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서머싯 몸

<인생의 베일>

묭롶 2009. 1. 3. 21:47

 

  나는 지금도 삶을 살고 있으나 진정으로 내가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반문을 문득하게 되는 날이 있었다.  조오현시인은 죽을 날을 훌쩍 넘기고도 단 하루도 산 것 같지 않다고

「아득한 성자」에서 말씀하셨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살아진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가르키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냉정한 반추가

거듭되어 주체적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모든 구도의 과정의 첫 출발이 바로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표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모두는 그 표정 밑에 본질을 감추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수 없이 많은 가면을 수시로 바꿔쓰며 때로는 가면에 맞추어 본질을 바꾸기까지 한다.  '서머싯 몸'은 그렇듯 사람들의 삶 이면에 숨겨진 욕망과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오랜시간 고민해 온 듯하다.  『인생의 베일』은 단테의 『신곡』중 2부 「연옥편」의 제 5곡 마지막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그 구절은 단테에게 나타난 세 망령들 중 마지막 망령인 피아가 단테에게 현세로 돌아가거든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이다.

「부디, 당신이 현세로 돌아가 이 긴 여행의 피로를 풀게 되거든."  두 번째에 이어 세 번째 망령이 말했다네.  "나 피아를 기억해 주세요.  시에나에서 태어나 마렘마에서 죽었나니, 그 경위는 보석 반지로 나를 아내로 맞은 그가 알고 있나이다."」 

  이 구절은 몇 년 동안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머물다가, 긴 중국여행을 다녀온 후 이야기로 착안되었다. 

 

  여기 한 여인이 있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더 나은 삶을 갖기를 원해서 아버지를 평생토록 억압하고 종용해온 어머니를 둔 그녀에게 결혼은 자신의 삶 자체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선택이었다.  그녀의 어머니의 요구대로 자신만의 안락한 삶과 더불어 가족의 좀 더 나은 삶까지도 보장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는 일이 일생의 숙원이었다.  이를 위해 이른 나이에 사교계에 데뷔하여 남자들을 다루는 화법과 기술을 익히고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저울질해 온 삶.  하지만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던 시절에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져 집에서 천덕꾸러기였던 동생이 남작에게 청혼을 받게 되자, 더 이상은 선택의 기회가 없다는 어머니의 압박에 떠밀려 그 시기 자신에게 청혼을 한 병리학자 월터와 결혼을 하게 된다.  청혼을 받은 그녀에게 사랑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직 동생 도리스보다 먼저 결혼하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판단으로 결혼을 한 그녀는 결혼생활이 채 두 달이 되기도 전에 이 결혼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그녀 앞에 유부남인 찰스 타운센드가 나타나고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받아들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와의 새 삶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찰스에게 자신이 한 때의 유흥거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게 버림받고서, 그녀의 불륜을 알게 된 남편 월터와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으로 떠나게 된다.  파견지에서의 삶에서 예기치 않게 자신의 삶에 대한 깨닮음을 얻게 된 그녀는 다시 새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월터는 콜레라로 죽게 되고 홍콩으로 돌아온 그녀는 찰스와 또 한 번 부적절한 욕망에 휩싸이게 된다.  이성을 배반하는 욕망에 굴욕감을 느끼던 그녀에게 어머니의 부고가 전해지고 그녀는 그동안 진정한 가족이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며 새 삶을 시작한다.

 

「~마침내 ~마지막 선을 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과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낄 만한 환상적인 변화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우연히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늘 봐 왔던 같은 여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는 당황하고 말았다.」p64

 

  처음에 그녀는 단지 꿈꾸는 인형에 불과했다.  누군가가 테옆을 감아줘야만 움직이는 수동 인형 같은 삶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사랑없는 결혼으로 인해 단조로웠던 자신의 삶이 사랑으로 인해 변화될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의아해 한다.

 

「~그것은 거대했지만 어떤 유형이나 질서가 없었다.  ~그리고 종잡을 수 없고 방대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풍부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요새도 아니요.  사원도 아닌 인간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신들의 황제가 세운 마법의 궁전이었다.  인간의 손으로 지어졌다고 하기엔 너무나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며 비물질적이었다.  마치 꿈결처럼.  눈물이 키티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 보기는 처음이었고 마치 몸을 허물처럼 발치에 벗어던지고 순수한 영혼이 된 것만 같았다.  아름다움이 다가왔다.  그녀는 신자가 신을 받아들이며 먹는 면병처럼 그것을 받아 먹었다.」p137

 

하지만 삶은 가장 치열한 밑바닥에 있을 때 가장 살아서 팔딱인다고 했던 것처럼, 그녀는 불륜을 저지르고 이를 남편에게 들키게 되고 불륜의 상대자로부터 비참하게 버림받고 나서야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인식하게 된다.  남편은 자신에게 끊임없는 사랑으로 헌신하지만 사랑은 자신이 남에게 줄 때만 의미가 있으며 남이 나에게 주는 사랑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불륜을 알게 된 남편의 분노보다 찰스의 비겁한 배신이 더 가슴아픈 것이다. 

 

「~그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 일입니까?"

~"아무것도."

그녀는 미소를 지으려고 애썼다.

"어리석음 때문이에요."」p171

「~월터를 경멸했던 자신이 이제 경멸스러웠다.  ~바보는 그녀였다.  ~이제 그녀는 그를 혐오하지도 그에게 분노를 느끼지도 않았지만 약간의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꼈다.~워딩턴 또한 월터를 높이 평가했다.  키티만이 유일하게 그의 장점에 눈이 멀었다.  왜일까?  왜냐하면 그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경멸하도록 만드는, 인간의 가슴에 존재하는 그것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p173~174

 

  하지만 오지에서의 예기치 않은 깨달음으로 인해 자신으로 인해 '월터'가 얼마나 상처받았으며 자기 자신에게 불행한 존재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진 않겠어요.  당신이 예전에 나를 사랑했던 것처럼 나를 사랑해 달라고도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우리 친구가 될 순 없을까요?"

~"원하는 거 없어요.  당신이 조금은 덜 불행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나를 경멸하나요.  월터?"

"아니."

~"나 자신을 경멸해."」p178~179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월터가 상처를 이겨내고 그의 삶이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건 사람이 얼마나 나약하고 비겁한지 알면서도 그에 대한 연정을 지워버릴 수도 그를 미워할 수도 없는 자신에게서 느끼는 혼란은 '키티'와 '월터'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혼란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차이가 있다.  '키티'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았던 반면, '월터'는 자신에게도 냉소적이었다.  월터가 불륜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콜레라가 창궐하는 곳으로 함께 가자고 말했을 때에도 '키티'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반면, '월터'는 임신을 했다는 키티의 말을 듣고는 자신의 몸을 세균의 실험용으로 사용함으로써 죽음을 자초했다.  키티는 찰스에게 배신당하고 오지에서 남편을 잃고나서도 다시 찰스에 대한 욕망에 굴복하고 만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의미심장한 장치이다.  인생은 정해지지 않은 불확정성의 연속이다.  인간이 그 안에서 제아무리 발버둥쳐 보아도 결국은 뒤통수를 얻어맞고 진창에 내던져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한 진창 속이 삶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깨달음만이 그 진창을 딛고 일어설 힘이 된다는 사실은 키티를 통해 작가가 보여주는 진정한 '인생'의 실체일 것이다.  표정의 가면 속에 감춘 채 삶의 광풍 속에 

허수아비처럼 휘둘리는 인간들, 그러면서도 자신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려 하는 그것이 바로 '인생의 베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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