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주제 사라마구>

죽음의 중지=절대적인 모든 것들에 대한 부정!

묭롶 2009. 11. 20. 23:15

 

 <눈먼 자들의 도시>1995년, <눈뜬 자들의 도시>2004년, <죽음의 중지>2005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실험을 소설 속에서 치열하게

그 밑바닥까지 탐구했던 이 포르투갈의 노작가의 3부작 마지막편인 이 책을 한참전에

읽고도 리뷰를 올리지 못했다.  나름 바쁜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활동을 멈춰버린 '죽음'이

인간에게 주는 예상치 못했던 반전들이 자꾸만 내 목울대를 오르내렸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 중 가장 큰 것은 과연 '죽지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이 축복일까?'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라는 문구가 우리들에게 갖는 보편적 의미는 '병들지 않고, 새로운 인구가 태어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를 의미한다. 

 

  주제 사라마구는 불사(不死)=불로(不老)라고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사람들의 통념이 잘못되었음음 

신랄하게 지적한다.  특히 그는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보편적인 통념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기 위해,

인간의 반대편에 다른 존재들을 세운다.  바로 그 존재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먼의사의 부인의 개

'콘스탄테'였다.  그는 생존을 위해 인성을 버리고 야만을 택했던 인간들과는 다르게 짐승이지만, 의리와

인간에 대한 애정을 끝내 배신하지 않았던 눈물을 핥아주는 개 '콘스탄테'의 대비를 통해 인간들이 갖고

있는 '만물의 영장' 내지는 '유일하게 이성적인 존재'라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규정이 허상임을 폭로한다.   

 

  그런 그가 <죽음의 중지>에서 선택한 대상은 이번에는 '죽음'이라는 존재이다.  먼저 '죽음'을 떠올릴때

사람들은 그 단어에서 막연함을 우선적으로 느낄 것이다.  그 다음에 느껴지는 감정은 바로 공포이다. 

'죽음'은 언제나 '삶'의 반대로 여겨져왔기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육신으로 죽음을 상상하거나 예측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겪어보지 못한 일이나 어려운 일을 앞두고 느끼는 불안감과 공포, 낯설음보다 엄청나게 큰

압박감을 가진 실체 없는 존재가 보편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의 중지>에서 '죽음'은 생물도 무생물도 아니며 실체가 있지도 없지도 않으면서, 감정을 가진

여성으로 등장한다.  오래전부터 일반적으로 죽음에 여성성을 부여해왔으나, 그 실체를 부여한 것은 아마도

주제 사라마구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 '죽음'은 단지 하나의 죽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한 나라에 거주하는 인간의 죽음만을 관장할 뿐, 그녀보다 훨씬 범위가 큰 죽음 뿐만 아니라 다른 우주,

다른 생물의 수명에 관여하는 죽음들이 존재한다. 

 

  이미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그 밑바닥, 내면에 존재하는

그 눌러붙은 시꺼먼 덩어리를 긁어내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인간의 추악한 본 모습에 진저리를 치게 만들었던

이 작가가 '죽음'의 입을 빌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작품의 첫 머리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사람됨이 무엇을 뜻하는지 점점 더 모르게 된다.

<예언의 서>

 

  이제 1922년에 태어나 1, 2차 세계대전을 몸소 체험하며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테러, 기아와

자연재해 등을 눈으로 목격하고 직접 살아온 이 노작가는 오히려 죽음이 가까운 나이가 되고서도 갈수록

완전하고 명확해지는 것 보다는 모든 것이(기존에 완전무결 내지는 보편타당하다고 믿었던 모든 명제들)

불완전하고 거짓된 것임을 갈수록 더 크게 각성하고 있는 듯 하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1995년에 출간되고 <죽음의 중지>가 2005년에 출간되기까지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노작가의 인간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책을 읽고 난 말미에 하게 된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어 다시 이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결국, 그 어떠한

것도 완전하지 않다'는 가능성과 모든 보편성을 향한 부정이다.  이는 또한 그의 전작들이 그 밑바닥까지

드러냈던 인간 본성에도 불구하고 완전하지 못하기에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을 향한 노작가의 포기하지

않는 희망의 증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