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여성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어야 한다.

묭롶 2018. 12. 30. 17:57

  a형독감에 걸린 일주일 동안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읽었다.  두 책이 <디스토피아>를

대표하는 책이라는 사실은 책을 일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신체 상황이

디스토피아인 상황에서 디스토피아를 다룬 책들을 읽었으니 참 재밌는

우연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은 『눈 먼 암살자』와 『그레이스』에 이어 세 번째

읽는데 세 작품 모두 작중 인물들이 기록을 남긴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눈 먼 암살자』는 작중인물 아이리스가 적는 회고록에 대한 액자소설이고

『그레이스』에서는 정신과 의사인 사이먼이 기록한 그레이스와의 면담에 관한

기록이 소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 『시녀 이야기』는 작중인물인

오브프레드가 남긴 녹음테이프가 소설의 내용이 된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다른 작품들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작중인물이 전하는 '이야기'라는 특징을

통해 나는 마거릿 애트우드가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전달자'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짐작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녀가 자신의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


  내가 읽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은 모두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전체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여성이라는 카메라 파인더(소설)를 통해 보여지는 전경이 그녀의 소설이 되는 것이다.  작중인물 오브프레드라는 여성을

통해 비춰지는 세상의 배경은 길리어드라는 조직에 의해 지배되는 전체주의 국가다.  길리어드 지배 하에서 가임기의

여성은 강제적으로 차출되어 교육을 받고 자식이 없는 길리어드 수뇌부의 대리모로 파견되어진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인류는 더이상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판단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시녀 이야기』에서 '시녀'들은

아이를 출산하는 도구로서의 역할 이외의 모든 역할을 박탈당했다.  마치 몸은 마취됐지만 의식은 살아 있어서 자신의

해부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지옥도처럼 '시녀'들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지만 그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전체주의의 잘못된 신념이 어떤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브프레드'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그 누구도 길리어드 수뇌부인 사령관조차도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여성이 행복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거릿

애트우드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을까? 


「  하지만 어쩌면 권태는 에로틱한 건지도 모른다.

남자들을 위해 여자들이 권태로워한다면.  」p124


  나는 솔직히 이 책을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내가 같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이 책의 내용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치부해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 아니 지금 이 나라의 역사를 놓고 보더라도

여성이 주체성을 획득한 것은 불과 백년도 채 되지 않았다.  남성들이 긴 역사를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학습하고 후대로

그 축적된 자료를 전달해오는 동안 여성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책처럼 『자기만의 방』조차 갖지 못했다. 


「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루크가 말했다.

'그 녀석'이라고 하지 않고 '그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죽일 작정이라는 걸 알아챘다.

~전에는 없던 '그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머릿속으로 '그것'을 일단 만들어 낸 다음에, 그게 현실이 되게 하는 거지.

그렇게 해서 그들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나는 생각했다.  」 p334


「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소.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오. 

~더 좋은 세상이라 해서, 모두에게 더 좋으란 법은 없소.

언제나 사정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조금 있게 마련이지.  」p366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배우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해서 남성팬들이 댓글로 비난을 하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이다.  호주제가 폐지되기까지 지난했던 과정과 낙태를 합법화하자는 요구에 대해 생명

경시 내지는 모성에 대한 포기를 운운하는 여론 등 『시녀 이야기』속 '시녀'들처럼 빨강색 옷만 안 입혔을 뿐 아직까지도

여성은 '주체'가 아닌 '대상'일 뿐이다.  여성의 위치가 '대상'에 머무른다면 그 언제든 여성은 '그것'(오믈렛)을 위한 합법적

 '도구'('달걀)로 전락할 수 있다.  내가 '모두'를 위해 언제든 '달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마거릿 애트우드가 이 책을

통해 내게 전하는 진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