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도정일교수

<대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묭롶 2011. 4. 30. 19:06

 

  막달이 되어 몸이 무거워지면서, 이 두꺼운 책을 읽는게 쉽지가 않았다.  앉아서 보자니 허리가 아프고, 누워서 옆으로 보자니 팔목이 아팠다.  막둥이 덕에 만나게 된 도정일 교수님의 글이라 포기하지 않고 읽느라고 무려 20일도 훨씬 넘게 걸렸지만 역시 읽은 보람이 있다.  인문학 서적에 대한 관심도도 낮고 소설쪽에 치우친 나의 독서 편식을 극복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이 책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인문학자인 도정일교수와 자연과학자인 최재천교수가 만나 인류와 문명, 과학과 자연 등을 넘나들며 나누었던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답변들이 담겨진 기록물이다.  그전에도 이러한 시도(각 영역의 전문가들의 대담이 담긴 출판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과학계와 문학계의 전문가들이 나누는 대화가 어떠할지에 대한 호기심(과연 내가 그 내용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란 의문과 함께)이 앞섰다.

 

  먼저 이 책이 쓰여졌던 기간 동안은 유전자 염기서열 확인을 통한 게놈 지도의 완성과 황우석박사(논문 조작논란으로 지금은 조용하지만)의 배아복제 성공으로 인한 유전공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높았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유전공학은 인간에게 장밋빛 미래를 예고하는 황금열쇠로 여겨졌던 때여서 두 학자들의 <대담>의 시작 또한 유전공학의 실체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문제인식과 제기, 그에 대한 각자의 답변으로 진행되었다.  어찌보면 인문학계와 자연과학계를 대표하는 석학들간의 만남이라 서로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갖고 이 대담을 읽어나갔지만, 책을 읽으며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는 다양한 이론적 근거(오랜 시간을 공들여 쌓은 참고문헌들과 통찰을 결과물들)들과 학자적 자존심을 앞세운 반박보다는 자신의 영역을 통해 풀어나가는 성실한 답변이 두 학자간의 대담에 나를 빠져들게 했다. 

 

  이 대담을 보며 두 학자간에 가장 큰 이견을 보였던 지점은 <인간의 영혼>, <신의 존재>, <유전자 결정론> 등이었다.  먼저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인류의 기원이 DNA에 본질적으로 각인된 종 다양성을 위한 진화와 종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유전자의 우연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현재 인간이 영위하는 문명과 인간의 행동 양식 모두가 유전자의 종 다양성이 진화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 형태라고 본다.  그래서 '신'과 '종교', '영혼' 또한 구체적 실체와 근거를 들어 그 유례를 입증할 수 없으나, 유전자의 진화 과정을 통해 발현된 (본질적으로 유전자에 내제되어 있던) 인류 문명의 일부(유전자의 표현형)라는 '유전자 결정론'적 입장을 지닌다.

 

  인문학자인 도정일 교수의 입장은 이와는 다르다.  최교수의 주장처럼 최초에 모든 것이 유전자에 기록된 정보에 의한 결과물이라면 과연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그의 반박이다.  또한 인간의 '자살'이 유전자 결정론을 고수하는 자연과학의 이론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반박의 또 다른 근거로 든다.  도교수는 인간을 자연 속의 일부(인간과 침팬지의 유전학적 차이가 몇퍼센트도 되지 않으며 인간이라는 개체는 침팬지보다는 보다 진화된 존재일 뿐이라는)로 편입시키는 자연과학의 입장에 인간이 사회화(영혼, 종교, 문명 등)라는 독특한 기능을 통해 자신의 문명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점을 주장한다.  물론 개미나 다른 개체에서도 사회화는 관찰되지만, 인간의 사회화가 갖는 차이점의 근거가 '언어'를 통한 후대에의 전승에 있음을 들어 그는 인간이 유전자의 목적대로 움직이는 수동적 표현형이 아닌, 능동적 존재임을 역설한다. 

 

  두 학자는 이처럼 인류의 기원과 문명, 사회화에 대한 이견을 보이면서도 인류가 직면한 현재에 관한 문제인식에서는 같은 입장을 보인다.  얼마전 EBS 지식채널e에서 인류가 의도적으로 하나의 품종만을 재배한 결과 종다양성이 사라져 병충해에 취약해져버린 '바나나'를 방영했던 적이 있었다.  최재천 교수는 유전학의 발전이 우생인류학으로 이어져 인류의 종 다양성을 축소시킬 위험성을 우려했다.  생물학적으로 종 다양성을 잃어버린 개체는 멸종되는 임상의 결과물을 근거로 들어 인류가 우수한 인종만을 유전적으로 조작하게 될 경우, '광우병'이나 '파나마 병', '조류독감'과 같은 재앙이 인류에게 도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예고했다.  도정일 교수도 유전학의 발전이 가족관계의 변화와 인간의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들어 인류문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을 표했다. 

 

  현재의 인류사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을 논하며 두 교수 모두 인간의 '이타심'에서 가능성을 찾는다.  최교수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이타심을 생물학적 호혜주의('보노보의 사례')로 설명하고, 도교수는 '이타심'이 인류의 본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차이점이 있지만 두 교수 모두 인간이 인간 서로간의 '공생'과 자연과의 '공생'을 모색할 때 인류의 긍정적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현대 과학문명과 자본주의의 심화는 인류에게 보다 '좋은 삶'을 실현 가능하게 해 주었지만, '보다 행복한 삶'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현대인이 갖는 우울증과 각종 스트레스, 고독감 등은 기술문명과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이율배반의 필연적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과거 나약한 인류를 하나의 구심점으로 묶어준 이데올로기서의 종교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 가족과 가족, 나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공생'을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다른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다. 

 

  ps:  <<대담>>을 읽으며, 두 교수님이 오랜세월 동안 쌓아놓은 방대한 양의 지식창고에 빼꼼이 고개를 디밀고 들여다본 기분이 든다.  아~~ 일천한 나의 지식에 대한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어느정도로 독서를 해야 이분들처럼 '아 이건 어디 몇페이지쯤에 나오는 얘긴데'와 같이 적절한 예를 들 수 있단 말인가...

 

  ps2:  원래 두텁지 못한 그릇들이 소리가 요란한 법이라, 일천한 지식을 믿고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특히 정치하는)이 많은데, 생물학계를 대표하는 분이면서도 인류의 생명공학을 책임지는 어쩌구 저쩌구 그런 식의 사탕발림이 아닌, '생물학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죽음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최재천교수님의 학자적 성실함과 겸손함을 여러 사람들(특히 정치하는)이 배워야 할 점이다.

 

 ps3:  아~~ 도교수님 글을 읽을수록 더욱 빠져들게 된다.  그의 문장이 갖는 힘 앞에 이런 리뷰나 적고 있는 내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현재로선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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