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도정일교수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묭롶 2011. 1. 12. 22:29

 

  출판 편집인 과정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 올라간 막내동생이 추천한 이 책,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다.  소설책 위주로 치중된 내 독서취향에 막둥이는 내게 어려운 책을 추천한다.  그 추천서들 중에는 읽은 책도 있고 읽지 못한 책도 있었지만 이 책 씌어진지 10년도 더 된 글 위주임에도 너무나 신선하다.  이 책에 씌인 글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 뜻이다.  이 세상이 시장전체주의와 정치권력의 연정을 통한 포교를 멈추지 않는 한, 이 책은 언제 읽어도 현 사회에 대한 가장 확실한 진단이 될 것이다. 

 

  책을 펼치며 1941년생인 이 교수의 약력을 보면서, '아!~ 또 잘난체하는 교수가 자기자랑에 겨워 적은 글인가보구나' (연배만큼이나 보수적이고 굳어버린 정신세계를 가진 교수들을 떠올리며) 냉소를 마구 뿌렸는데, 글의 문체와 글이 갖는 힘 속에서 청년이 느껴졌다.  막둥이한테 전화해서 이 교수, 교수치고는 맘에 든다고 다른 글도 읽고 싶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시장전체주의가 문명과 사회, 그리고 인문학에 미친 영향을 진단하고 이를 위한 해결방법이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는 담론들이 담겨있다.  

 

  과거 19세기가 과학기술 진보를 앞세운 서구문명의 비문명화된 민족에 대한 강제점령기였다면 20세기는 선진국의 문명이 개발을 이유로 미개발국들을 자기 세력(대표적으로 동,서로 구분된)의 영향력아래 두었던 시대였다.  21세기는 초국적 거대자본이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전지구적인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시기이다.  20세기 동.서로 구분되었던 이데올로기가 무너진 이후 자본주의는 초국적 거대자본을 형성하여 정치권력과의 연정을 통한 전방위적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데, 그 결과 자본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은 어느 나라라 할 것 없이 인간의 사물화와 대상화, 자연환경의 파괴, 반인륜적인 범죄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70년대 개발위주의 정책과 80년대의 군사독재, 90년대의 무리한 세계화 추진에 따른 IMF를 겪으며 현재 사회, 문화, 예술, 정치, 교육 할 것없이 모든 분야가 무한경쟁이라는 시장논리에 부합한 시대에 이르게 되었다.

 

( 예:삼성의 정치비자금이 문제가 되었을때에도 삼성이 무너지면 이 나라가 무너진다는 식의 논리로 인해 이건희회장은 구속되지 않았으며, 분식회계를 통한 에버랜드 주식 무상증자에 대해서도 처벌받지 않았다.-이른바 떡검사건-문제는 명백한 범죄에 대해서도 경제논리가 개입되는 순간 사회비판적인 여론은 매장당하며 체제전복 음모로 취급당한다는 점이다.)

 

시장 원리를 수락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가 되고 거기 적응하는 것은

시민의 '미덕'이, 그리고 그 적응력은 시민의 '능력'이 된다.  여기서 동일화,

내면화, 자기 감시가 발동한다.」  <시장전체주의와 한국의 인문학>p143~144

 

시장전체주의는 한 사회의 공적 가치와 규범들을 모든 방위에서 포위. 질식시켜

시장효율과 시장 조작 이외의 다른 가능성들을 열어놓으려는 어떤 숙고의 문맥도

살아남기 어렵게 하고, 사회 유지에 필요한 공공의 제도 및 정책들을 옹호할

이성적 담론들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 <시장전체주의와 한국의 인문학> p135

 

예2:BBK사건 등 의혹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음에도 747정책을 통한 경제발전을 약속한 이MB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흰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방울만 잘 달면 된다는 식)

예3: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의 사태를 통해 공교육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으며 교육을 통한 사회양극화의 심화가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예4:잇따른 학내에서의 교사폭행문제(이는 공교육에 대한 부정이며, 교사가 자신들

의 돈으로 고용된 사람이라는 시장논리에 의한 결과물이다)

 

「시장 체제에는 외견상 자유가 있어 보이고 자유경쟁과 자유선택, 자율결정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시장전체주의적 시장의 신은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박탈하고 선택의 이름으로 선택을 제한하며 다양성의 이름으로 다양성을 죽인다. 」

<시장전체주의와 인문가치> p199

 ->제 아무리 명품으로 자신을 차별화한다고 해도 결국 초국적시장전체주의라는 흐름 속에 또 하나의 한국아큐일 수 밖에 없다.  도정일 교수의 비유처럼 나는 너랑 다른 모자를 쓰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이야라는 표현과 같은 것이다.

 

  도정일교수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 나라의 어느 한 구석 빼놓지 않고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시장논리(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가진자와 이긴자만이 승자인)로 인해 인간은 더욱더 경시되고 목적대상화되고 있으며, 당장의 부가가치가 입증되지 않는 인문학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소비문화는 이 같은 근원적 불안과 불만을 표피적으로 미봉하고 감출 수는

있어도 그것들의 잠복과 폭발을 막을 수 없다.  그 잠복과 폭발이 여러 상징적

징후적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곳이 문화-예술의 영역이다. 

이것이 단일 생산양식의 지배 체제 속에서도 문화가 획일화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이며 민족문화가 채제내적 순응주의 미학을 거부하고

 또 거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 <문화 영역의 세계화 또는 아큐 현상>p71

 

  도정일 교수는 한 사회의 위기가 표출되는 지점이 문화(특히 문학)영역에서 이뤄진다며 사회비판적 문화의 결과물들의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하나의 문명은 쇠퇴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해나가며 그러한 결과물들의 총체가 독특한 한 민족의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인문학은 그렇기에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도 현재의 사회에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인문학의 부활을 통해 인간가치를 높이고 (서구의 인문학이 과거 이룩된 인문학의 모든 논리들을 부정함으로써 현재 인문학적 업적을 이뤄낸 것처럼), 시장전체주의의 획일화된 문명 속에서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PS:  그동안 인문학, 특히 문학의 위기(2000년대 이후)에 대해 거대담론의 소멸과 상상력의 고갈 등 여러가지 원인과 분석물들이 나왔으나 도정일 교수의 글을 읽으며, 그보다 더 큰 원인이 시장전체주의의 영향력에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결국 그동안의 담론들은 큰 원류를 찾지 못한 채 수박겉만 핥은 겪인데, 이 글을 읽고 수박을 쪼갠 것처럼 속이 다 시원해졌다.  결국 그의 주장대로라면, 현재의 문학이 나아가야할 지점도 '판매부수만을 위한 재미적 감수성'이 아닌 실체적인 방향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에 귀결되는데 과연 요즘 작품들 중에 그러한 성과물들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알베르 카뮈처럼 일관되게 자신의 주장(인간의 자유에 대한 보장과 타인의 정체성에 대한 배려,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되는 모든 것들을 거부)을 작품을 통해 펼쳐나가는 작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길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