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앙드레 지드

<위폐범들>우리는 삶을 연기하는 연기자이자 관람자이다.

묭롶 2017. 5. 27. 22:00


    얼마전 선물용 순금을 주문하고 찾으러 갔다.  난 순금은 100% 순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순금 보증서엔 99.9%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난 왜 99.9%인지를 물었다.

제조공정상 불순물이 들어갈수도 있기에 100%는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우리가 순금이라고 믿는 금도 사실은 0.01%의 불순물이 섞여있다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어떠할까?  난 애초부터 의심이 많았나보다.  난 사람의 감정이

그 어떠한 순간일지라도 100%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사랑을 할때도 그보다 더한

상황에 직면한 순간일지라도 인간의 감정은 100%일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왜?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은 설혹 타인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순간일지라도 그 무게추는 그 자신이기에 언제나 저울은 자기중심적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  타인을 사랑할때도 결론은 자신을 중심추로 해서 타인에게

기울기 때문에 타인을 100% 사랑하기는 힘든 일이다.


「  ~하지만 나를 위해서 그녀가 자신에게 덧붙였던

그 모든 것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 

~시간이 서서히 빌려 입은 모든 옷을 벗겨 버리고,

진정한 모습이 다시 나타나는 날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상대방인 내가 그러한 꾸밈에 심취하고 있었다면. 

 이 가슴에 껴안은 것은 결국 주인 없는 하나의 장식, 하나의 추억...........

슬픔과 절망뿐일 것이다. 

'아아!  얼마나 수많은 미덕, 얼마나 수많은 완벽함으로

나는 그녀를 치장했던 것인가!」p100~101


  베르테르처럼 감정에 충실해 죽는 그 순간마저도 결국은 그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그 믿음이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한 무리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한 인간의 삶은 본인 스스로 부여한 역할이 자신의 삶의 100%라고 믿으며 연기하는 ctrl+c ctrl+v의

무한반복일지도 모른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위폐범들』은 바로 이 삶을 연기하는 연기자로서의 삶에서 출발한다.


  「~아버지는 목사 역을 연기하며 그것을 진실로 믿으면서 그 속에 파묻혀 버리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나 자신의 일부가 뒤에 남아서

위태로운 짓을 하는 다른 부분을 지켜보며 관찰하고 무시하고 야유도 하고 박수도 치지....

그렇게 자신이 분열되었는데, 어떻게 진지할 수 있겠어?」p512


「"~인간들의 구역질 나는 모든 발산물 중에서 문학이라는게

내게는 가장 혐오스러운 것 중 하나랍니다. 

거기엔 자기만족과 아첨 외에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기성 감정 위에 살고 있고 독자도 그것을 체험한다고 상상하지요.

왜냐하면 독자란 활자화된 것이면 무엇이나 믿어 버리니까.

~그런 감정들은 토큰처럼 진짜 같은 엉큼한 소리를 내지.

~진짜 화폐를 세상에 내놓는 사람이 오히려 속이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저마다 속임수를 쓰는 세상에서는 참된 사람이 오히려 협잡꾼이 되고 말지요.」p458


  『위폐범들』은 특이한 소설이다.  그간 읽어왔던 일반 소설들에서 삶을 연기하는 연기자로서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뤄왔지만 앙드레 지드는 삶을 연기하는 연기자이자 관찰자의 역할(알베르

카뮈의 『전락』의 인물이 취하는 태도와 동일)을 하는 인물을 다룬다.  작중에서 소설가로 등장하는

에두아르는 통속적인 소설(파사방 백작으로 대표)을 거부한다.  그는 소설문학이 지닌 허구라는 거푸집

속에서 위폐가 아닌 진실(삶, 깨달음)을 주조해내고자 한다.


 여기에서 책 제목인 '위폐범들'에서 '위폐'가 지닌 다의성을 확인할 수 있다.


1.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며  인식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허구를 실제라고 사는 위폐의 삶을

   사는 현대인들.

2. 자신의 실제 액면가(額價)보다 보여지는 모습의 외피를 부풀린채 그 모습을 스스로도

    진짜라고  믿는 현대인들.

3. 상업성 또는 독자의 기호에 맞춰 쓰여진 소설.


  '위폐'가 위의 상징을 지닐때 소설제목이 뜻하는 '위폐범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짐작해볼 수

있겠다.  작중인물 에두아르는 기존 문단의 틀 속에서 찍어져나오는 '위폐'로서의 소설쓰기를 거부한다.

그런식으로는 소설을 쓰지 못할 거라는 작중인물 로라의 말처럼 에두아르 스스로도 자신이 소설을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아!  로라!  

저는 한평생 잠깐 뭣인가에 부딪쳐도 맑고 정직하고 진실한 소리를 내고 싶어요.

제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선 거짓 소리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외양과 조금도 어긋남 없는 가치를 지닐 것,

자기 가치 이상을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 것........

그러나 사람들은 저마다 속마음을 감추고 속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좋게 보이려고 하는 나머지 마침내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됩니다.」p280


  그는 액면가에 값하는 소설(삶의 진실을 담아낸)을 쓰려고 한다.  사실 허구라는 틀(소설)을 통해

진실(팩트)를 주조한다는 건 단순히 생각하기에 앞  뒤가 맞지 않지만, 사실(팩트)을 기초로 하는

창작인 자화상을 놓고 보더라도 사실이 꼭 진실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앙드레 지드는 왜 쓰지 못하는 소설을 구상하는 에두아르를 작중인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는가?

여기에서 중요한건 지드가 표현의 도구로써 '쓴다'는 행위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현실을 보여 주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현실을 양식화하려는 노력을 보여 주는 겁니다."」p260


  그에게 '쓰는' 행위는 '보는' 행위와 같다.  화가가 사물을 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듯이, 소설가는

'보는' 행위를 통해 '쓴다'.  지드가 이미 1893년 자신의 일기에서 선을 보인 용어인 '미장아빔'(중심문

새겨넣기)는 작중인물 에두아르가 쓰는 소설을 지켜 '보는' 현실의 앙드레 지드가 '쓰는' 소설 『위폐범들』이

되는 것이다.  그는 왜 이렇게 복잡한 표현방식을 택했을가?


  꿈 속의 꿈을 떠올려보자.  나는 꿈(허구)을 꾸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다(실제)는 걸 인식하고 있다. 

꿈은 허구지만 꿈을 꾸는 나를 인식하는 실제의 나로 인해 허구의 꿈은 내 기억에 흔적을 남긴다. 보통의

꿈들이 아무런 인지작용없이 사라지는 것과 다르게 꿈 속의 꿈은 기억에 남는다. 


  『위폐범들』의 서사는 보는 행위에 집중되어 있다.  소설은 읽는 행위이지만, 이 책은 읽는 행위를

통해 작중인물들의 삶을 보여준다.  어쩌면 앙드레 지드가 '미장아빔'을 통해 독자에게 기대하는 효과가

바로 소설을 '보는'기능이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본다. 


「~그는 상복을 입고 있었다. 

베르나르는 그가 최근에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솟구쳐 오른 동정심에 끌려 베르나르는 그 고아에게로 발길을 옮겼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수줍음 때문에 그대로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그 소년은 베르나르가 가까이 오더니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베르나르를 존경했다. 

그래서 베르나르에게 멸시당한 것이려니 생각하고 괴로워했다.」p476


   위의 쓰여진 문장을 통해 우리는 베르나르와 소년이 가지고 있는 마음(사실)이 어떠한 결과(오해)를

일으키는지를 눈앞에 선명히 떠올리게 된다.  단순한 사실이 문장으로 쓰이고 독자는 이를 읽음으로써

사실관계만으로 얻지 못하는 통찰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제 지드가 자신의 소설 『위폐범들』속에

작중인물 에두아르가 쓰는 소설을 중심부에 배치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바를 짐작하게 된다.


  지드는 쓰는 행위(에두아르의 소설쓰기)를 보여줌(『위폐범들』)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과정중인

우리를 비춰줄 전신거울을 제공한다.    진보를 위해서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각성과 깨달음이

필요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주어진 현재를 소화해내기에 급급하다.  지드의 표현처럼 '위폐'를

진짜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는 『위폐범들』이라는 거울을 비춘다.  그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의

실제를 발견할때 '나'는 '위폐'로서의 외피를 인식하고 실제의 '나'에 다가가게 된다.  바로 이것이 '지드'가

허구인 소설을 통해 주조하고자 하는 '진짜 화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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