인 그의 모습에는 적잖은 실망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 한 남자가 나에게 '넌 너를 사랑할 줄 몰라, 넌 너를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라고  말 했을 때 그 말이 지닌 의미를 아주 오랫동안 곱씹어 본 후에야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진정한 '사랑'이었는지를 되돌이켜 보게 되었다.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의 사랑에 대해 어떤 식으로도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아침을 먹는 동안,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어두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었다.  왜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야 나를 알게 되었어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나이란 숫자가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p81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쉽게 접하는 사랑이라고 믿는(언론과 매체가 보여주는 환상성) 모습과 실제의 괴리, 그리고 그 속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해나갈수록 내 입은 무거워져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사랑에 대해 지금의 내가 감히 말할 수 있다면 그가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평하겠다.  자신에게 앞으로 놓인 시간을 재어보지 않고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며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당장 내일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신에 대한 믿음도 갖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는 없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사랑을 시작해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작중 인물이 한 때 선택하려고 했던 무기력한 일상을 소진한다.  실체적인 사랑에는 다가가지도 못한 현대인에게 사랑은 언제나 실체가 없는 환상으로 존재한다.  현대사회가 생산하는 과도한 섹슈얼리티는 어쩌면 보통 사람들이 채우지 못한 사랑에 대한 허기의 반작용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조차 배워본 적이 없는 인물군들은 실제로 사랑이 찾아와도 그걸 선택할 용기가 없다.  노년의 사랑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는 어쩌면 그러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기기만의 일면이기도 하다. 

 

 

「나는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시적 방종에 불과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날 오후, 그녀도 고양이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늙고 외로운 나 자신이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의 것도 사실임을 때달았다.  즉, 내 고통의 달콤함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이다.」p112~113

 

 

  오히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의도하는 작품에 대해 자식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자신의 위치를 의식(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하지 않고 소재에 얽매이지 않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늙지 않는 문학적 젊음이 작중 구십 살 노인의 사랑이야기를 이토록이나 아름답고 설득력있게 그려내는 원동력이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