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어요

<늑대소년>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기에 더욱 아름다운 동화

묭롶 2012. 11. 6. 21:47

 

    내게도 동화책을 읽고난 후 책 속 인물들의 해피엔딩에 반문을 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만약 왕자와 공주가 나오는 동화책(제목부터 짜증난다고 느낄)을 읽는다면 책장을 덮자마자 '쳇! 결혼은 현실인데, 몇 달이나 행복했을라고 나머지는 지지고 볶고 서로 미워했겠지'라고 비웃거나 동화의 실체를 꼬집은 잔혹동화를 떠올리며 분명 숨겨진 뒷담화가 있을거라고 나쁜 쪽으로 상상력을 펼쳐낼 것이다.  갈수록 긍정적인 면보다 삶의 부정적인 면을 두드러지게 느끼고 사람에게 상처받아가며 갈수록 가장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나를 단단한 가면 속에 감추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 소설 『모모』에서 회색양복(나의 정체성을 회색양복 속에 감추었다)을 입은 시간도둑들 처럼...... 어쩌다 내 단단한 성채의 창살로 손을 내미는 사람에게 내 여린 속을 보였다가 몇번이나 베이고 나서는 내 상처가 낫는 시간동안 내내 마음을 드러낸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영화 <늑대소년>을 보고 많이 운다는데 나는 오랜만에 정말 많이 웃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동화 속  등장인물들만 같은 순수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맑고 쾌청한 이미지 속에서 오랜만에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는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놓고 볼 때, 큰일날만한 사람들이 다 수 등장한다.

 

1. 먼저 순이와 순자의 엄마:유옥희여사(장영남 분)

     이 배역을 맡으신 이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이미 여러번 브라운관이나 영화를 통해  

    미친 연기력이 무엇인지를 몸소 입증해 보이신 분이다.  (최근 '해품달'에서 국무로

    1회 출 연, 영화 <불신지옥>의 맹신도,영화 <이웃사람>에서 김새론 엄마 등)

     이 분은 <늑대소년>에서 이력도 확인 안된 정체불명의 고아(엄청나게 더럽고 냄새

    나는, 그것도 여자들만 사는 집에 남자를?)를 몸소 데리고 들어와서 씻기고 사람구실

   못하는 그를 먹이고 입히기까지 하셨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갖춰야 하는지를 이분을 통해 나는 배우게 되었다(아무리 싸가지 없어도 자기 자식이

  귀하기에 동업자의 버릇없는 아들까지도 용인하는, 배고파보이는 대상에게 서스름없이

  감자를 건네줄 수 있는)아마 요즘 시대에 외딴 별장에서 이런 상황에 맞닦뜨린다면,

  집안으로 내 새끼들 데리고 우선 몸을 피하고 경찰에 신고할 일이 아닌가.  그리고

   더더군다나 낯선 이를 집에 들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택배아저씨도

   못 믿고, 경비아저씨도 못 믿는 세상인데 타인을 어떻게 믿고 집에 들인단 말인가.

  2. 동네주민(정씨 아저씨 부부, 할머니 ): 

      이웃사람이 이사를 했다. 정씨아저씨 부부랑 할머니가 짐보통이를 보자마자 묻지도 

     않고 우선 짐옮기기를 도와주고 본다.   요즘은 이사업체가 모든 것을 전적으로 알아서

     하고  옆집에 누가 이사를 왔는지 관심도 없고 죽음을 부르는 층간소음문제가 대두될 수 있기

      때문에 윗집에 누가 이사를 왔는지만 중요하다.  아참, 옆집도 문제가 된다.  옆집

      주부가 상습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나 쓰레기 봉투를 현관이나 복도에 내놓는 사람일 경우,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또한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도 주차문제를 놓고 이사오는

     집은 차량이 몇 대 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울 뿐 정작 이사를 오는 사람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강원도 오계마을 주민(꼴랑 몇 명 안되지만)들은 단체로 착해지는

      우물물을   길어다 마셨는지 인성에 그늘이나 의심이 한점도 없다.  (난 속으로 순이

      엄마(과부)가 무슨 생각으로 태평하게 산간 오지마을로 이사를 올 수 있었는지

      부터도 이해가 안됐다.)

 

         극 중반 순이네에게 별장을 사준 동업자 아들에게 정씨가 찾아가는 씬에서

      갑자기 정씨가 돈을 요구하면 어쩌지라는 나다운 생각을 했는데, 푸헐... 착한 샘물을

       드신 정씨 아저씨는 동네사람들 무담시 괴롭히지 말고 떠나라는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는......

      무시로 애들이 서로의 집에서 밥을 먹고, 어울려 놀고 그런 일들이 자연스럽다는 사실

      역시 이 영화의 동화스러움을 강조한다.

 

  3. 생물학 박사 아자씨

     그간 돌연변이를 다룬 영화들에서 돌연변이를 만드는데 일조를 한 사람들은 모두 그들

    목적을 위해 대상 결과물을 수단으로써 대하고 이용했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을

   복원시킨 연구가의 목표가 부의 추구였고 영화 <X맨>에서 울버린이 인간병기로 활용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과 달리, <늑대소년>에서 박사 아자씨는 이용목적에는 관심이 없고

   주로 놀라운 새로운 개체가 무사히 (사람들의 관심의 저편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소년의 놀라운 신체상황에 대해 기록을 하면서도 학계에 그 사실을 알려

   노벨상을 타겠다는 포부도 없이 비밀로 덮어버리는 아자씨를 보며 <늑대소년>의 장르가

   동화임을 확인하게 된다.

 

  4. 군인아자씨

     군 장성이라고 하면 5.18을 겪은(다섯살때) 나로서는 피가 끓어오르는 적개심의

     대상이지만, 이 군인 아자씨도 뭔가 이상하다.  만화영화에서 총알을 쏴도 그 총알이

     완두콩이나 뭐 그런거여서 막 비현실적이게 튕겨나오는 그런 상황처럼, 처음 등장시의

     무게감은(신체의 무게감은 여전하지만 눈 녹듯이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개그콘서트의

     유행어 "고뤠~!"를 말할 것만 같은 조마조마함이 존재하는  인물로 탈바뀜한다.

 

  5. 순자 (아역 김향기 분)

    음.. 이 아이도 굉장히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요즘 같으면 동네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논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며, 타인에 대한 거부감(무서움)이 없다는 것도 그건

   부모의 예방교육 부재로 받아들여질 일이다.  거의 걸신들린 것처럼 밥상을 초토화 시키는

   인물(늑대소년)을 앞에 두고 태연하게 밥을 먹고 험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침착하며,

   까칠한 언니를 의젓하게 대하는 이런 대인배의 인물을 과연 내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이 영화 속에 삽입된 비현실적인 동화같은 아름다움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겠지만(직접 보시라,  그리고 느끼시라)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한국판 트와일라잇이라고 말할 때, 나는 개인적으로 순이와 늑대소년의 이미지가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의 마리(젊음과 늙음을 동시에 지닌 인물)와 하울(늑대와 유사한 흑색조)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마리가 마녀에게 이용당하는 하울을 사랑으로 감싸고 변화로 이끌었듯이 영화 <늑대소년>에서도 결국 '늑대(인성을 잃은 존재)'를 감정을 가진 존재로 변화시키는 힘도 순이의 관심과 사랑에서 나왔다는 점(어린왕자에서 왕자가 여우를 길들였듯이)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건 다름 아닌 사랑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독서와 달리 숨겨진 의도를 찾고 행간의 의미를 되집는 복잡한 암호해독의 과정없이 그냥 편하게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가장 큰 힘인 사랑을 느꼈다는 점에서 나는 간만에 행복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