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무라카미 하루키>

"호우호우." 리듬을 맞추는 리틀 피플이 말했다.

묭롶 2009. 12. 3. 22:14

인류가 문명화되기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던 것은 무었이었을까?

모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평소 심심찮게 몽상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해봤음직한 질문일 것이다. 아마도 내 짐작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지구에서 생명이 태동되기까지 어떠한 초월적인 에너지의 작용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러한 생명작용에는 분명한 의지가 개입했을 거란 짐작도 함께 해 본다.

지구에 원초적인 무의식만이 존재했다면, 과연 지구상에 생명체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었을까? 종교에서는 그 초월적인 힘의 존재를 신이라고 규정지었고, 과학계에서는 우연에 의한 생명현상의 진화물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과학계에서는 그러한 생명현상의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진화론에 절대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생명체의 탄생에 있어 물리적인 부분만 설명되었을 뿐, 다른 영장류와 인간을 구분짓는 가장 절대적인 정신면에서는 이렇다할 연구가 미진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설명할 수 없으며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정신적인 면에 대해 그나마 진전이 있었다면

G. 프로이드와 C.G.융에 의한 정신분석을 통한 무의식과 인간의 본성연구를 들 수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을 쓰기 전부터 오랫동안 인류의 역사이전부터 존재했던 실체를 알 수 없지만 결코 인간의 역사와 단 한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거대한 에너지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이 책에서 그 에너지를 리틀 피플이라고 이름지었다.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가 양성자와 전자로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인간의 문명 뒤에는 그 문명의 반작용을 하는 에너지가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 둘은 결코 길항작용이나 순항작용으로 용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리틀 피플은 인간의 문명 즉 사회화된 초자아의 가려진 뒷면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1Q84>에서 원래 달보다 자그마하고 일그러진 모양에 녹색 이끼가 낀 것처럼 불길하게 보이는 두 번째 달은 리틀 피플을 상징한다. 원래의 달이 해류의 흐름과 계절의 변동, 생물의 호르몬에 영향을 미친다면 두 번째 달은 인간의 정신에 작용한다. 책에서 나오는 마더와 도터의 관계가 바로 이를 나타낸다.

인간은 본래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여간해서는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적 미덕이라는 사실을 보편적 사회 통념(슈퍼 에고)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더'의 숨겨진 욕망은 무의식('도터')에 잠긴 채 평소에는 무의식의

저층에서 잠자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무의식(관념)을 실체화할 수 있는 퍼시버(후카에리)의 존재에 의해 관념의 실체화에 성공한 초자아의 다른 면(리틀 피플)은 그 상태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닌 관념을 리시버('후카에리의 아버지')를 통해 실체화시킬 수 있게 된다.

~"마음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일 따위,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아."

리더는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2권> P295

언제나 관념만으로 존재하던 무의식이 인간이라는 시그널을 타고 선과 악으로 변복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작용에는 반작용이 존재하듯이 무의식의 실체화가 미칠 문명의 왜곡을 막기 위해 반작용('아오마메')이 1Q84의 세계에 등장하게 된다.

<1Q84>은 조지오웰의 <1984>를 연상하게 한다. 실제 작품에서도 인용되고 있지만 소설 <1984>에서 빅브라더라는(관념) 우상의 지배 아래 과거의 역사는 계속해서 삭제되고 수정되어진다. 과거 다음은 현재지만 <1984> 속에서 과거는 존재하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를 통해 재생산되어진다. 빅브라더의 통치아래에서도 일반인들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주입된 과거만을 현재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1Q84>에서도 현재는 존재하지만 과거는 진실을 아는 몇몇 사람(덴고, 아오마메)에게만 인식되어질 뿐, 다른 사람들은 어느순간 1984에서 1Q84로 변해버린 현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아오마메는 수도전철 고속도로에서 자신의 숨겨진 관념(덴고를 만나고 싶은)의 실체화(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려와서 전철을 타는)를 통해 1Q84의 세계로 옮겨오게 되지만, 그 세계에서 자신이 '덴고'에게 반작용의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덴고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외치고 자살하고 만다. 1Q84의 세상에서 두 개의 달이 서로 만나는 일 없이 나란히 존재하는 것처럼 자신과 덴고는 이 세계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채로....,

"그 두 개의 달은 서로 만나거나 하지는 않아?" 그녀는 물었다. 덴고는 고개를 저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두 개의 달 사이의 거리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돼." <1권> P651

~달의 반짝임으 무심히 바라보는 사이에 덴고 안에 고대로부터 이어져내려온 기억 같은 것이

차례차례 불려나왔다. ~달의 그같은 무상의 자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밤의 어둠이

좇겨나버린 현재에도 인류의 유전자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집합적인 따스한 기억으로 <2권> P467

그녀가 죽고 난 후에야 덴고는 공기번데기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실체화시키고 싶어했던 10살 무렵의 아오마메를 잠깐동안 만나게 된다. 아마도 그는 그순간 자신이 '리시버'의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1Q84>는 읽는 동안에도 그렇고 읽고 난 후에도 의문이 많이 생기는 책이다. 가장 모름직한 인물은 역시 후카에리이다. 그녀를 묘사하는 글을 읽으며 덴고 옆에서 머무는 후카에리가 과연 '마더'일까?를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덴고 옆에 머물렀던 '후카에리'는 '도터'였을 것이다. 아마도 리틀 피플들의 관념을 변복조할 또 다른 '리시버'를 찾기 위해 '후카에리의 도터'는 덴고에게 접근했는지도 모른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상력이 뿌리를 내린 곳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어떤 생활이 그에게 이러한 상상력의 영감을 불어넣는 것일까? 특히 그의 글을 읽노라면, 어느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소설책 속의 정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된다. 1Q84 처음에는 IQ84로 잘못

봐서 IQ 가 84밖에 되지 않는 인물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라는 오해를 가졌지만, 책 표지에서 1이 일본어로 밑에 '이치'라고 쓰인 걸 보고서야 1Q84임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고나서 아무래도 이 책이 조만간에 영화화될 것 같다는 추측을 하게 된다. 혼자서

역할을 생각해봤는데, 덴고:유지태, 아오마메:김소연(요즘 아이리스에서 여전사로 멋지게

나오는데 이미지가 군살하나 없이 마른 아오마메와도 싱크로율이 높은 것 같아서)은

어떨까 혼자 캐스팅하고 상상하고 즐거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