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묭롶 2009. 1. 3. 23:51

  서머싯 몸의 작품을 읽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었다.  이 작가의 작품을 왜 진작에 만나지 못했는지 후회를 할 정도였다.  글을 읽어나가며 머릿속에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 속에서 나는 내 사유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달과 6펜스』는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작품 속 작가의 입을 빌어 구성되는 한 화가에 대한 전기가 이 작품의 내용이다.  작품 속의 화가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달과 같은 이상향을 꿈꾸며 '6펜스'에 해당되는 밑바닥 삶을 살았다.  그에게 현실의 육체적 고통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며, 그는 꿈꾸는 어떠한 대상을 형상화하는 일에만  온통 함몰되어 있다.  하지만 삼십대 중반 이후까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던 '스트릭랜드'가 왜 갑자기 화가로의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삶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없다.  작품 속 화자 자신도 그에 대한 궁금증을 독자에게 똑같이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화가인 스트릭랜드가 찾으려 했던 그 세계를 작가 자신도 '글'을 통해 아직은 찾지 못했던 까닭인 것 같다.  타이티 섬의 브뤼노 선장은 그에게 인간은 누구나 본질의 세계를 표현하려는 욕망을 가진 존재이며 예술가들은 이를 시도하는 존재들이고, 그 표현방식도 여러 가지라고 말한다. 

 

「~나도 나름대로는 예술가였다고.  내게도 그 친구를 움직인 그런 욕망이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 친구가 그걸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나는 인생으로 표현했을 뿐이지요.」p277

 

 스트릭랜드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작가의 상상력이  폴 고갱의 예술 세계에 대한 고찰로 드러난 작품이 『달과 6펜스』이다.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발현되는 창작의 단초를 작가는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릭랜드는 그때까지 자신을 얽매어왔던 굴레를 과감히 깨뜨려버렸던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뭐랄까, 전혀 생각지 못했던 힘으로 넘치는 새로운 혼을 발견했던 것이다.~거기에는 어떤 영적인 것이, 혼을 어지럽히는 전혀 새로운 어떤 영성(靈性)이 깃들어 있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상상을 이끌어 가면서, 영원한 별들만이 빛나는 어둡고 텅빈 우주를-벌거벗은 영혼이 두려움에 떨면서 새로운 신비를 찾아 모험의 여정을 나선 그런 우주를-암시하는 것만 같았다.」p191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영성과 만나기 위해 예술가들은 자신을 속박하는 모든 것을 버린다.  스트릭랜드가 남들은 현실에 안주할 나이에 안정된 삶을 버리고 불행이 예정된 삶으로 자신을 내던진 것처럼, 영성은 육체적인 고통을 초월하여 가장 어두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약한 빛이기에 이 빛을 찾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자신을 칠흙같은 어둠에 맡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더크 스트로브가 남들의 예술작품에 대해서는 냉철하고 넘치는 혜얀을 발휘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현실의 밝음에 속해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그에게는 장르를 떠나 예술을 통해 아무도 나아가지 못한 세계를 표현하려는 예술가들은 인간의 껍질을 쓰고 소통되지 않는 언어로 말하는 순례자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의 정신 세계는 천상을 꿈꾸는 것이기에 육체적인 욕망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수치심을 유발시킨다. 

 

「~당신은 존재하지도 않는 신전을 찾아나선 영원한 순례자 같아 보여요.」p212

「~고요히 천상을 떠돌고 있었던 그의 상념이, 마치 꽃 사이를 날던 오색영롱한 나비가 문득 얼마 전에 의기양양하게 벗어버렸던 자신의 추잡한 유충 껍데기를 발견하고는 몸서리를 치듯이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희생시켰다.」p220~221

 

   동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도 작품세계를 이해받지도 못한 삶을 살았던 한 화가에 대한 궁금증이 책을 온통 채우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적절한 언어로 구사하지도 못했던 그는 동 시대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보통사람들의 시각과는 다른 눈으로 대상을 보았고, 이는 작품 속에서 관능과 원시성을 표현한 색감으로 표현되었기에 보통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기괴하고 이상한 느낌을 주는 그림일 뿐이다. 

 

「~늘 실제보다 커 보이던 이목구비가 앓고 난 뒤엔 더욱 두드러져 기이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는 못생겼지만 어쩐지 범상치 않은 데가 있었다.  ~그의 관능성에는 야릇하게 영성이 어려 있는 듯했다.  그에게는 어딘지 원시성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이, 목신(牧神) 사티로스처럼, 반인반수의 형상으로 의인화했던 자연의 불가해한 힘들을 그도 함께 나누어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스트릭랜드도 신비로운 화음(和音)과 아무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양식을 가슴에 품었던 것일까.」p138

 

  그는 유일하게 자신을 알아본 화가 '스트로브'에게서는 아내를 빼앗아 그의 삶을 고통에 빠뜨리는 등,  일반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세계에 그는 살고 있다.  인간이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본 사람처럼 그는 현실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잃었다.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실명상태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다른 세상의 작품과  같은 예술작품을 완성했던 것처럼, 현실 세계를 버리는 그 순간 그의 예술은 완성되었다. 

 

「~창세(創世)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포스러운 어떤 것, 그를 두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신성한 것을 알아버린 이의 작품이었다.」p293

 

  그 동안 그가 살아온 고통으로 점철된 삶은 그의 예술을 완성시키기 위한 습작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 불행한 화가를 통해서 인생과 예술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한다.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을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p102

 

  살면서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死後)에 작품으로 인정받는 화가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는 시대를 앞선 선지자의 희생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그들의 삶은 사라지지만 계속하여 작품속에 정신이 남아 후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인생은 짧고 예술을 길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만 같다. 

 

(폴 고생의 자화상)

 

                                                                  (타히티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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