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맞아 영화를 두 편(<도둑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봤다. 영화 <도둑들>은 나름 내 장르는 아니었지만 재미있었고, 엄마랑 두 번째 보았을 때도 역시 재밌었다. 되도록이면 국산영화를 영화관에서 돈 주고 보자는 아름다운 마음에서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약칭'바람사'를 동생과 보게 되었다.
워낙 리뷰와 평점이 약했던지라 영화를 보기 전 기대치가 낮았는데 막상 영화를 본 느낌은 흐뭇했다. 왠지 '바람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작년 MBC 위대한 탄생에 출연했던 김태원 멘토의 멘티로 화제가 됐던 '외인구단' 멤버들이 연상되었다.
영화 <바람사>와 <도둑들>은 뭔가를 훔치기 위해 전문가들이 모여 작전을 수행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도둑들>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그들 각각이 선보이는 기술 뿐 아니라 외모 면에서도 멋진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들의 작전은 여타의 케이퍼 무비 등장인물들 못지않게 화려한 개인기로 점철되어진다. 이에 비해 <바람사>의 전문가들은 언뜻 보아도 뭔가가 이상하다. 전문가라고 하는데 웬지 믿음이 안 가고 외모도 일부 인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보편적 기준에서 떨어지는 외양을 보여준다. 설상가상으로 <도둑들>의 작업이 손에 땀을 쥐게는 하지만 결국은 그들이 성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드는 것이라면 <바람사>의 인물들의 전문성은 지켜보기에 조마조마한 불안함을 자아낸다. 흡사 위대한 탄생의 외인구단 멤버들을 경연 내내 지켜보며 손에 땀을 쥐며 그들의 실수를 염려해야 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더구나 그들은 보편적 기준에서 봤을때 사회적 약자이며 소수자이다. 영화 <도둑들>의 등장 인물들을 범지좌라는 공통점으로 묶을 수 있다면, <바람사>의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루저들이다. 정상적인 사회진출의 기회를 박탈당한 서자, 과부?(미혼모?), 방구쟁이, 난청장애인, 성적 소수자 등 그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로 묶였으면서도 우리가 쉽게 말하는 '루저'로 분류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부족한 그들의 전문성을 비웃지도 그들의 특이함을 혐오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그들의 부족함에 안타까움과 응원을 보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타인을 꺾어야 하고 아흔아홉개를 가진자가 백개를 채우기 위해 하나가진자의 물건을 뺏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도둑들>이 하나의 작전아래 등장인물 모두가 저마다 개인의 욕망을 위한 별도의 작전을 펼치는 반면 <바람사>의 인물들은 하나의 작전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자청해서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논리로 봤을 때 오지랖 넓고 자기 앞가림 못하는 인물군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위치에서 찌질하게 눈치보며 회삿밥을 먹고 수시로 비겁하게 무릎꿇으며 나 자신 가진 건 없지만 나보다 못한 타인을 위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 가진자들이 IMF를 일으키고 국내자산을 검은 돈을 먹고 외국 기업에 넘겨줘서 그들이 먹튀를 하고 삼성가의 회장은 사회공공성을 위한 기부 약속을 모르쇠로 일관할지라도 지금 같은 시국에서는 평소 먹던 맥주가 아사히였어도 양심에 걸려 하이트를 먹는 사람들......
이 영화의 제목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인 까닭은 바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자라게 순박한 사람들이 역사의 뒷면에서 자신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함을 제목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 역사에서 영화 속의 작전을 펼친 사람들이 시대의 인정을 받는 사대부나 양인가문의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이순신 장군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동안 역사의 뒷편에는 바람과 함께 스러졌던 수 많은 의병들이 있었다. 요즘들어 시기가 하수상하여 난 이 영화를 보고 믿어 싶어졌다. 그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질 뿐, 곧 들불처럼 다시 일어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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