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묭롶 2012. 7. 11. 14:55

 

「"아!......아주 잠들었군요, 그렇죠?"

나는 중얼거렸다.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

p91~93

 

  작중 변호사의 읊조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 바틀비!'  창백하고 우울한 유령같은 이 사내를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무심코 발견하며  그때마다 혼자서 '바틀비'를 읊조렸다.  나 또한 변호사와 같은 범주의 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작중 인물이 느꼈던 감정은 온전히 나의 것이기도 했다. 

 

「일요일의 월 스트리트는 페트라처럼 버려진 곳이다.  ~이런 곳에 바틀비가 거주한다. 

~그는 카르타고의 폐허 가운데 침울한 생각에 잠긴, 결백하고 변화한 모습의 마리우스였다.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유대가 이제 나를 저항할 수 없이 끌어당겨 나는 우울해졌다. 

형제로서의 우수!  바틀비와 나는 아담의 아들들이었다.」p47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면 그건, '가만히 있으면 중간 간다' 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것이다.  몇 년 전 남들이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카피를 가진 광고가 있었다.  그 광고를 보며 과연 실제 생활에서 저렇게 한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목구멍까지 '아니오'라는 말이 치밀어올라와도 이를 악물고 참으며 묵묵히 견뎌야 하는 경우를 종종 겪어본 이후로는 조직에 속한 몸이 '아니오'라고 내뱉기 위해 무릎쓰고 감내해야 할 것들이 얼만큼인지를 또 그 행동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그럼에도 '아니오'를 한 번 이상 말한다면 그 사람은 조직 사회에서 군대용어로 '고문관' 취급을 당하거나 매장 내지는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이처럼 인간의 사회화 과정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제하고 부정성을 거세한다.  바틀비는 그런 의미에서 거세당하지 않은 태초의 인간이다.(작중 인물인 변호사는 그런 바틀비에게서 순백의 순결함과 결백함, 그리고 그의 때묻지 않은 연약함에 동정심을 느낀다)  온 나라 사람이 마시면 미치는 우물물을 마시고 미쳐버리자 한 명 남은 정상인을 향해 미쳤다고 말 했다는 우화처럼 바틀비는 오로지 '안 하는 편을 택'했다는 이유로 격리의 대상으로 판정되어 구금된다.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사흘째 되던 날인가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처리해야 할 작은 일을 마무리하려 급히 서두르다가 불쑥 바틀비를 불렀다. 

급한 나머지, 그리고 즉각적으로 응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에

~그 자세로 앉아 나는 그를 부르며 용건이 무엇인지 빠르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바틀비가 그의 은둔처에서 나오지 않고 매우 상냥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아니 당황했을지 한번 상상해보라. 」p29

 

  바틀비의 행동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안 하는 편을 '택'한다는 점'이다.  '택'한다는 행동은  그 결론을 내기 위해 진행된 사유의 과정이 어떠한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이뤄졌음을 전제한다.  더 할 수 없이 차분하고 공손하고 온화하지만 단호한 바틀비의 말투는 이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문제는 바틀비가 어떠한 연유로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됐는지에 있다.  책의 말미에 그가 사서死書를 분류해서 소각하는 업무로 인해 '안 하는 편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는 변호사의 추정에서 짐작해 보건데, 바틀비의 행동은 어떤 계기로 인한 결과물로 보여지기도 한다.

 

  사서死書분류 업무는 개인의 자율적 판단과 행동이 불필요한 업무로 그 업무에서 발생하는 주관적 느낌과 그로인해 발생하는 행동들을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었고 때 맞춰 이뤄진 해고로 필경사에 지원하지만 그 업무도 개인의 창조적 자율성을 요구하지 않는 타자의 강제성 아래 놓인 자리임을 깨닫게 되고 이후 그는 필사에 관한 일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후 자신이 놓인 위치를 조정하려는 타자들의 의도에 대해 '안 하는 편을 택'한 그는 감옥에 구금되고 자신의 신체활동이 타자의 강제와 감시 아래 놓인 환경 속에서 생존을 '안 하는 편을 택'한 결과 끝내 죽게 된 건지도 모른다.

 

  나는 바틀비가 아니다.  나는 속으로 욕을 할 지언정(작중 인물 터키와 니퍼스처럼) 비겁하게 생존을 택한 인물이다.  나는 한 가정에, 한 회사에, 한 국가에 첩첩이 메인 몸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저 작중 변호사처럼 평범하고 여유있는 삶을 위한 것들 뿐이다.  만약 내 곁에 바틀비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다만.. 작중 변호사처럼 또 '아!....바틀비여...인류여'라는 탄식을 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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