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년 전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새벽 출근길에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근교의 직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나는 1차선을
주행중이었는데, 주유소에서 주유를 마친 차량이 저속인 상태로 곧바로
1차선으로 진입해서 내 차를 들이받았다.
설마 주유소에서 저속으로 나온 차량이 그대로 2차선을 거쳐 대각선으로
1차선을 진입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나는 설마하는 순간 내차 옆면에
부딪혀 오는 강한 충격을 느꼈다.
그순간 이대로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찰나의
시간동안 나는 죽음 비슷한 무언가를 경험한것 같았다. 내가 만난 죽음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였다. 소리도 빛도 색깔도 냄새도 심지어 나조차 없는
그곳이 바로 내가 느낀 죽음이었다.
이미 수많은 매체를 통해 의가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들려준 자신의 영혼이
자기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거나 어딘가에서 밝은 빛이 비췄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경험한 그 순간은 내가 그전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지난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하는데
나는 그 순간 나라는 존재가 지워진 것처럼 아무 생각이 없었다. 육체에서 정신을 지워내버린 공허와도 같았달까.
그 짧은 무(無)의 순간이 나를 스쳐간 후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내가 살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인식할 수 있었다.
처참하게 오른쪽이 완전히 부서진 내차를 갓길에 세운 후 사고처리를 위해 나온 보험회사 직원이 내게 병원입원 여부를
물어왔을 때 나는 "지금 냉장고에 명절 장 봐 놓은게 한가득인데 어떻게 병원을 가요?"라고 답했다. 죽다 살았는데
기껏 냉장고에 있는 고기며 생선을 떠올리다니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지만 그게 내 삶의 중요한 부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기 이반 일리치라는 판사가 있다. 그는 고위 공직자였던 아버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무탈한 학창시절을 거쳐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자신에게 어울릴 법한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또 그 낳은 아이들 중 일부를
잃었고 상류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한 의혹에 멈칫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직무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옳은 것이라고 믿었다.
「 하지만 이반 일리치 자신은 카이사르도 아니고 일반적인 보통 사람도 아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남과 전혀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카이사르가 어떻게 어머니의 손에 나처럼 입 맞출 수 있을 것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