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3명의 동생이 있다. 그중 딸로는 셋째딸인 둘째 여동생은 예뻤던 얼굴만큼이나 화려한 젊음을 보낸 결과 21살에 아기엄마가 되서 지금 큰조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엄마는 동생들이 많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씀하셨지만, 없는 집 장녀로 크다보니 동생들은 속만 썩이는 골치덩어리들이었다.
일찍 결혼을 해서일까? 서른이 되면서 동생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차도 갖고 싶고 명품 가방도 갖고 싶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욕을 한 바가지 해줬더니, 자기 편은 안들어주고 제부편만 들어준다고 언니도 아니란다.
순간 엄마한테 "나, 왜 낳았어?, 이렇게 고생만 죽사게 시킬려고 낳았어?"라며 빠락빠락 악을 질러댔던게 생각났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이런것이구나, 싶은 마음에 그뒤로 두달여를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동생은 중간에 사과문자를 보내고 했지만, 마음은 돌덩어리처럼 굳어서 풀릴 줄을 몰랐다.
지난주 금요일 운동을 가려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오늘도 운동가니?"
나 : "응, 왜?"
엄마: ".............. 이서방이 사고가 났는데, 아직 어떻게 된 경황인지 모른다고 한디. 으짜믄 좋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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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전화를 받고 난 부랴부랴 첫째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제부는 강진에서 사고가 났는데, 지금 강진에서 수속밟아서 수술을 해야한다고 광주로 올라오고 있는 길이라 아무것도 확인이 안된 상태라고 했다.
아직 강진에 있다니 병원으로 찾아가 볼 수도 없고 속만 다들다글 끓였다.
밤 11시가 되서야, 병원에 간 둘째동생 대신 조카들을 보러 동생집에 간 첫째동생이 전화를 해서 중앙선이 없는 이차선도로에서 초보가 운전미숙으로 들이받았다고 전해주었다. 갈빗대가 3대나 부러지고 광대뼈에 금이가고 무릎이 많이 다쳤는데, 자세한 경과는 MRI검사 후에 소견이 나온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엄마를 모시고 제부가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는 연신 차 안에서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난 일부러 태연하게 "제부가 말도 하고 그런것이 갈비가 부러지면서 폐나 다른데 쑤신건 아닌갑구만, 글믄 됐제"라며 걱정마시라고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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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두달만에 보는 둘째여동생은 의외로 담담했다. 속창아리 없는 것이 엄마 보자마자 울고불고하면 어매가 속상하실까봐 걱정했는데 의외였다. 제부는 그나마 생각했던 것보다는 나았지만, 적어도 두달은 누워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나 : "제부, 생각보다 괜찮네요. ㅎㅎㅎ 앞에서 확 튀어나오면 옆으로 확 피해불지
그랬어요?"
제부: "(진통제 맞으면서도 웃는다, 강철체력이다) ㅎㅎㅎ 옆에 동료가 있어서 옆으로 피해서 전복되면 같이 죽겠다 싶어서 핸들 안꺽고 바로 받혀불었죠"
의사얘기로는 제부가 키가 커서 갈빗대가 나갔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핸들에 머리를 찧어서 잘못 됐을수도 있었단다. 제부의 어깨에서부터 가슴까지 안전벨트에 쓸린 피멍이 붕대사이로 보였다.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인 나와 동갑인 제부는 그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처자식 생각에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충격파를 두 어깨로 핸들을 부여잡고 얼마나 세게 버텼는지 다른 사람같았으면 핸들이 갈비를 부수고 내장으로 파고 들었을 사고에도 제부는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브레이크를 밟고 얼마나 버텼는지 오른쪽 무릎이 뼈가 드러날 정도로 상해서 자세한 경과는 월요일에야 나온다고 했다.
서운한 앙금에 병원에서도 제부랑만 말하고 둘째여동생하곤 눈도 안 마주쳤는데, 집에 돌아와서 밤 11시가 다 되어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을까말까하면서 한참 있다 받았는데, 동생이 울먹이고 있었다.
동생: "언니, 내가 지은죄가 많나봐"
나 : "(상큼한 욕 XXX), 미친... 지은 죄가 많긴? 야! 죄가 많으면 그 정도만 다쳤겄냐?, 다른 사람이면 죽었어 이것아"
동생: "집에와서 운동화를 빠는데, 피를 얼마나 흘렸는가. 피냄시가 검나 나서......
내가 속이 없었어. 차 사달라고 하고,,,, 바디로션도 자기는 허접한거 쓰면서,
내 꺼는 나 쓰라고 자긴 바르지도 않는데......"
나 : "미친.. 으째 그렇게 속아지가 읎냐.. 이제라도 잘해주믄 되지야."
벌써 결혼생활 11년차, 결혼으로만 따지면 나보다 오래 산 동생, 처음 결혼을 하겠다고 엄마 좀 설득해달라고 날 찾아왔을때 고집 쎈 성질을 드러내는 듯한 곱슬머리와 검게 탄 얼굴 듬직한 체구의 제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렵게 차린 식육점을 구제역으로 잃고 막노동을 하다 간염으로 1년을 투병하고 둘째조카까지 태내간염으로 삼년여를 투병하며 일년에 한번씩 사글세로 이사를 해야했던 둘째 동생이 못내 가슴아파서, 제부가 미웠던 적도 많았다.
그래도 그렇게 다투고 성질내고 둘이 할퀴면서도 어려울때면 서로 생각해주고 가슴 아파하는 걸 보니, 천상인연이란 생각도 들어 맘이 놓였다. 엄마랑 둘이서 있을때 "엄마. 나 같으면 고깃집 망했을때 벌써 도망가불었어.
사글세로 6~7번 이사하면서도 둘이 좋다고 난린거 보믄. 인연인게벼"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도 돈이 없어서 쩔쩔매고 이리 메꾸고 저리 메꾸고 힘들게 사는 둘째 동생이지만 부부가 돈이 전부가 아님을 어린 동생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맨날 속아지 없다고 혼은 냈지만, 그런면은 동생이 나보다 훨씬 어른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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