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사랑은 자기애(愛)의 다른 이름이다.

묭롶 2017. 1. 3. 23:00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을때  "자기 나 사랑해?"란 질문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 나 사랑해?"라고

묻고는 "그럼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다시 되묻는건 거의 일상화된 공식과도 같다.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도 상대편이 내가 준 만큼 나를 사랑하는지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인 것 같다.


 난 나 자신보다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사랑에서 가능할 뿐 현실의 사랑은 서로의 등가가치에

대한 의심을 전제로 한다.  대부분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는 이유도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벌어지는 그 자신의

내면적 갈등의 폭발이 원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때 흔히 눈에 콩깍지가 씌웠다고 말한다.  콩깍지가 씌워있는 동안 내 사랑을 투영하는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시선이 유지되는 기간이 바로 사랑에 빠져 있는 기간이다.  콩깍지는 스스로에게 거는 자기최면과도

같다. 


  마르케스는 기존 문단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실체를 가린 콩깍지에 덮인 최면상태로 인식한다.  쉽게 비교해서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 동일한 주제인 노년의 사랑을 다룬 로맹가리의 『솔로몬 왕의 고뇌』를 비교해보자.


「아니, 이건 롱사르 씨가 쓴 시군.  그 역시 죽었소.  모두 죽은 이들이오. 

하지만 그들이 지닌 정신의 힘은 여전히 살아 있다오. 

아!  인생의 장미들!  꺾으시오, 꺾으란 말이오! 

모든 게 여기 있지 않소, 자노!  꺾으시오! 

우리를 꺾어가는 죽음만 있는 게 아니오. 

장미를 꺾는 우리도 있다오!」

『솔로몬 왕의 고뇌』p220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2권 331p


  문맥상으로만 놓고 본다면 낭만적 의지가 담겨있는 문체는 동일하지만 로맹가리의 사랑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표현한다면 마르케스의 사랑은 문맥의 이면에 다른 의미를 내포한 다중성을 지닌다.  흡사 이는 마술사가

모자(문맥)안에서 비둘기나 꽃, 토기 등을 꺼내는 마술과도 같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표면적으론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한 여자를 갈망해온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사랑을 포기하고 현실적 선택을 한 페르미나 다사,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을 중시한 삶을 살았던 우르비노 박사라는

세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노년의 사랑을 다룬다.  이 작품의 1권이 마술사의 모자라면 2권에서 밝혀지는 숨겨진

인물들의 내면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그 모자에 작가가 미리 배치해 놓은 비둘기, 꽃, 토기와 같다.  이는 그림속에

다양한 알레고리적 해석의 가능성을 담아낸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을 연상시킨다.



  마르케스는 페르미나 다사와 플로렌티노 아리사, 그리고 우르비노 박사 이 세 명의 인물들을 통해 마술처럼

속임수에 가려진 채 진짜라고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비틀어 보여준다. 

 열린 창문 뒤의 커튼이 바람에 살짝살짝 들릴때 창 너머로 비치는 풍경이 보여주는 감춰진 이면처럼 우리가 도덕,

사랑, 관습, 자기검열로 감싼 채 숨기고 있던 진실이 마르케스의 작품 속에 알레고리로 담겨있다. 


  실상 『콜레라 시대의 사랑 1』편은 아래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처럼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을 의미한다.

1권이 겉으로 보여지는 외면적 실체를 독자에게 보여준다면 2권은 1권이라는 가려진 창문의 알레고리 속에 담긴

내면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는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유지해온 사랑을 통해 그가 사랑이라고 믿는 자기기만의

실체가 자기애(愛)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한 여자가 없었던 까닭에, 그는 모든 여자들과 동시에 함께 있기를 원했다.」2권 p192


  전생애에 걸친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이 바로 이런 방식이었다. 자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에 페르미나 다사를

품고도 그는 622번에 걸친 성관계를 갖고도 아무런 도덕적 책임이나 양심의 가책없이 떳떳하다. 그로 인해 두 명의 여성이

죽었지만 그는 자신이 그 사건에 연루될까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구스타브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을 소설로 옮겨놓은 듯 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랑'에 느끼는 감정을 그는 팔십이 넘은 노년의 사랑을 바라보는 우르비노 박사의 두 자녀들의 말을 통해 '사랑'의

보편성(사랑은 아름답다)에 반문(노년의 사랑은?)을 제기한다.


  「"우리 나이에 사랑이란 우스꽝스러운 것이지만,

그들 나이에 사랑이란 더러운 짓이에요."」2권 p286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를 중하게 여기며 규칙적인 생활을 지키는 우르비노 박사가 흑인 이혼녀에게 유혹을 느껴서

바람을 피우는 행위를 마르케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 양복 상의는 거추장스럽지 않게 단추만 푼 다음,

조끼 단춧구멍에 줄 시계를 매달고

신발도 멋지않은 채 두려움에 질린 사랑을 하곤 했다. 

마치 쾌감을 얻는 것보다 그곳을 가능한 한 빨리 떠나는 데

관심이 있는 것 같은 자세였다.」 2권 151~152p

 

  그런 우르비노 박사의 외도를 페르미나 다사가 그의 옷에 배인 그녀의 체취로 알아챈다는 점은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는

그의 사랑이 동물적 육욕(충동적)에 자리잡은 것임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제정신인) 사람은

페르미나 다사이다. 그녀는 일찍이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이 실체없는 거짓의 마술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

대신 우르비노 박사와 결혼한다.  사랑없는 결혼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며 그 안에서

현실적 대안을 찾아나선다.


「자신이 돈 많은 하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의 신성한 하녀에 불과했다. 」2권 107p


  이렇듯 마르케스가 바라보는 사랑의 중심에는 '나'만 있다.  사랑의 대상이 서로 상호간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 동시성의 상황 속에서도 사랑은 그 각각의 대상들만의 개별성을 지닌다는 점이 그의 사랑에 대한 해석으로 보인다.


  결국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대상이 내가 좋아하거나 끌리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사랑의 출발점은 자기자신이고 그 대상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도 나 자신이며 대상을 갈망하는 것도 바로 나이다. 

물론 사랑을 끝내거나 식는 것도 나이다.  이렇듯 사랑이라는 감정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나는 사랑의 상대에게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을 대상에게 투영하며 그 대상이 그대로이길 바란다. 

  낭만적인 문체로 노년의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그 안에 사랑이 자기애(愛)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알려주는 방식이 바로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실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