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김훈

명징성의 세계로부터의 전언(傳言)

묭롶 2008. 11. 30. 00:07

 

  예전부터 나는 글을 쓰게 될 때마다 씌어진 언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히

그순간 생각했던 바를 적었음에도 글은 사고의 무한함에 비교하여 유한한 존재여서

뭔가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처럼 허술하기만 했다.  

  나는 김훈의 『바다의 기별』을 읽고서야 왜 내가 그런 생각들을 해 왔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이 불완전함으로 인해 인간은

고래(古來)부터 소통을 필요로 했고, 말은 그 소통을 위한 도구였다.  인간의 사고가

최초의 일차적인 언어였다면, 이를 표현하는 이차적인 언어는 말이 되고, 이 말이나

사고를 표현한 글은 삼차적 언어가 되는 것이다.  언어는 매 단계를 거칠 때마다

감쇄와 왜곡을 일으켜 글로 생각했던 모든 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김훈은 그렇게 포착된 찰나를 그리고 사물을 진실되게 표현할 수 있는 명징성의 세계를 동경하고 추구해

왔다.  그는 해 저물때까지 한강의 하구에서 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운동장에 어스름이 내릴때까지

마냥 앉아서 노는 애들을 지켜보고, 아무도 없는 박물관에 가서 그 속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뭔가에

귀를 기울이며 건져올려지지 않는 '말'(언어)을 기다리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이라고, 그 갯벌은 가르쳐 주었다.  내 영세한 사랑에도 풍경이

있다면, 아마도 이 빈곤한 물가의 저녁 썰물일 것이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p15

 

  명징성을 가진 언어를 건져올리기 위한 그의 노력은, 언어가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그의 간절한 바램 때문이다.  현재 언어는 소통보다는 사람들간의 단절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채팅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읽고, 쓰고, 말하고, 듣기 중 말하고 쓰는 것에만 치중하여 '듣기'와

'읽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지 않은 언어(말)로 인해 단절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바다의 기별』은 오래도록 말의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했던 김훈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그 속에서 그의 작품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개』 등이 어떻게 글로 엮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흔적들을 작가가 원고지에 쓴 눌러쓴 연필 자욱을 손가락으로 더듬듯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완전한 언어로 불완전한 세계에서 사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서 쓴다는 것입니다.

  저의 소설은 대부분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 소설에는 종교나 내세나 구원이나 피안이나

이런 것들이 나오지 않고, 오직 이 해탈하지 못한 중생들만 나옵니다.~ 인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까,

인간의 안쪽에서만, 인간의 언어만을 붙들고 살아야 디니까, 그런 협소한 자리의 부자유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 안에서만 한 줄 한 줄의 글을 쓰다가 때가 되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p167,168

 

  대한민국 건국과 출생을 함께하여 육십평생을 가난한 집안의 가장으로 밥벌이를 위한 글을

쓰다가 오십이 넘어서야 자신이 생각했던 글을 쓰게된 김훈..... 밥벌이를 위해 썼던 글이 그에게 줬던

민망함을 그는 견디며 그 속에서 언어의 명징성을 얻기위해 그는 자신 속의 언어들을 그리도 긴 시간

칼날을 갈 듯 벼렸나보다.  오십년을 속에서 벼른 칼의 칼날이 비죽이 세상을 향해 나오던 그 날, 사람들은

낯선 언어의 세계가 손짓하는 소통의 세계 속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치장을 위한 수사가 없는 그의

담백한 문체와 군더더기 없는 진술은 동어반복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신선함을 주었다. 

  한강 하구 갯벌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의 내음을 맡는 그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 멀리에 있는 바다와

소통하고 있는 강물을 보면서 명징성의 언어가 자신에게 주는 말과 소통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요즘 실물(實物)의 구체성과 사실성을 생각하고 있다.  실물만이 삶이고 실물만이 사랑일 것이다. 

이 묵은 글을 모아놓고 나는 다시 출발선상으로 돌아가겠다.」서문 中

 

  그는 그렇게 오래도록 자신의 의견은 비워 둔 채 그 속에 사실들이 주는 명징성의 세계로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응시하는 것이다.  벌써부터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