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알레프>다의성의 궁극을 보여준 보르헤스의 세계를 만나다.

묭롶 2018. 1. 7. 13:49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눈이 멀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르헤스를 만나기

전에는 실감할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화부터 190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저작을 보르헤스가 수렵했음을 그의 책 『픽션들』과 『알레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동전 하나를 비유함에 있어서도 일반적 작품들이 동전과 관련된 한 두개의

일화를 담는 것과 다르게 보르헤스의 비유는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여러 사건과

문헌의 기록을 소환한다.


  그의 단편 <자히르>에 수록된 동전에 관한 일화들을 살펴보자.


    1. 자히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통용되는 20센타보짜리 동전
                    ->『코란』에서 '자히르'는 '눈에 보이는' 혹은 '분명한'이라는 뜻을 지닌 아랍어로,

                         '자히르'는 『코란』을 글자 그대로 읽는 것이며, '바템'은 숨겨진 의미 혹은 비밀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2. 카론의 은화: Charon-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매장의식을 거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태워

                         스틱스 강과 아케론 강 사이를 건너게 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그 대가로 시체의 입에

                         들어 있는 동전을 받았다.
    3. 벨리사리우스가 구걸했던 은화: Belisarius(505?~565). 비잔틴 제국의 장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그를 장님으로 만들어서 늘그막에는 길거리에서구걸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설이 있다.
    4. 유다의 은전 서른 닢
    5. 창녀인 라이스의 은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창녀. 가장 비싼 화대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6. 에페스스의 '잠자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내밀었던 옛날 동전.
    7. 『천 하룻밤의 이야기』에 나온 마법사의 반짝이는 동전
    8. 이삭 라케뎀의 로마 동전: Issac Laquedem: 프랑스와 베내룩스에서 '방황하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이름
    9. 피르두시가 왕에게 되돌려 주었던 은화
                     ->Firdusi(935?~1020): 페르시아 시인으로 페르시아 민족 최대의 서사시 <왕들의 책>을 썼다.
    10. 아합이 돛대에 박아 놓도록 했던 1온스짜리 금화
                     ->Ahab(기원전 869?~850?):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7대 왕
    11. 레오폴드 블룸의 되돌아올 수 없는 은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주인공
    12. 루이 16세의 금화


  단편 <자히르>에서 작중인물이 택시 기사에게 거슬러 받은 동전 한개는 기원전부터 현대의

『율리시스』에까지 이르는 12가지의 일화를 소환하는 장치가 된다.  보르헤스의 단편은 단어

하나가 그 자체로 <알레프> 적인 성격을 띤다.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뒤섞이지

않고 있는" 장소를 뜻하는 <알레프>처럼 그의 단편은 그 자체로 인류사의 모든 사건과 기록을 함축하는

궁극의 다의성을 지닌다.


  어떻게 이러한 작품이 가능할까?  아마도 세상을 인식하는 보르헤스의 독특한 방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나는 더 이상 우주를 보지 않을 것이고, 오로지 자히르만 볼 것이다. 

관념론의 가르침에 의하면 '살다'와 '꿈꾸다'라는 동사는 모든 점에서 동의어이다. 

나에게 있어 수천 가지 모습들은 단 하나의 모습이 될 것이다. 

또한 지극히 복잡한 꿈은 지극히 단순한 꿈으로 화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는 꿈을 꿀 테지만,

난 자히르를 꿈꿀 것이다.

~아마도 나는 쉬지 않고 자히르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것이 닳아 없어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동전 뒤에서 하느님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p146~147 <자히르>


  하나의 사물에 집중함으로써 그 궁극의 끝에 이르는 보르헤스 식의 사유를 구체(원)의 시각이

길어올린 총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반 사람들이 동전의 한면을 바라볼 때 보르헤스의 시각은

대상을 원형의 시각으로 봄으로써 그 대상의 총체성을 하나의 시각으로 담아낸다.  

  그렇게 길어올려진 총체성이기에 그 시각에 담긴 시간은 영원이며 또 앞으로의 미래까지를 포함한다. 


이런 이유로 그의 단편들에 담긴 시간 속에서 작중인물들은 자신의 과오를 되돌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용감한 죽음<타데오 이시도로 크루스>을 맞으며 사건의 인과관계는 다수의 사실이 중요한

한 두가지의 거짓을 감추는 장치가 되며<엠마 순스>, 현실은 열네개의 구유와 열네 개의 물통과

열네개의 마당과 열네 개의 우물이 있는 미노타우로스의 미로<아스테리온의 집>로 치환되고,

그 미로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열 네개의 단어들로 이루어진 글이지만<신의 글> 그 글이 적혀 있는

호랑이들의 몸은 나와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끝이 가까워지면 기억의 모습들은 남아 있지 않고,

단지 단어만 남는다. 

~나는 호메로스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율리시스처럼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이 될 것이다. 

즉, 나는 모든 사람이 될 것이고, 나는 죽을 것이다.」p32<죽지 않는 사람>


  그의 단편을 통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이다.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나를 꿈꿀 수도

있고 나를 만들수도 있으며 나를 과거로 되돌릴 수도 또 나를 미래로 내보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인 그 끝에 보르헤스가 있다.  그러한 통찰력을 얻는 대가로

보르헤스는 인어공주의 목소리처럼 시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