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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습작1.[박여사]

묭롶 2008. 10. 27. 10:28

  잠에서 깨었다.  아마도 새벽 2시일 것이다.  눈을 뜨지 않고도 커텐이 드리워진

침실의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눈 감은 채 보는 그 이면은 중계되지 않는

흑백 텔레비젼의 화면처럼 자잘한 흑백의 격자무늬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지지직거리는 눈 밖의 풍경이 느껴진다.  새벽은 작은 소리의 진동까지도 전달한다.

  제법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바퀴의 묵직한 마찰음과

큰 도로를 달리는 화물차들의 엔진소리, 그리고 늦은 귀가로 택시에서 내리는 승객이

문을  여닫는 소리, 엘리베이터가 띵동 하면서 울리는 소리 등, 아참 옆집 아저씨의

12시 30분부터 시작된 코콜이는 그때 즈음이면 낮은 코골이로 바뀌어있다. 

  가끔은 술을 떡이 되게 마셔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는 취객의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이 동네에서 그런 일은 드문 일이다.  어쩌다 아파트

근처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은 회색빛 무표정으로, 흡사 얼굴에 똑같은 재질의

커텐으로 표정이 보이지 않게  닫힌 커텐처럼 그 속에서 그들의 희로애락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끔씩 나는 내 얼굴에도 같은 재질의 커텐이 쳐져

있는 건 아닌지 거울 속을 찬찬히 뜯어보곤 한다.

 

   새벽에 눈을 뜨지 않은 채 듣는 소리들은 잠에서 깨어 있는 내 의식과 온 몸을

엄청난 두께의 솜이불처럼 짓누르거나 내 몸 속을 관악기처럼 큰 진동으로 울리고는

빠져나간다.  이 시간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생각이 시작되면

다시 잠들 수가 없다.  이제 다시 잠들면 나는 4시간 10분 정도를 더 자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아무리 노력해도 생각이 나를 놓아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모조리 머리를 뚫고 나와 한 없이 자라나는

무한 증식하는 줄기들처럼 눈도 뜨지 못하는 내 몸을 꽁꽁 얽어매고는 지쳐서

마침내 눈을 뜰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어제 마신 술 때문이었을까?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에 의식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자마자

눈을 떴다.  무서운 것을 피해 숨을 곳을 찾는 듯 그다지 크지 않은 눈을 번쩍 뜨게

된 것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엄마가 보인다.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이불을 온몸에 친친

감은 채 옆으로 누워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다.  이렇게 새벽에 눈이 떠져서

다시 잠들지 못할 때마다 내 반대쪽으로 등 돌리고 있는 엄마를 내 쪽으로 이불에

말린 채로 돌려놓아 보지만 엄마는 금방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침대에서

잠자는 위치를 바꿔도 마찬가지이다.  침대에서 내가 창가쪽이든 그 반대편인 방문 쪽

이든 방향에 상관없이, 엄마는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나를 밀어내듯 내가 위치하는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잠드는 것이다. 

  난 엄마의 하나뿐인 딸이지만 난 엄마와 많이 달랐다.  초등학교 때 난  짝궁이

코도 흘리고 너무 더럽다며 짝궁을 바꿔줄때까지 학교에 안가겠다고 떼를 썼다.

내 친구 지연이는 그렇게 하면 엄마가 선생님께 짝궁 바꿔달라는 애길 해주실거라

했다.  내 고집대로 학교를 가지 않은 날 엄마는 학교에 가시는 듯 했다.  좋은 결과를

기다리며 현관문을 열어주던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더러운 내 짝궁의 손을

잡고 들어와서는 그 친구를 씻겨주고 엄마가 손수 만든 딸기쨈을 바른 식빵과 우유를

'언제든지 놀러오라'는 말과 함께 주는 것이었다.  그날밤 엄마는 친구를 골라사귀면 산타

할아버지가 슬퍼하실거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이미 산타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의 숙면은 저녁 10시부터 새벽4시 까지이다.  엄마를 보고 있으니  불현듯 생전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니 엄만 꽃 같은 사람이다.  엄마한테 잘해라'  물론

난 그 말에 "그래요.  엄마는 꽃이고 아빠의 하나뿐인 딸은 잡초요" 라며 입을 삐죽였다. 

  그렇게 얇은 유리그릇처럼 보호만 받으며 30년 가까이 아빠가 가져다 준 돈으로만

생활하던 엄마가 내 급여에 압류가 들어온 후 우유배달을 하겠다고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험한 일이라곤 해본 적이 없던 분이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겠다니, 더구나

토바이는 타본적도 없지 않은가! 어이가 없어서  '-엄만 그냥 가만히 좀 계세요. 

지금 터진 일만 해도 머리가 쏟아질 것 같아'  라고 했지만 오토바이 가게 아저씨와 함께

운동장을 일주일 정도 다니더니 한달후엔 면허를 따서 다음달부터 우유배달을 시작했다.

 뭔가에 그렇게 치열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처음이라 놀랐지만 엄마는 금방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왜 하필 우유배달이야?" 라는 물음에 엄마 특유의 배시시 웃음을 띄우며

"건강을 배달하는 일이잖아?  내가 배달한 우유를 먹는 사람들이 건강해지길 기도하면서

배달하는거...너무 멋지지 않니?"  엄마의 낭만적 공상의 현실적 문제들은 전부 잡초같은

내 차지이다.  우유보급소에서는 유통기한이 거의 다한 우유를 엄마 출고 물량에 몰래 섞어서

넣었고, 다른 여사님들과 달리 보급소에 항의도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매번 오래된

우유를 먹고 탈이 난 내가 우유배급소를 들었다놨다 하고 나서야 엄마의 순조롭지 못한

우유배달은 그나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삶의 우여곡절은 전혀 없었다는 듯 잠든 엄마는 자그마한 아기와 같다.  잠이 든 모습이

같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잠든 얼굴에 그렇게 다양한 표정이 있다는 것을 나는 엄마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낮 동안에 드러나지 않았던 무의식의 표정들이 수면위로 올라오는 것처럼,

잠든 엄마의 표정은 다채롭다. 엄마의 무의식의 바다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생물들이 존재하는 것인지 얼굴위로 잠깐씩 떠올랐다간 사라지곤 한다.  그럴 때면

나에게도 그런 표정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나의 잠든 모습을 한번 찍어서 관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생각일 뿐 잠든 내 모습을 내가 보게 된다는 건

지킬박사가 하이드를 보는 기분일 것만 같아서 기분이 나빠진다.  엄마의 얼굴에서

지금 내 나이였을 시절을 찾아본다.  그 시절 원피스를 입은 하늘하늘한 몸매의 엄마,

엄마의 잰 걸음에 손목이 잡혀 자꾸만 엄마를 울상으로 올려다보며 종종걸음 쳐야

했던 나, 엄마의 미소....  엄마의 미소에는 나의 것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내가 창구에서

고객들에게 지어야 했던 억지 미소와는 다른 무언가가.....


  새벽에 다시 잠들지 못한 탓인지, 벌써 세 잔째인 커피를 들이키고는 띵동! 하고

대기번호 버튼을 누른 채, 내 앞에 놓인 마이크에 대고 "197번 고객님~"을 호명한다.

창구 앞에는 무엇에 쫓기는 것인지 왔다 갔다 하며 연신 자신의 번호표와 창구를 번갈아보던

197번 대기 고객이 창구 앞에 다가오고 있다.  고객을 맞이하기 위한 얼굴 표정을 준비한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고객이 서둘러 일련의 서류와 인감, 인감도장이 든 노란 서류봉투를 내민다.  얼마나 들고

다녔는지 노란 서류봉투 모퉁이가 쭈글거리고 닳아 있다.

    "대출연장신청 하려구요."

  서류봉투 속에서 인감을 확인하고는 인감상의 주민번호를 키보드로 입력하자 화면에

고객의 대출정보가 조회된다.  내가 전산을 조회하는 동안 고객은 손톱의 거스라기만

초조하게 물어뜯고 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다는 듯이.... 

    전산에 표시된 고객의 대출금액은 오천만원으로 오늘이 대출만기일이다.  이미 세 번을

연장을 한 상태라 기존에 보증인으로 입보되어있던 보증인의 보증기간이 만료된 상태인 것이

확인된다.  화면을 조회하면서 고객의 얼굴을 언뜻 살핀다.  내 시선을 느낀 고객의

얼굴에는 대출이 연장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수시로 떠올랐다 사라지곤 한다.

  고객을 관찰하고 있음을 들키기 전에 나는 눈동자를 아래로 숙인 채 고객이 제출한 보증인

서류를 꺼내 인감증명서와, 신분증, 재산세 납세 증명서, 등기부등본을 차례로 점검한 후

최종적으로 보증인 신용정보를 위해 보증인의 주민번호를 화면에 입력한다.  대출팀에

오래 있어서인지 방문고객의 얼굴만 봐도,  그 고객의 상황이 보고용 슬라이드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곧 이어 머리에서는 대출 가능, 불가능 여부의 출력이 나오게 된다.  이번 고객도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증인이 담보 내용으로 제출한 아파트는 이미 설정 과다로

보증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의식하지 못한 채 미간이 찡그려진다.   그런 마음을 이내

고객이 내 얼굴 표정에서 읽어내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도, 얼굴 표정을 업무용 표정으로

다시 다잡고는 또박또박 말한다.

    "고객님! 현재 보증인으로는 대출연장이 불가능하십니다.   다른 보증인을 업무시간

중으로 구해 오십시요."

  고객의 표정은 판사 앞에서 선고문을 듣는 피의자와도 같다.  고객의 건조하고 푸석한

얼굴이 와락 구겨지는 듯 하다.   서류를 되돌려받은 채 돌아가는 고객의 뒷모습은 눈보라

치는 벌판을 속옷만 입고 걸어가는 사람처럼 추워보인다.

  그 추위가 얼마만큼 혹독한 것인지 아는 나지만, 내 얼굴이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거나

흔들리는 표정을 보이는 순간 고객은 일말의 기대를 갖게 된다. 10여년의 직장 생활은

이럴 때 최대한 한결같은 업무용 표정을 얼굴에 띄워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후배는 나에게 정말 야멸치고 사람이 독하다고 했지만 그게 대출고객들에게는

최선임을 내 경험에 비추어봐서도 나는 알 수 있다.  지금 내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저 고객

뒤에는 다른 몇 명의 고객들이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면서 번호표와 창구를 똑같이 번갈아가며

지켜보고 있다.  짜증과 불안이 뒤섞인 눈초리들... 대출을 이유로 은행을 방문한 고객들은

하나같이, 신탁이나 적금을 넣기 위해 오는 손님들이 의자에 앉아서 잡지책이나 기타 서적들을

뒤적이고 있는 것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  대충 은행을 들어서는 사람들의 표정만 보고도 저들이

오늘 어떤 업무로 은행을 왔는지 알 수 있다.  대출미상환으로 인해 은행을 오는 고객들에겐

은행의 여닫이문의 무게도 힘겨워 보인다.  절망해서 노란 봉투를 돌려받고 은행 문을 미는

그 고객의 손에 이는 경련을 나는 느낄 수 있다.  아마도 그의 머릿속은 앞으로 한달 안에

벌어질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관객이 없는 가운데 그와 가족들이 빚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잔혹극, 은행업무 마감 시간이 되면 그 고객의 대출건은 일주일동안 지점에

계류되었다가, 공증 서류가 채권추심팀으로 넘겨지고 법원에서 압류판결을 받아 고객이 유체동산

가압류 통보를 받기까지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띠리리~띠리리리~ "  전화벨이 한번 울었다.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고객이 계속해서 창구를 손톱으로

초조하게 타다닥, 타다닥 두드리며 빠른 업무처리를 재촉하고 있어 마음이 급하다.  하지만 벨이 두 번 이상

울리게 되면 평가에서 마이너스를 먹는다.

  숨 가쁘게 자판위에서 움직이던 손가락 중 왼손으로 수화기를 번쩍 들고는 고객응대교육에서 배웠던

대로 '솔'음 높이로 전화를 받는다.   '엄마다'  고객을 응대하기 위해 '솔'음까지 올라갔던 마음은

순식간에 한 옥타브 밑의 '솔'까지 내려간다. 

    "있잖아... 저녁때 안 바쁘면 엄마 수금 하나만 받아주면 안될까!"

이 시간 즈음이면 새벽 우유배달을 마치고 수금을 하거나 남광주 시장을 돌고 있을 엄마가 추운

속을 달래기 위해 떡볶이 좌판 한편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어묵 한 꼬치를 들고 한 입 베어

물고선 전화를 하고 있음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박 여사님, 그건 제가 다시 확인해서 점심 때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렇다. 직장 내에서 엄마는 ‘박여사’이다.  이 지점으로 발령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옆자리의 김대리는

아들아이가 아프다며 유치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바쁜 업무시간 중에 받았다가 지점장으로부터 호되게

질책을 받은 일이 있었다.  나는 더군다나 지점장에게 책을 잡혀서 좋을 일이 하나도 없었다. 

  조그마한 철공소에서 시작했던 아버지의 공장이 법인으로 사업자를 내던 날 발기인이 부족했기에

내가 공동대표가 되었는데 공장이 부도를 맞으면서 내 급여에도 압류가 들어왔다.  신용불량이나

채무관계로 사람을 평가하는 은행에서 차압을 당한 나는 문제직원으로 낙인찍혀서  나를 보는 

지점장의 눈길은 싸늘해졌고, 후배인 남직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업무를 슬쩍 내게 미뤘다.

  미간이 다시 찌뿌려진다.  엄마에게 몇 번이나 지점으로 업무 중에 전화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아이처럼 조급함을 참지 못한다.  오늘도 분명히 몇 달간 우유 값을 주지 않아 돈을 떼일 것

같은 불안감이 나에게 전화를 하게 했을 것이다.  그 동안 우유 값을 받기 위해 ‘박여사’가 했을 노력

들이 훤히 보인다.  장부를 들고 핸드폰 숫자 버튼을 신중하게 하나, 하나, 꾹~꾹 누르면서

     “ 네...우유 아줌만데요.  우유 값을 안 주셔서 수금 가려고 하는데요.

       몇 시경에 가면 될까요?” 

  조심스럽고 작은 말투로 돈을 달라고 하는 엄마, 돈 받는 일이 너무나 어려운 일인 엄마에게 여러 번

전화를 하고 찾아가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요즘 들어선 왜 그리도 떼어먹고 배째라는 식의

사람들이 많은 건지.... 어지간한 금액이면 ‘오죽하면 우유 값을 다 떼어먹을까’ 하며 포기하는 분이

내게 전화를 한 정도면 상당한 강적이거나, 금액이 큰 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친바람이 휩쓸고 같은 오전업무 전표를 정리하고 내 자리 앞의 창구 위에 '옆 창구를 이용하세요'

팻말을 올려놓은 후 점심을 10분만에 먹고 다시 다용도실로 들어왔다.  오후 업무를 위해 습관적으로

화사해보이는 색상의 립스틱을 바르다말고 나는 거울 속을 응시한다.  '내가 저런 색상의 립스틱을

좋아했었나?'  지점장이 아침에 직원들을 도열해놓고 고객에게 밝고 환한 미소로 응대해야 한다고

꽤 오랜시간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밝고 환한 미소를 위한 화사한 립스틱, 갑자기 반쯤 그린

립스틱을 마구 지워 뭉개고 싶어진다.  그렇게 붉게 얼룩덜룩이 된 얼굴로 울고도 싶다.  그럼 그

우는 얼굴을 진짜 내 얼굴이겠지......

  문득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며 전화를 해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치며

단축번호 0번을 길게 누른다.  

     " 나야.." 엄마가 무슨말인가를 하려고 하는 도중에 난 계속 말을 한다.

     " 이따 7시까지 기독병원 앞으로 갈테니까 거기로 나와...그리고 제발 업무시간에 전화하지 마"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앰블런스가 병원 응급실을 향해 올라간다.  난 문득 저 구급차안에 있는

가족들은 또 어떤 사연들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겨울해는 벌써 깜깜하게 지고 달빛은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는 시간, 병원을 오가는 우울한 표정들 틈에 노란 백열등 불빛 아래 붕어빵을 굽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가 보인다.  저녁 대신 붕어빵을 먹으며 엄마의 악성고객에 대한

애기를 듣는다.  역시 예상대로이다.  이 강적은 우유를 작은 것도 아닌 제일 큰 용량의 그것도

가격도 꽤 아인슈타인 1000ml를 시켜 먹고선 두 달 동안 우유 값을 배째라로 일관한 것이다. 

  기독병원에서 사직공원쪽으로 나 있는 골목길에 붙은 허름한 한옥 문간방에 산다는 악성고객의

집앞, 방금전까지도 인기척이 있던 집 안에선 쥐죽은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바로 초인종을

누른 직후부터... 주인집이 문을 열어줘서 들어간 셋방 문에 노크를 해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셋방 한편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섞어서 버린 쓰레기봉투

밑으로 걸쭉하고 시커먼 액체가 고여 있었고, 주방 앞에는 잡종 개 한 마리가 목줄에 묶인 채 무언가를

열심히 뜯어 먹고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이런 식으로 계속 사람 김을 빼면서 포기하게

만들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주인집에 물어봤더니 주인도 셋방 사람이 언제 들고 나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저 개 임자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셋방집 개라고 말한다. 

    “아줌마,  안에 있다는거 다 아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나와요.” 

그래도 셋방은 여전히 묵묵부답이고 엄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집에 가자고 내 팔을 끌어 당겼다. 

    “사람이 좋은 말로 해서 말을 안 듣는데, 우유 값이 칠만오천삼백팔십원이니까 이 개라도 데려가서

     팔아야겠네... 어차피 똥개라 보신탕집에 팔면 십오만원은 받을 것 같은데 누가 손핸지 어디 해 봅시다.” 

그나마 잡종 개가 좀 맹하게 생긴 것이 낯선 사람이 와도 짖지도 않는 것이 목줄 풀려고 다가간다고

해서 나를 물 것 같진 않았다.  그저 다가오는 나를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볼 뿐 , 내가 목줄을 분주히

풀 때쯤 셋방 문이 열렸다.  스물 대 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아니, 안에 있으면서 사람을 골탕 먹이네.. 사람을 뭘로 보고.....?”

나는 한껏 화난 표정을 지어보이며 분주히 싸울 준비를 했다.  착한 엄마와 살면서 나는 나쁘고 독한,

앉은 자리에서 풀도 안날~등등의 인물로 불리게 되어 어지간한 싸움에선 져 본적이 없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아니 누가 떼어 먹는다고 했어요.  준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우유값 몇 푼 가지고 너무하네.

      그리고 이거 가택 침입에 도둑질 아네요?  나 경찰 부를 거에요.” 

     “경찰 불러요.  못하기만 봐?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봅시다.  무전취식이 무서운지,

      가택침입이 무서운지.  경찰 신고해요.  나는 개 끌고 갈테니까.  그리고 개에다가 이름 써놨어요?

     갔다 팔아도 아줌마 개라는 걸 누가 증명해요?  나 성질대로  매일 와서 우유값 띄어먹은 집이라고

     동네 방네 확성기 틀거니까 두고 봅시다.” 

말로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방 안에 들어가던 셋 방 여자는 돈을 가지고 나온다.  돈을 받아서

‘박여사’에게 주고선

     “아줌마, 다음부터 우리 엄마 돈 떼어먹었다간 더런 꼴 볼줄 알아요.” 

분한 듯 얼굴이 빨개져서 방으로 잽싸게 사라지는 셋 방 여자의 발뒤꿈치가 까맸다. 

   

  오랜만에 엄마의 오토바이 화물칸에 탔다.  작년 여름에 수금할 때는 엄마랑 쭈쭈바를 먹으면서

왔었는데, 작년 겨울 삼발이로 개조한 오토바이 화물칸은 퍽이나 안정적이다.  자동차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보호헬멧도 쓰지 않은 채 도로 위를 달리는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저 멀리 앞에 경찰 오토바이가 보인다.  황급히 ‘박여사’에게 딱지 끊기니까 도망가자고 했더니

뒤를 돌아보며 윙크를 해 보이는 ‘박여사’, 지난번에 비싼 불가리스로 상납을 해서 괜찮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 오토바이를 지나쳐가는 우리를 경찰은 못 본 채 한다.  상납을 다 알다니

우리 ‘박여사’가 제법 세상살이를 익혔다는 생각에 대견하기까지 하다.  ‘상납’ 은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아픈 단어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H자동차에서 생산되는 중형 자동차의 의자부품인

철제 프레임을 제작하던 '성실공업’의 대표가 우리 아버지였다.  직원 10명 남짓 되는 조그마한

공장이었지만 아버지는 직원들과 따뜻한 인간애를 나누며, 많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생활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원하청인 H자동차의 납품이 끊어지면서 공장은 납품처를 찾지 못하고

도산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타 업체에서 납품 담당자에게 납품 대금의 일정

부분을 리베이트로 상납하기로 해서 납품업체가 바뀌게 되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납품이 끊긴 후 5개월여의 시간동안 아버지는 새로운 납품처를 뚫기 위해 무던히도 발품을

팔았지만, 재고만 쌓여갈 뿐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기존 대출은 만기되고, 체불임금이

누적되면서 5년 전 12월 당좌수표 칠천만원을 막지 못하고 공장은 경매 조치를 밟게 되고, 아버지는

당좌수표 부도로 경제사범으로 감옥에 가게 되었다. 

  12월 24일 밤 나는 이상한 예감으로 잠을 룰 수가 없었다.  이상스럽게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면서 오한이 드는 것이었다.  새벽 1시가 되어 전화벨이 울렸다.  불행을 예고하는 듯한

화벨 소리에 심장이 철렁 하고 바닥으로 어지며, 귀 속을 소름끼치게 찌르고,  머리에 냉수를 통째

들이 붓는 것만 같았다. 

     “하남경찰섭니다.  진일성씨 댁이 맞습니까?”  난 냉정을 되찾으려 애를 썼지만 목소리를 떨려

      나왔다.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오늘 오후 9시경 성실실업에서 진일성씨가 목을 맨 체 발견이 돼서 현재 하남성심병원에 있습니다.

     가족분이 빨리 오셔서 신원확인을 해주셔야 사건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고개를 돌려 옆 자리에서 잠들어 있는 엄마를 보았다.  하지만 엄마를

깨우지 않은 채 벌벌 떨면서 옷을 대충 꿰어 입고 택시를 타고서 병원으로 갔다.  새벽녘 영안실은

형광등 불빛조차 파르스름하게 차가운 입김을 내뿜는 것 같았다.  그 냉기는 죽은 이의 영혼까지

얼려버려 승천하지 못하고 이승에 묶어둘 것만 같았다.  경찰의 입회하에 냉동고에서 하얀 시트에

덮인 채 나온 물체에 나는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저 시트를 들추는 순간 아버지는 영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것만 같아서, 보지도 않고 아니라고 저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라며 몸부림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떨리는 손가락은 냉정하게도 내 의지와는 다르게 시트자락을 들춰냈다. 

순간 숨이 멈출 것 같으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지는 것 같았다.  목에 시커먼 줄 자욱이 난 채

눈방울이 튀어 나온 파랗게 질린 얼굴은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꿈에서 깨려는 듯 고개를 돌려서 본

벽면시계 속 시간은 새벽 2시였다.  그렇게 굳어버린 내 옆으로 온 경찰은 안쓰럽다는 표정을 띤 채,

A4 한 장을 주었다.  생전가야 편지 한번을 쓰지 않던 분이 마지막 가는 길이라고 유서를 남긴 것이다.

역시 아버지답게 짧았다.  ‘엄마를 부탁한다.  아파트 한채 작은 아버지 앞으로 돌려놓았다.’  공돌이로

시작해서 조그만 납품공장 사장이 되었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옆에서 화초 같기만 했던 엄마.

그렇게 어여쁘게 가꾸던 화초를 엄청난 빚과 함께 나에게 유산으로 남기신 것이다.  그나마

살아생전 편법이나 불법이라고는 모르던 분이 엄마를 위해선 아파트 한채를 숨겨 놓았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생전을 착하게 사셨던 분이 엄마를 위해 단 한번 편법을 썼다는 것이, 직원들 월급도

못주면서 그 아파트를 엄마에게 남기기 위해 홀로 감당했을 양심의 가책과 홀로 외롭게 갔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게 넘기고 간 원망에 사무쳐

난 울지도 않았다.


  ‘박여사’가 오토바이를 멈춘다.  꽃 가게 앞이다.  “받고 나면 길어봤자 삼일 예쁘고, 추하게 지는

것이 꽃인데 아버진 맨날 꽃 이유!” 하며 입을 삐죽이던 나에게 눈을 흘기며 엄마에게 꽃을 안기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엄마도 그 생각을 하는 것일까? ’  아닌 것 같다.  엄마는 그저 꽃이 흐뭇하게

예쁜지 볼이 발그레 미소만 지을 뿐, 그 속에 다른 감정은 섞지 않는 듯하다.  아무래도 난 엄마의

미소를 질투한 것만 같다.  내가 생과 타협하며 마구 구겨지고 때를 타고 있을 때, 항상 밝은 마음과

착한 미소로 맘속의 구김을 다리고 있는 엄마에게 나는 여자로서 질투를 느낀 것이다.  아버지에게

엄마는 ‘여자’였나 보다.  그래서 아버진 ‘여자’인 엄마를 그 모습 그대로 지켜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보금자리를 팔아 빚의 일부를 갚지 못하고 빚에 얽매어

그 무게를 온전히 감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 여러 개의 표정의 가면을

상황에 맞춰 번갈아 쓰고 있을 때, 엄마는 투명한 맨 얼굴로 세상을 비추는 것 같아서, 나는 표리부동한

나의 얼굴이 엄마에게 비추는 것이 너무 싫었던 것 일까!  요즘은 엄마에서 ‘박여사’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는 엄마지만 새벽에 잠에서 깨어 엄마를 볼 때 ‘박여사’가 아닌 다채로운 표정의 박물관을

비추는 엄마를 볼 수 있길, 그리고 그 얼굴에 비춰 나도 가면을 벗고 진정한 내 얼굴을 찾는 날이

오기를 나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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