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자료/소설습작

사무실(소음)

묭롶 2009. 2. 24. 22:50

   짙은 파랑색으로 코팅이 된 유리창은 외부의 빛과 소리뿐만 아니라 이유를 불문한 채 모든 것으로부터 내부를 차단한다.  바깥 세상의 태양을 대신하여 SM콜센타 5층 사무실은 강력한 삼파장 전구의 눈부신 백광으로 채워져 있다.  그 공간을 독서실처럼 칸막이로 분리된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책상들로 채워져 있고, 그 책상들 위에는 터치스크린이 비치되어 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목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는 여자들이 보인다.  모니터를 응시하는 얼굴은 보이질 않고, 그저 줄 지어 의자 위로 묶은 머리, 길게 풀어 늘어뜨린 생머리, 웨이브 머리, 단발 머리 등등의 머리들만이 보일 뿐이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여자들이 이어폰을 꽂은 채 터치스크린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손으로 터치를 함과 동시에 말들을 쏟아낸다.  각각의 칸칸에서 울려나오는 말소리로 가로 10줄, 세로 5줄의 칸막이로 채워진 사무실은 웅성웅성하는 진동으로 가득차서, 흡사 말이 존재하기 전부터 내려온 주문을 외우는 원시부족들의 제의를 보는 듯하다. 

  출입문 입구에서 가로 두번째줄 첫번째 칸막이에 오른손으로 터치스크린을 조작하며 왼손은 머리카락을 헤집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여자의 앞에 비치된 모니터에 빨강 동그라미에 둘러싸인 '135'라는 숫자가 뜨자, 이내

1초 정도 숨을 '훅'하고 내쉬며 곧바로 날랜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숫자를 터치한다.  터치와 동시에 모니터에는 상담전화를 한 고객의 할부금불입관련 내역과, 자동이체관련 내용, 고객 인적사항, 고객 특기사항, 그동안의 전화상담기록이 메뉴로  표시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멘트를 하면서 마지막에 ~도와드릴까요 부분을 발음할 때 어조를 물음표로 올려서는 안된다.  정성을 다해서 돕겠다는 느낌표를 고객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아 한다.)  멘트가 끝나자마자 가늘고 높은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 통장에 돈이 있는 데 왜 안빼가놓고 연체료를 붙여먹어...이 도독놈의 새끼들아" 

씩씩대는 고객의 숨결이 섞인 음성을 들으며 머리카락을 헤집는 왼손의 동작이 더 신중해진다.  오른손이 상담고객의 자동이체 불입 데이터 메뉴를 터치하자 모니터 왼쪽으로는 자동이체 내역이 표시되고, 오른쪽에는 이 경우에 해당되는 적절한 추천 응대요령이 1번, 2번, 3번 순으로 적혀있다.  자동이체 청구불입내역을 확인하고는 2번의 문구로 대답을 한다.

"고객님!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고객님 결재일이신 25일에 출금될 356,580이 잔고부족으로 인출이 되지 않아 익월 5일에 연체료를 포함한 금액이 인출처리 되었습니다."

모니터에 표시된 문맥대로 재빠르게 읊은 후 오른손과 왼손은 고객의 그 다음 공격을 대비한다. 

"누가 그걸 몰라서 목 아프게 말하는 줄 알아? 

돈이 부족해서 안 빠질 것 같으면 미리 전화를 해야할 것 아냐? 고객만족도 몰라?"

다시한 번 재빠르게 2번 응대요령을 터치하자 그 다음 단계의 응대멘트가 화면창에 뜬다.(최대한 신중하고 느린 어조로 고객이 진심어린 사과라고 여겨질 만큼:이라고 밑줄이 그어져 있다.)

"고객님, 미리 안내해드리지 못한 점, 정말 깊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저희 신용캐피탈사에서는 고객님께 연체 고지의무만 있습니다.  고객님께 할부금고지는 이미 자동이체 안내문으로 발송되었기 때문에 잔고부분은 사전에 확인을 해주셔야 합니다."

멘트를 읊고난 뒤 수 초간 그 다음 단계의 멘트로 넘어갈 것인지를 묻는 듯 응대요령 2번의 숫자에 표시된 대기등의 불이 깜박이며 시선을 빼앗는다.  멍한 채 손가락에 잡힌 곱슬머리 한 가닥을 손가락에 잡고 돌려 감고 있다가 고객의 대답에 머리카락을 놓치고 만다.

"그러니까 미리 확인 못한 내 잘못이란 얘기네?  허이참~ 어이가 없어서 아무리 빚진 사람 죄인이라지만... 더럽고 치사해서....." 

-쾅!!!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너무 커서 이어폰 스피커가 꼭 맞게 붙어있는 오른쪽 고막이 터질 것 같아 여자의 몸이 흠칫한다. 

고객의 통화 종료음을 끝으로 점멸된 화면은 회사로고 바탕 위에 점심시간(점심시간이란 문구 밑에 시간엄수라는 문구가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며 물결친다)이라고 찍힌 영상을 표시하고 있다.  모니터 화면의 시계가 12시를 가리킨다.  입구에서 오른편에 위치한 상담원들이 자리에서 기지개를 쭈~욱 펴고, 연신 에구구하는 소리를 연발하며 목을 뒤로 꺾기도 하고 돌리다가 주섬주섬 일어나서 출입구를 지나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지하구내 식당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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