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카를로스 푸엔테스>

<아우라> 인식(認識)과 인지(認知 )의 차이를 알게되다.

묭롶 2016. 11. 30. 23:00

 

  푸엔테스의 소설 『아우라』 의 콘수엘로 부인은 자신이 늙어감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너무 늙어 아이처럼 보이는 자신의 실체 대신 변하지 않는 젊음을 유지한

'아우라(콘수엘로의 분신)'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자신이 만든 실체 없는 '아우라'를

실재하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녀를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단 점이다.

 

  콘수엘로부인은 자신의 목적에 부합(젊은 시절 자신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남편 요렌테와

비슷한 남성)하는 대상을 찾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낸다.  가난한 역사학자인 펠리페 몬테로가

기사를 보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소설 『아우라』의 내용이다.

 

  하지만 단순히 대상을 찾는 것만으로 멀쩡한 사람이 실제하지 않는 '아우라'를 인식할 수

있을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마법이다.  사랑이라는 마력권내에서

나이는 효력을 잃는다. 사랑 안에서는 그 대상에게서 보고자하는 부분만 보이는 환각과 환시,

환청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원에서 자신의 약초를 재배하겠다고 고집했고,

자신은 미혹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약초가 물리적으로 그녀를 임신시키지는 않았지만 영적으로는 그랬다.」p57

   그녀가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악마적 주술을 행하고 금지된 약초를 재배해도 사랑하기 때문에 콘수엘로를 이해했던

요렌테 장군처럼, 펠리페는 그녀가 자신에게 심어준 이미지 그대로의 '아우라'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현실적 경계를

무너뜨린다. 

 

「"돌아올 거예요, 펠리페, 우리 함께 그녀를 데려와요. 

 내가 기운을 차리게 놔두세요. 

그러면 그녀를 다시 돌아오게 할 거예요......"」p62

 

「100년이 지나도록 항상 녹색 옷을 입고, 항상 아름다운 그녀.」p41

 

  이미 '아우라'를 사랑하게 되버린 펠리페에게 현재(아우라는 허상이며 실체인 콘수엘로 부인은 엄청나게 늙은 노파라는)

는 중요하지 않다.  펠리페 그 자신이 콘수엘로를 실제적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그녀가 덧씌운 이미지 아우라로 인지하는 한

이 무서운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이 무서운 사랑의 마법을 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2004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떠올랐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여주인공 소피는 마법에 걸려 아흔살의 노파로 변한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이 인식하는 나이와 전혀 다른 자신의 신체를

보며 좌절한다.  하지만 하울을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그녀는 하울 앞에서 점점 젊음을 회복한다.  

  소설 『아우라』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인식하는 현재와 인지하는 현재의 차이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인식의

주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대상은 그 실체가 아닌 보여지는 모습을 통해 각인되므로 사실은 언제나

사실이 아니다.  어쩌면 굳이 사랑에 빠지지 않더라도 나라는 주체가 인식하는 대상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따라

 대상은 콘수엘로가 만들어낸 허상 '아우라'처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그 어디에도 절대적인 것이 없다면

세상을 인식하기 위해 나는 어떤 거울을 가져야할까?  그 거울을 찾기 위한 과정이 어쩌면 나의 독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