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서머싯 몸

<면도날> 을 통해 살펴본 인간의 삶!

묭롶 2016. 10. 23. 23:30

 

   인간의 삶에도 수학공식처럼 대입할 수 있는 해(解)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그랬다면 인간의 삶에 시행착오라는 단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길가다

느닷없이 당한 퍽치기처럼 인생은 내게 매번 선제공격을 가해왔다.  수학공식처럼

인생의 느닷없음에도 대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나는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었을까!  내 몸에 새겨진 많은 상흔들 중 한개라도 개수를 줄일 수 있었을까?

언제나 운명과 나의 관계는 타협점없는 일방성의 세계였다.  일방적 선제공격 속에서

누군지 모를 가해자는 말이 없었다.   그로인한 원망과 가슴앓이로 내 인생의

십년이 허비되었다.

 

  이미 오래 전에 삶이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죽음에 실패한 후 응급실을

들렸다가  한 여름에 긴팔 옷을 입고 출근해야했던 그때 나는 이미 신을 잃었다.

 

  침묵하는 신을 대신하여 문학은 여러 상황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답을 구하고자 한다.

서머싯 몸은 자신의 작품(『인간의 굴레에서』,『달과 6펜스』)을 통해 여타의 인물군의

삶의 여정을 보여줌으로써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탐구한다. 

 

「~이후 인도의 현인들도 인간의 결점을 깨닫고

랑을 통해 혹은 의로운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도 있다고 시인하긴 했지만,

가장 어렵고도 고귀한 구원의 수단은 단연 인식이라는 점은

결코 부인하지 않았죠.  인식이라는 수단은 인간의 가장 귀한 능력, 즉 이성이니까요. "」p446

 

  『면도날』은 그 탐구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1차와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미국의 경제

부흥과 경제 공황기라는 굴곡을 살아내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정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삶의

다양성 속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다.

삶은 매순간 순간마다 바뀌기에 어느 일부분의 인식을 통해 자신의 총체성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소설 문학의 존재 이유가 바로 구체적 인식의 결과물(소설을 읽고 느끼게 되는)에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에 비추어 볼때 한 개인의 삶은 너무나 얇아서 형태를 유지할 수 없지만 그러한 삶을 모아 엮어놓은

문학작품은 보여지는 구체적 형태를 지니기 때문이다. 

 

「새벽에 아름다웠던 장미가 정오에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고 해도

그것이 새벽에 가졌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했던 거잖아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요. 
~하지만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리석은 거예요.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어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니까. 하지만 다른 강물에

들어가도 그것 역시 시원하고 상쾌한 건 틀림없어요.」p459

  『면도날』을 읽으며 작품 속에서 인간을 탐구하는 또 한 명의 작가인 헤르만 헤세가 떠올랐다.

1874 년 영국에서 태어난 서머싯 몸과 1877년 영국에서 태어난 헤르만 헤세는 같은 시대를 살았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 시대상황에 맞선 문학적 방법론에 두 사람이 서로 의견을 나눈 적은 없지만

이견은 없었던 것 같다.

 

「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누구든 출생의 잔재, 시원(始原)의

점액과 알 껍질을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더러는 결코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에

그치고 말며, 도마뱀에, 개미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모두가 인간이 되라고 기원하며

자연이 던진 돌인 것이다.」 『데미안』p9

 

「하지만 우리 인간은 사라질 존재이고, 변화하는 존재이고, 가능성의 존재지. 

우리 인간에게는 완전함도 완벽한 존재도 있을 수 없어. 

 그렇지만 잠재적인 것이 실현되고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바뀔 때

우리 인간은 참된 존재에 참여하게 된다네.  완전한 것, 신적인 것에 한 단계

 더 가까워지는 셈이지.  ~자네는 예술가로서 많은 형상들을 만들었네. 

이제 정말 그런 형상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다면, 한 인간의 형상을 우연사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순수한 형식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자네는 예술가로서 이러한 인간상을 실현하는 셈이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P428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진 작가가 동일한 주제를 놓고 고민하는 상황은 작가들 자신은 의도치 않았지만

다각적 시야가 필요한 나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하나의 사물을 놓고도 어떤 위치와 어떤 각도로

스펙트럼을 비추는지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기에 인간이라는 주제에 대한 그들 각각의

탐구는 삶에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왜? 가 먼저가 아니라 어떻게?가 먼저라는 점을 나는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왜?에 머무는 순간 나의 현재는 언제나 과거의 연장선상에 놓일 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를

고민해야한다고 그간의 독서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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