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김훈

<내 젊은날의 숲>

묭롶 2010. 12. 9. 22:18

  

  김훈작가의 『내 젊은 날의 숲』예약 판매본을 10월에 주문해놓고 11월 10일경에 받았다.  책을 펴자 생각지도 않게 작가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었다. 

 

  그의 문장만큼이나 담백한 그의 이름 두 글자를 찬찬이 들여다보았다.  언어가 그 사람을 표현하는 매개물인지 그 사람이 자신을 언어를 통해 표출하는 것인지를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문맥 속 구절처럼 나물을 오랫동안 입 안에서 씹으며 그 나물이 간직했던 빛과 시간의 질감을 되살리는 되새김질이 그의 글을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되새김질은 작중에서 세밀화를 그리면서 아버지의 삶 이면에 담겨있는 각각의 아버지의 모습에 조금씩 다가가게 되는 딸의 모습을 통해 작품 속에 실체화되었다.  이렇듯 김훈은 실존으로서의 인간의 총체성이 아닌 그 인간의 전체를 이루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해를 언어의 틀을 빌려 구체화하고자 한다. 

 

  그의 전작 『공무도하』가 던적스럽고 구차한 인간 삶의 무늬의 결을 고스란히 비춰줬다면 그의 이번 작품은 작중인물 연주의 세밀화 작업이 보여주는 것처럼 한 땀 한 땀 무늬에 새겨진 시간을 한 올 한 올 다시 풀어내는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바다의 기별』-「언어의 징검다리를 딛고 서 있을 때, 징검다리의 저편이 보일 듯도 하지만 이 징검다리를 딛지 않고서는 나는 저편으로 건너갈 수 없다.  나에게 간절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징검다리 건너편에 있는 실체이지만, 나는 늘 징검다리 위에 있다.  」p63에서 오래도록 포구를 관찰하며 건져 올려지지 않고 글로 표현되지 않는 ‘말’들을 향한 길어올림을 향한 그의 노력이 이번 작품을 낳은 듯싶다.


「사진은 꽃과 나무의 생명의 표정과 질감을 표현하기에는 미흡한데, 그 까닭은 사진의 사실적 기능 때문에 오히려 생명의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며, 생명의 사실을 그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인간의 시선과 인간의 몸을 통과해나온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대상을 표현하는 인간의 몸짓에는 주관적 정서가 개입하겠지만 생명의 사실에서 주관과 객관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p80


  그의 문장을 접하며 카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카뮈는 자신의 글들이 ‘왜 사느냐!’가 아닌 ‘왜 계속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성찰이라고 밝혔던 바 있다.  카뮈 작품의 화두는 작중인물인 안 요한실장의 꽃의 색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도 맥을 같이 한다.  어찌 보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거나 반드시 원인을 규명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할 난해하고 불가해한 질문들에 카뮈와 김훈은 왜 집착하는 것일까?  카뮈와 김훈의 고찰은 바로 죽음과 삶의 동시성 속에 나이테를 넓혀가는 나무와도 같은 인류의 총체성에서 차지하는 문학의 위치와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갈수록 쉽게 쓰이는 글들이 범람하고 인터넷의 확산과 더불어 쉽게 이뤄지는 자가 출판의 세태 속에서 그들의 문장이 갖는 대별성을 읽고 그 의미를 숙고해야하는 필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