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선물용 순금을 주문하고 찾으러 갔다. 난 순금은 100% 순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순금 보증서엔 99.9%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난 왜 99.9%인지를 물었다.
제조공정상 불순물이 들어갈수도 있기에 100%는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우리가 순금이라고 믿는 금도 사실은 0.01%의 불순물이 섞여있다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어떠할까? 난 애초부터 의심이 많았나보다. 난 사람의 감정이
그 어떠한 순간일지라도 100%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사랑을 할때도 그보다 더한
상황에 직면한 순간일지라도 인간의 감정은 100%일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왜?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은 설혹 타인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순간일지라도 그 무게추는 그 자신이기에 언제나 저울은 자기중심적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 타인을 사랑할때도 결론은 자신을 중심추로 해서 타인에게
기울기 때문에 타인을 100% 사랑하기는 힘든 일이다.
「 ~하지만 나를 위해서 그녀가 자신에게 덧붙였던
그 모든 것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
~시간이 서서히 빌려 입은 모든 옷을 벗겨 버리고,
진정한 모습이 다시 나타나는 날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상대방인 내가 그러한 꾸밈에 심취하고 있었다면.
이 가슴에 껴안은 것은 결국 주인 없는 하나의 장식, 하나의 추억...........
슬픔과 절망뿐일 것이다.
'아아! 얼마나 수많은 미덕, 얼마나 수많은 완벽함으로
나는 그녀를 치장했던 것인가!」p100~101
베르테르처럼 감정에 충실해 죽는 그 순간마저도 결국은 그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그 믿음이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한 무리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한 인간의 삶은 본인 스스로 부여한 역할이 자신의 삶의 100%라고 믿으며 연기하는 ctrl+c ctrl+v의
무한반복일지도 모른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위폐범들』은 바로 이 삶을 연기하는 연기자로서의 삶에서 출발한다.
「~아버지는 목사 역을 연기하며 그것을 진실로 믿으면서 그 속에 파묻혀 버리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나 자신의 일부가 뒤에 남아서
위태로운 짓을 하는 다른 부분을 지켜보며 관찰하고 무시하고 야유도 하고 박수도 치지....
그렇게 자신이 분열되었는데, 어떻게 진지할 수 있겠어?」p512
「"~인간들의 구역질 나는 모든 발산물 중에서 문학이라는게
내게는 가장 혐오스러운 것 중 하나랍니다.
거기엔 자기만족과 아첨 외에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기성 감정 위에 살고 있고 독자도 그것을 체험한다고 상상하지요.
왜냐하면 독자란 활자화된 것이면 무엇이나 믿어 버리니까.
~그런 감정들은 토큰처럼 진짜 같은 엉큼한 소리를 내지.
~진짜 화폐를 세상에 내놓는 사람이 오히려 속이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저마다 속임수를 쓰는 세상에서는 참된 사람이 오히려 협잡꾼이 되고 말지요.」p458
『위폐범들』은 특이한 소설이다. 그간 읽어왔던 일반 소설들에서 삶을 연기하는 연기자로서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뤄왔지만 앙드레 지드는 삶을 연기하는 연기자이자 관찰자의 역할(알베르
카뮈의 『전락』의 인물이 취하는 태도와 동일)을 하는 인물을 다룬다. 작중에서 소설가로 등장하는
에두아르는 통속적인 소설(파사방 백작으로 대표)을 거부한다. 그는 소설문학이 지닌 허구라는 거푸집
속에서 위폐가 아닌 진실(삶, 깨달음)을 주조해내고자 한다.
여기에서 책 제목인 '위폐범들'에서 '위폐'가 지닌 다의성을 확인할 수 있다.
1.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며 인식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허구를 실제라고 사는 위폐의 삶을
사는 현대인들.
2. 자신의 실제 액면가(額
「아아! 로라!
저는 한평생 잠깐 뭣인가에 부딪쳐도 맑고 정직하고 진실한 소리를 내고 싶어요.
제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선 거짓 소리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외양과 조금도 어긋남 없는 가치를 지닐 것,
자기 가치 이상을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 것........
그러나 사람들은 저마다 속마음을 감추고 속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좋게 보이려고 하는 나머지 마침내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됩니다.」p280
「"내가 원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현실을 보여 주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