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도정일교수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묭롶 2011. 1. 26. 22:06

 

  대부분 우리가 인식하는 '민주주의'는  '대의(代議)'민주주의이다.  말그대로 주권은 국민 개개인에게 있으되, 그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의원이 실제적인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민주주의의 후퇴와 위기에 대한 원인을 이책은 여러가지 각도에서 해석하고 찾고 있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지금의 위기가 바로 그 '대의(代議)'에 있다고 본다.  

 

  책에서 예를 들었던 바와 같이 민주주의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되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경우, 그 대표자를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뽑았다.  물론 인구수가 그다지 많지 않고 지역적으로 광범위하지 않았으며, 성인남자(여자와 노예를 제외한)만이 참정권을 갖고 있었다는 문제점도 있었으나, 추첨을 통해 대표자를 뽑았던 이유는 선거를 하게 되면 돈이 많고 힘이 쎈 사람만(가난하고 여유가 없는 사람이 무슨 수로 선거운동을 하겠는가?) 출마하게 되어 공정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 선거문화를 살펴보면 그 '대의'민주주의의 출발점부터 잘못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의'를 통한 국민주권의 실현보다는 사적인 이익과 당의 이익을 위해 출마를 한 사람들(99개를 가지고서 1개를 더 채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당선되고(특정당의 공천을 받기만 하면-거친말로 깃발만 꼽으면 당선되는), 그 국회의원들이 입법을 통해 자신들의(특정계급) 기득권을 공고히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갈수록 후퇴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단순히 선거때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등한시해왔다.  날마다 2mb를 뽑은 놈들은 도대체 어떤 x들이야?  도대체 딴나라당은 왜 계속 찍어주는 거야?  날이면 날마다 입으로 성토하기에 바쁘지만, 실제로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를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게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과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비춰봐도 지금 나와 우리의 모습은 변화를 필요로 한다.

 

  이와는 반대로 기득권을 가진 권한의 행사자들은 우리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캐리어를 지키기 위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움직인다.  철저한 계급투표를 통해 기득권을 방어하면서, '민주시민'으로 커나갈 수 있는 모든 기회(교육:뉴라이트를 통한 학생회의 와해와 대학생들의 의식전반을 좌우하며, 중고등학교의 입시부담 가중을 통해 시민으로서의 소양교육의 기회를 박탈, 사회문화전반: 무한경쟁의식의 고취 속에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사회분위기 조성)를 말살하며, 각종 재개발계획과 4대강 사업을 통한 특권의 취득과 재개발의 밑밥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확보해 나간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문제제기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중간층은 주입식 교육과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든 무한경쟁 탓에 제 밥그릇(내 식구 챙기기에)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다시 선거때가 되면 습관적으로 특정정당(그놈의 안보의식과 경제논리-사실 따지고 보면 경제논리는 특정계급을 위한 논리였지 국민을 위한 논리였던 적은 없었다)을 찍고 마는 것이다.  또, 사회가 책임지지 않은 88만원 세대인 청년층은 소수의 정규직(공문원, 대기업 공채 등)을 제외한 대다수를 패배자 취급하며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질식된 채, 미래를 위한 희망을 설계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대의'에 맡겨버린 우리의 무신경과 더불어 앞으로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바로 우리 스스로의 이기주의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갖는 제도이지만, 우리는 그 '주권'이 개인의 절대불가침의 '자유'를 인정하는 제도로 착각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너와 나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암묵적으로 합의한 '개인자유'의 제한을 내포하고 있어서 이를 위한 성숙한 시민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시민의식을 학습하고 경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쉽게 내 주변을 예로 들어보아도 이는 명백하다.  작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관련 대법원 위법판결이 있었다.  이후 비정규직 지회는 회사를 상대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공장을 점거하고 라인을 세웠었다.  당연히 공장이 멈추게 되자 그 공장에서 차량을 생산하던 정규직 노조의 반발이 있었고, 정규직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에 동참하기 보다는 정규직 노조의 이권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보여진 정규직들의 이기심은 지켜보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실제로 울산공장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는 정규직 생산직원임에도 자녀들은 비정규직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문제로 인해 자신의 급여에 손해가 생길까봐 전전긍긍이다.)

  2mb는 말한다.  정규직들의 이기심 때문에 일자리가 없는거라고, 정규직들은 또 말한다.  비정규직 때문에 자신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실상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질수록 이득을 보는 측은 회사이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만해도10년째 정규직은 채용이 되질 않고, 비정규직 그것도 인력업체를 통한 계약직(불법파견의 판결 위험이 없는)들만 들어오고(그나마도 최소한이 인원만) 있는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문제인식은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이 아니라 서로의 연대를 통한 활로의 모색에 있지만 오히려 문제가 심화될수록 서로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그럼 무엇을 해야할까?  먼저 진정한 '대의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국회의원)'들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한다.  단순히 선거때만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소환제'와 시민이 입법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이 시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입법참여를 통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비정규직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파견법으로 대표되는 근로악법의 철폐와 최저 임금의 상향을 통한 생활권 확보와 실업자를 위한 지원프로그램 등의 재원확보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급여생활자와 각종 간접세로 확보되는 세수의 확보에만 의지하지 않고, 고소득자에 대한 적극적인 세수 확보를 통한 사회재원의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 

 

PS:  뭐라고 막 떠들긴 했는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생각하면 참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내가 어렸을 때 이곳은 5월, 6월이면 최루탄가스 때문에 수업을 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어른들은 동네 점빵 앞에 놓인 평상에서 술에 취할 때면 군사정권을 욕했지만, 맨 정신에도 정권을 대놓고 비판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민주주의는 우리 생활에 다가와 있지 않았다.  이제 오히려 더 멀어져버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답답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게 나의 역할이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