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볼라벤이 바람으로 쓸고 간 자리를 오늘 덴빈이 비로 훑고 지나갔다. 영화를 보기 위해 사무실에서 나선 시간은 하필 태풍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시간이었는지, 옆으로 날아다니는 물줄기가 우산이 무색하게도 내 온 몸과 운동화를 흠뻑 적셔 놓았다. 영화표를 예매하고 햄버거로 대충 점심을 떼운 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오후 1시 30분, 그동안 비가 개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젖은 몸은 어느정도 말랐지만, 바람과 흙탕물이 내게 남긴 흔적은 거울로 확인한 바 보기 괴로웠다.
사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 영화를 그것도 혼자 보겠다고 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워낙 자주 그렇게 하다보니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다.
비가 오는 날 심야로 공포영화를 보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한가지이다. 물론 누군가 나의 영화관람에 동참해주면 기꺼울 일이지만, 나와 함께 비오는 날 심야를 본 사람들은 그 이후로 같은 경험을 하는 걸 강력히 거부했다. 또 나에게는 너무나 즐거운 일을 동 시간대에 같은 체험을 하며 너무나 괴로워하는 그들의 모습도 부담스러워 그냥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이 편해졌다.
(사례1: 비가 내리고 안개가 음산하게 낀 달 밤, 11시 프로로 <어글리>:자신의 또 다른 인격 '어글리'에게 조정을 받아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정신병자의 이야기:를 입사8년 선배 언니와 함께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언니는 화면을 보지 못하고 관람석 시트에 엎드려 떨고 계셨고 영화가 끝나고 다리에 힘이 풀린 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려야했다.
사례2: 역시 비가 내리던 여름날 밤 11시 45분 프로로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 사건>을 회사 유관단체에 근무하던 한 남직원(여자 친구가 있는 직원인데, 나와 동석한 대여섯명과의 술자리에서 담력내기로 나와 즉흥적으로 술집 옆에 있던 영화관에 가게 되었다)과 관람했다. 처음에는 영화를 잘 보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며 영화를 열심히 보는데 옆을 보니 몸을 떨고 있었다. 나중에는 무릎을 팔로 싸안기까지 하며 본인의 취향이 공포영화가 아님을 온 몸으로 드러냈다.
사례3: 그날은 고대하면서 기다리던 <엑소시스트:디렉트컷> 개봉일이었는데, 그날은 13일의 금요일 밤에 역시 비가 내렸다. 음... 이날 나와 같이 영화를 본 친구(이날도 역시 기다리던 이 영화를 혼자 보겠다는 나를 만류하던 친구들이 친구들 중 그나마 공포물에 취향이 좀 있었던 친구 한 명에게 나와 함께 영화를 볼 것을 권유해서)는 그 이후로 자신은 공포영화를 보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목이 뒤로 꺾인 채로 소녀가 계단을 거꾸로 기어내려와서 피를 확 뿜어내는 장면인데 바로 이 장면에서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혼비백산했었다.
사례와 같은 일들도 있었지만, 공포영화는 비오는 날 혼자 보는게 재밌다는 걸 난 이미 이십대 초반에 알아버렸다. 입사하고 이년째인가 됐던 해, 나는 유전적인 구개열분순으로 인해 사랑니가 잇몸 쪽에서 솟아나는 바람에 대학병원에서 본의아니게 두시간 가까이 수술을 받아야했다.(그때 내 구강상 구조의 특이점으로 인해 그 치과대학 레지던트와 실습생들이 내 수술과정을 참관했다-난 그날 죽다살았다) 장 시간의 수술과 처치로 인해 나의 얼굴 한쪽은 복귀 불가능할 정도로 부어올라 강펀치를 한 백대쯤 맞은 얼굴이 되어있었다.
의사선생님은 마취를 쎄게 했다며 시원한 곳에서 안정할 것을 권유했고, 오랜만에 발치를 이유로 휴가를 쓴 나는 딱히 갈 곳도 없고 집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너무 아프고 신경쓰이고 멍멍했다.)
난 아픔을 잊기 위해 치과대학병원 인근에 있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에어컨도 쐬면 시원하고 아픔도 잊게 될 거란 생각에 입 안에 피에 젖은 거즈를 목구멍까지 문 채로 손짓과 웅얼대는 소리를 내가며 <여고괴담1> 표를 끊었다. 사무실에 있을 시간에 한적한 영화관에 앉아 있다는 게 색다르고 기분이 좋았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무서워서 괴성을 지르고 옆 사람을 끌어당기는 동안 나는 너무나 만족해서 아픔도 잊고 영화를 재밌게 보았다.
그렇게 혼자 보는 영화의 재미를 알아갈 무렵 <링>시리즈가 개봉을 했다. 기존 공포비디오(헬레이져시리즈, 나이트메어시리즈, 사탄의 인형시리즈, 13일밤의 금요일시리즈 등)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긴장감은 느낄 수 있었지만, 딱 15세 관람가 수준의 공포영화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비디오플레이어가 보급되기 시작한 그때부터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엄마와 한 방을 썼던 나는 공포물 신간이 들어올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봐왔던 까닭에 영화에서는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공포영화는 불량식품처럼 끊임없이 내 시야에서 떠나지 않고 관람욕구를 자극한다.
내가 공포물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여곡성>: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며느리의 원혼으로 인해 시월드가 풍비박산나는 내용:이었다. 특히 며느리가 시아버지 앞에 국수를 삶아서 차려놓았는데, 그 국수가 지렁이로 변하는 장면과 무덤이 쪼개지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당시 <여곡성>은 나의 동급생들간에 큰 화제가 됐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덤이 쪼개지며 그 안에서 튀어나온 며느리 귀신이 떠올라 밤에 화장실을 못 갔다는 등의 얘기로 여름 내내 화제가 만발했었다.
비디오가 일반화되기 전 TV방영물에서 <여곡성>이 공포영화 중 발군이었다면, 비디오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처음 접한 공포물인 <이블데드>는 당시 중학생인 나의 눈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존에 시청했던 <전설의 고향>류의 공포물이 '한'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중신인 반면(한 맺힌 총각, 처녀, 며느리,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나 여우 등이 등장하는) <이블데드>는 '저주'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오래된 '저주'가 일으키는 화려한 볼거리로 영화는 채워져 있었고, 다른 종류의 공포를 접한 나는 이후 공포의 장르를 서양 비디오물로 눈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어찌하다보니,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서 태풍 오는 날 스릴러 영화를 보고와서는 내 공포영화 관람기를 떠들게 되었지만, 나도 그전엔 이유를 알지 못했던 독특한 공포영화 애호를 최근들어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 나이가 되고서야 내 취향의 이유를 짐작한다니 그것도 참 웃기는 일이지만, 나는 공포영화가 갖는 독특한 상황을 풀어내는 서사와 영상화의 과정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일상과 다른 특별한 공간과 특별한 사건을 맞닥뜨린 인간군상의 모습과 사건으로 인해 파생되는 이야기의 과정이 여타의 장르보다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아마도 다른 장르보다 공포영화에 끌리는 사람들이 갖는 저마다의 사연들을 옴니버스식 소설로 꾸며봐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삼천포를 돌다보니 오늘 관람한 영화얘기는 막상 하질 못했다.
몇 년전, 중국 관광중이던 관광객이 화장실에서 장기가 적출된 채 발견됐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게 서울'이라는 풍문이 있지만 멀쩡하게 관광을 간 사람이 사체가 되어 발견되었다니 정말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영화 <아저씨>를 보며 장기밀매 조직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느꼈다면 <공모자들>을 보고난 다음에 드는 생각은 '돈! 앞에서 사람목숨은 파리보다 못하다였다.
갈수록 우리는 귀신(차라리 귀신은 참 불쌍한 존재다. 실제적인 물리력도 갖지 못한 채 그저 나타나서 놀래키는 바람에 제 풀에 목격자를 본의아니게 죽이는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량해고를 통해 자살을 유발시키는 사업자나 살인자들에 비하면 능력이 일천한 존재이다.)보다 사람을 무서워해야 하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나에게 다가오는 타인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먼저 의심하고 판단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은 나 자신에 대한 애착마저도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나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사회 시스템이 부여하는 가치(권력, 금력, 사랑 등)를 전부라고 느끼며 자신을 위해 뭔가를 소비하는 일체의 행동들만을 최우선시한다.
얼마전 들리는 풍문에 모 그룹 회장이 주기적으로 온 몸의 피를 젊은 피로 대체해서 채운다는 얘길 들었을 때, 그렇게 하면 천년 만년 젊게 살 수 있데?라며 코웃음을 쳤지만 지금 되돌이켜보면 그건 무서운 얘기이다. 피를 젊은 피로 바꾼다는 말은 젊은 피를 원하는 수요자가 있고, 그 피를 제공하는 젊은이가 있으며 그 피를 의학적 목적이 아닌 불법적인 용도로 수집하여 공급하는 공급책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이는 '피'가 아니라 다른 장기에도 해당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영화 <아일랜드>에서 부유층의 신체 재생프로그램을 위해 사육되는 복제인간들처럼 수요라는 목적 앞에 인간은 단순한 수단 내지는 도구로 전락된 것이다. 영화 <공모자들>에서 '공모자들'은 실질적으로 장기밀매를 수행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대외적인 이미지에 둘러 쌓인 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언제어디서든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수요자들이 진정한 '공모자들'중의 머리임을 은연중에 우리 앞에 드러내며 소비와 성과 중심으로 왜곡된 현재 사회를 교정시켜야 할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비 내리는 날의 공포영화보다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더 끔찍하게 무섭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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