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신경숙>

엄마! 사랑해^^

묭롶 2008. 11. 18. 14:36

 

 

 

 

   지난주 일요일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하신 엄마의 권사 임직식이

있었다.  3시간여의 지루한(비신도의 입장에서)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그때,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깜깜한 밤 일차선 일방도로에서 비쩍 말라서 얼굴에 버짐은 허옇고 머리는

자주 못감아 떡이 진 아이가 밤예배를 가신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그 아이는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머릿속으로 온갖가지 생각들이 스치운다.

행여 사남매와 고약한 할머니를 버리고 도망간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아이의

얼굴을 굳어져만 간다.  엄마~엄마! 제발 돌아오기만 해....내가 더 잘할게....

아이의 간절한 기도는 입 안에서 침이 마르도록 계속된다. 

  매번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찬송을 부르며 포장도 안된 길을 덜커덩 덜커덩

오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그동안의 긴장이 풀리고 눈물이 비죽이 나오면 아이는 '왜 나와서

기다리냐'는 엄마의 말에 잘하겠다는 결심 대신 심통이 잔뜩 난 입을 삐죽이곤 했다.

 

  그렇게 가난한 사남매의 엄마는 쉰여덟이 되었다.  난 내 기억에 가장 아름다웠던 엄마의 나이였던

서른세살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삶에 치이며 여자임을 잊고 살 동안에도 엄마는

단 한번도 여자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엄마도 여자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엄마이기보다는 여자인 당신에게 나와 동생들은 '박여사'라는 호칭으로 오래전부터 불러왔다.

  그녀가 여자임을 처음 깨닫게 된 순간은 언제였던가?  아마 엄마 입에서 '무스탕'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돈을 벌기도 전이었는데 네남매의 가장이었던 엄마는 언제부터 '무스탕'이

갖고 싶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튼 박여사는 무거워서 입지도 못할 무스탕 옷값을 상당히

오랫동안 분할해서 입금했던 것 같다. 

 

  임직패를 받기 위해 단상에 선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을 찍거나 긴장할 때마다 짓는 얼굴

표정으로 화사한 한복을 입고 서 있는 엄마, 단상에서 내려오자마자 예의 그 수줍은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저 표정 어디에 그렇게도 강한 '엄마'가 숨어있던 것일까?  내가 삼십이 넘고서야 삼십대

후반에 과부가 되어 외로웠을 엄마를 생각하며 한번씩 심심하면 "어떻게 참았는가?" 하고 물으면

"뭣을야?"하고 내가 또 "왜 그 아저씨랑 재혼안했어?" 물으면 "느그들 가족관계 복잡해질까봐

안했다..."라며 또 그 수줍은 웃음을 보인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한 아저씨가 있었다.  상처를 했는지 이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머리를 길게 길러서 하나로 질끈 묶고 술을 좋아하던 그 아저씨는 건축일을 했었다.  주로 모텔신축

현장에서 일을 많이 했는데, 내 나이 24살 되던 해에 무너져가던 18평 친정집을 인부2명과 함께

재건축해준 사람도 그 아저씨였다.  이제 집도 10년이 다 되어 물도 새고 여러 군데 고장난 곳이

생길때마다... "엄마!  그 아저씨 불러..."하면 "지나가다 한 번 마주치고 한 번도 못봤다...아직도

머리는 길더라..."라며 말끝을 흐린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어서일까?  이렇게 내가 알고 있던 엄마가 엄마의 얼마만큼이나 알고

있는건지 자신이 없어진다.  방을 함께 쓰고 함께 무협지와 만화책을 읽고, 영화를 보던 엄마는

이제 작은 글씨는 머리가 아파서 잘 읽지 못하고 영화도 자막을 읽기 힘들어해서 한국영화만

본지도 오래되었다.  길면 100년은 사는 인생인데.. 20대 후반에 시작된 노화로 이제는 늙어가는

내 엄마의 사그라듬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도 "울 엄마는 어째 이렇게 이쁠까?" 하면

"느그 어멘께 이쁘지야!" 하고는 금방 "그래도 내가 딴 사람보다는 좀 이쁘제!"하며 배시시 웃는

엄마.  작년에 외할머니를 잃고 상심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삶에서 엄마가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모쪼록 엄마...자주 다투기는 해도 우리 오래오래 함께 살어.. 엄마는 그래도 딸이 세명이나

있으니 믿는 구석 있잖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