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제임스 조이스만의 방식.

묭롶 2017. 2. 18. 12:50


  『더블린 사람들』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초기단편 15편이 실려있다.  이 책은 문체가

천박하다는 이유로 출판을 거부당했을 정도로 더블린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실제적으로 그려낸다.  어떤 부분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불편할 정도인데, 대부분의

작품이 삶을 표현할때 어느 정도의 필터를 적용하는 반면 이 단편들은 일체의 미사여구를

거부한 날 것의 문체를 보여준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중「대응」에 등장하는 사내는『더블린 사람들』을 통해 제임스

조이스가 그려내고자 하는 정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대응」에서 패링턴이라는

사내는 서류를 필사하는 월급장이로 상사의 업무지시를 고까워하고 자신의 일을 미룬채,

틈만 나면 한잔할 생각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이 작품에선 총 세번의 '대결'과정이 나온다. 

1. 직장에서 사장과 사내의 대결, 2. 술집에서 웨더스와의 팔씨름 대결, 3. 집에서 아들 톰과의 대결.

이 단편은 패링턴이라는 사내의 의식의 변화를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나중에 나올

『율리시스』를 예고한다.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각각의 대결을 인식하는 패링턴의 태도이다.  첫번째 대결인 직장 상사와의

대결에서 패링턴은 자신이 약자임을 인식하며 어쩔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한 비굴함을 인지한다.  두번째 대결에서 패링턴은

자신이 웨더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예상과 다른 패배로 인해 첫번째의 비굴함에 울분이 더해진다. 

세번째 대결에서 그는 자신이 절대우위에 있음이 확실한 아들 톰에게 화풀이로 매질을 해댄다. 


  ① 「알린 사장에게 무례한 짓을 저지른 데 대해 도리 없이 비참하게 사과하기는 했으나,

         이제부터 사무실이 얼마나 바늘방석 같은 곳이 될 것 인지 뻔했다.

         ~사내는 포악함과 갈증과 복수심을 느꼈고 자신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화가 났다.」p123 <대응>


  ② 「풋내기 총각에게 두 차례나 졌으니 장사 소리도 못 듣게 생겼다.  가슴에 울화가 치밀었고,

         옆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죄송합니다."하고 말하던 큰 모자 쓴 여자를 생각하니

         울화가 터져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p130 <대응>


  ③  「"저 불에 말이냐?  너, 불을 꺼뜨렸겠다!  옳지, 다시는 그렇게 못 핟도록 본 때를 보여 주마!"

          ~"자, 어디 또 한 번만 불을 꺼뜨려 봐라!" 사내는 지팡이로 아이를 사정없이 후려치며 말했다.」p132 <대응>


  이 세 대결의 양상은 흡사 아일랜드에 대해 제임스 조이스가 갖는 양가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첫번째 직장 상사와 패링턴의

관계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로 치환해 볼 수 있겠다.  두번째 대결인 웨더스와의 팔씨름은 아일랜드 민족주의파와 친영파를

세번째 대결은 이러한 아일랜드의 정세로 인한 더블린 사람들의 양가감정의 폭발을 상징한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각각 다른 인물, 다른 소재, 다른 이야기를 다루지만 실상 전부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단편들은

모두 영국의 지배에 놓인 아일랜드 더블린을 살아가는 대중들의 정서라는 큰 액자 속에 담긴 그림의 일부분들이다..

그럼 이 단편모음들을 통해 제임스 조이스가 그리고자 했던 큰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더블린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활동 배경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그에겐 중요한 곳이었다.  실상 그는 생의 대부분을

아일랜드가 아닌 유럽에서 거주했지만 더블린은 언제나 그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었다.  작품이 발표될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는 아일랜드는 자신들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지키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우는 민족주의 진영과 영국을 등에 업은

친영파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또 한편으로는 지배층을 차지하는 친영파에 속해서 그들의 부와 권력에 편승하고 싶은 욕망과

그들에 대한 환멸이 동시에 들끓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응축된 부조리한 감정의 표출이『더블린 사람들』이 보여주는

정서이다.


  어쩌면 제임스 조이스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여러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건 '더블린 사람들'과 같은 혼란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 찾기 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나마 그의 작품 중 쉽게 읽힌다는 이번 작품마저도

단 한편의 단편 「대응」을 들어 나머지 단편들을 해석해야 할 정도로 쉽지 않았다.  제임스 조이스 작품의 난독은 결국

작품이 갖는 다의성과 연결성에 원인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읽어낼 만한 안목을 기르는 건 역시 내겐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지만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