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사실 영화 <아저씨>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전직군특수부대 요원이었던 차태식(원빈)은 비밀 작전 수행중에 적의 공격을 받아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잃고 자신은 총격을 당한 뒤, 혼자 전당포를 운영하며 은둔 생활을 한다. 그런 그에게 마약을 하는 엄마 밑에서 방치된 채 살아온 소미라는 여자아이가 찾아와서 말을 건낸다. 이미 마음에 상처를 입어 내일을 살아갈 힘이 없는 태식은 소미를 멀리하려하지만, 그럴수록 소미는 '아저씨는 세상에서 단 한명뿐인 내편이라고' 말하며 태식을 따라다닌다. 어느날 마약 밀반입 루트를 입수한 소미 엄마가 마약샘플을 탈취하자 이를 추적하던 장기밀매 조직에 의해 소미와 엄마는 납치를 당하게 되고 태식은 소미를 찾아 그 일당의 뒤를 쫓게 된다는 내용이다.
< 원빈! 미남을 버리고 배우가 되다.>
[가을동화]
[우리형]
[태극기 휘날리며]
[마더]
내 기억으로 그를 브라운관에서 처음 본 것은 <가을동화>때였던 것 같다. 잘 생긴 그가 송혜교에게 하는 대사들은 온갖 매체를 통해 패러디되고 회자됐을 정도로 큰 화재를 불러 일으켰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장면은 송혜교를 벽에 밀어붙이고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라고 하던 장면이다. 그 당시 그에 대한 평은 반항적이고 거칠지만 상처받기 쉬운 여린 마음을 가진 보호해주고 싶은 미남배우라는 것이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그는 <우리형>에서 활발하고 운동 잘하는 동생역할을,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공부밖에 모르는 학생이지만 강제로 징용당한 전쟁의 참상에 고통받는 역할을, <마더>에서는 지적장애를 가진 김혜자의 아들로 출연했다. 하지만,내 눈에는 그가 어떤 역할을 맡든지간에 맡은 배역이 아닌 그 잘생긴 얼굴이 먼저 보였다. 살인혐의를 받고 감옥에 갖힌 지적장애우를 연기하든, 전쟁으로 적군이 되어 나타난 형을 붙잡고 흙과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오열을 하든, 반항적 이미지의 학생역할을 하든 그를 보면 드는 생각은 언제나 일관되게 '아~! 참, 잘 생겼다.'였다.
장동건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외모가 배우로서 가장 큰 컴플렉스라고 밝혔던 바 있다. 그는 미남배우라는 수식어를 떼내기 위해 <해안선>에서 뻘밭을 구르며 몸을 혹사시키고, <무극>에서는 네발로 기어다니고,
<태풍>에서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핏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의 독기를 발산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원빈이 '아저씨'역할로 출연한다고는 했지만, 동거인의 액션취향에 부합한다고 생각했을 뿐 그의 연기에 대한 기대감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영화의 초반부, 정말 떡진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르고 그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장면을 보며 정말 삶을 포기한 채 극도의 인내와 안간힘으로 겨우 하루를 견디며 사는 차태식의 캐릭터와 동화된 그의 모습에서 잘 생긴 원빈이 아닌 그냥 차태식으로 설득력있게 다가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미를 되찾기 위해 눈을 뒤덮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에서도 난 그의 멋진 몸매보다도 그 캐릭터를 소화해내기 위해 그가 견뎌내야만 했던 시간과 노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와 동시에 그가 캐릭터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세심한 부분의 디테일까지 고심하며 애쓴 고군분투 끝에 차태식의 몸과 차태식의 눈빛을 갖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명민좌의 연기에 언제나 감탄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부분이 바로 캐릭터를 100% 싱크로에 가깝게 만드는 캐릭터에 대한 연구와 세심한 디테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캐릭터를 말 없이 표현하는 그 눈빛에 있다. 대사가 없는 순간에도 눈빛으로 캐릭터의 전부를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가 바로 명민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눈빛을 영화 <아저씨>의 차태식에게서 보았다. 이는 배우로서 개인인 원빈에게도 기쁜 일이지만,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도 환영할 일이다. 한 배우의 다음 배역이 궁금해지고, 그렇게 기다려지는 배우가 많아질수록 영화산업이 풍부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아저씨>는 단순한 액션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크게 꼽는다면, 첫째는 배우로서의 원빈의 재발견이고, 두번째는 실전특공무술로 실연되는 호쾌(취향에 따라 잔인하게 느껴질수도)한 액션이며, 세번째는 가슴을 울리는 휴머니티일 것이다.
갈수록 세상은 각박해져만 가고 인간애라는 말은 커녕 가족간에도 소통하지 못하고 반목하며 멀어지는 일이 다반사인게 요즘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들을 개별화되고 고립된 채,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속이며 이겨서 잘 살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그나마 세상을 잘 산다고 평가받는 지금, 과연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어찌보면 나는 가장 없는 가운데서도 자신의 온기(마음)를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킬러의 상처난 이마에 밴드를 붙여주고, 감옥이 어울린다고 말한 옆집 아저씨의 손톱에 네일아트를 해주는) 소미보다도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우리가 현재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 하다. 소중한 것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 소중한 무언가가 되어 줄 수 있는 힘도 결국은 모두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레옹 아저씨와 차태식 아저씨, 마틸다와 소미>
이 영화를 보며 <레옹>이 떠올랐다. 고독한 킬러와 학대받는 소녀, 소녀를 위해 대신 복수를 하면서 레옹은 마틸다가 자신의 차가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것을 자각하게 된다. 결코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틸다를 향해 그는 뭔가를 애써 말하지 않지만(말로 잘 하지 못 하지만), 마틸다는 그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삶의 고통은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가고 또 포기하게 만들지만, 그런 고통을 옆에서 이해해줄 누군가가(내편) 있음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다시 내일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어쩌면 <아저씨>에서 차태식은 소녀와 함께 밥을 먹었던 그 순간부터 자신은 몰랐지만, 이미 위로받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레옹을 잃었지만 화초를 땅에 뭍으며 다시 자신의 길을 가는 마틸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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