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김애란

김애란이 오랜 시간 끓여낸 문장 한 뚝배기 <바깥은 여름> 을 먹다.

묭롶 2018. 5. 1. 19:25

 

  5월 1일 노동절 휴일을 맞아 나는 오늘 처음으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오늘 아침 엄마손을 잡고

등교길을 걷는 딸아이의 어깨는 한껏 들떠있었다.  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서 기다리면서 나는 왠지 마음이 간지러운 것 같았다. 

  저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는 엄마를 발견한 딸아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커서 목으로 흘러내리는 종이왕관을 연신 손으로

추켜올리며 뛰어온다.  딸아이가 반가움과 신남으로 가득 찬 눈을 들어

나를 올려다볼 때 그 눈동자 속에서 나의 어린시절, 똑같은 눈으로

나의 엄마를 올려다보던 나를 발견했다. 

 

「환자와 보호자의 침대 높이가 달라

고개 들어 아이처럼 엄마를 올려본 기억이 난다. 

~그런 시간이 있었다. 

사람 얼굴을 보려면 자연스레 하늘도 같이 봐야 하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세상의 높낮이가 있었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p229

 

  아침 일찍부터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을 읽어서인지 여느 날과 같은 오늘의 하루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삶에 대한 해설은 정말 많다.  저마다 삶에 대해 자신이 전문가라는식으로 종교도 정치가도 교육자들도 자신들의

방식이 옳다며 조언을건네지만, 나는 그중 그 어느 것도 단어 하나조차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고 꼰대, 또 헛소리 하네, 그렇게 잘 알면 너나 잘 사세요'라는 식의 반감이 먼저이다 보니 인간의 삶을

그려낸 소설의 경우도 그런 뻔한 얘기 듣기 싫은 반감이 우선하는 게 바로 나다. 

 

  하지만 김애란 작가의 전작 『달려라 아비』, 『두근두근 내인생』을 통해 나는 그녀가 삶을 표현하는 방식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끓이면서 올라오는 불순물을 계속해서 걷어내서 진하고 담백하게 끓인 사골국물처럼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미사여구나 꾸밈없이 담백하고 단정한 그녀의 문장을 읽는 건 내게 큰 기쁨이다. 

삶과 동시에 함께 하는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마저도 과하지 않아서 오히려 현실적인 슬픔과 동시에 가슴

따뜻해지는 위안도 느끼게 되는 김애란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어쩐지 흑백사진을 보는 듯 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사진 한 장을 볼 때 우리는 많은 부분을 상상하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가 우리에게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모두 보여주는 반면 사진은 그 장면 그 순간에 담긴 이야기를 보는 이 스스로 상상하게 만든다.  

김애란의 단편 모음집 『바깥은 여름』은 그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모두 각각의 사진들이 모인 사진첩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첩을 넘기며 지나간 과거의 시간을 현실로 소환해보고 그때의 인물들과 상황을 기억해내는

과정처럼, 김애란의 소설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작중 화자의 몸을 뒤덮은 '장미색 비강진'처럼 환멸과

같은 삶의 환부가 끊임없이 갈라지고 탈피해서 살비듬이 꺼끌꺼끌하게 올라오다가 살이 차고 다시 반점이 생기는

반복의 과정을 우리에게 가감없이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는 멍하니 아내 말을 따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부엌 바닥으로 굵은 눈물방울이 툭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손에서 벽지를 놓을 수 없어,

그렇다고 놓지 않을 수도 없어 두 팔을 든 채 벌서듯 서 있었다.」 

<입동> p37

 

  너무 슬프지만 '그 순간조차 삶이라는 벽지'를 놓을 수 없어 온전히 슬픔에 잠길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입동」의

작중인물을 보며 우리는 삶과 동시에 존재하는 죽음도 이별도 아픔과 고통도 슬픔도 실존함을 받아들이게, 아니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굶고 있는 사람에게 설교보다는 한그릇의 뜨끈한 국밥이 절실한

것처럼 삶의 피로와 허기에 지친 우리에게 작가 김애란은 오래 끓여 국물이 뽀얗고 구수한 문장 한 뚝배기를

우리에게 건네는지도 모른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문장 한 뚝배기를 든든하게 먹은 나는 그녀가 건네는

든든한 위로와 연대감에 또 내일을 살아낼 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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